'역대급 한파' 체감 -20℃, "추운데 왜 뛰세요?"[페이스메이커]

'대한(大寒)' 찾아온 20일…서울 최저 -13℃, 체감 -20℃ 안팎
한강 일대는 여전히 러닝 열기 '후끈'…뛰는 이유 각양각색
'젊은 에너지 받기 위해', '습관 지키기 위해', '생각 정리' 등

한강을 달리는 시민 러너 신우홍씨와 전소연씨. 이우섭 기자

"추워도 밖에서 젊은 사람들과 함께 뛰면 저도 젊어지는 느낌입니다."
"냉장고 속에서 달리는 기분이 들어서 재밌어요."


24절기 중 마지막인 '대한(大寒)'. 이름처럼 매서운 추위가 찾아왔습니다. 지난 20일 서울 아침 기온은 최저 -13℃, 체감 온도는 -20℃ 안팎까지 뚝 떨어졌습니다. 강추위는 주말까지 이어질 전망입니다.

그럼에도 서울 한강에는 달리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았습니다. 기자가 한강 일대를 시민들과 함께 뛰며, 한파 속에도 러닝을 멈추지 않는 각양각색의 이유를 들어봤습니다.

아직 눈이 녹지 않은 불광천 모습. 이우섭 기자

올해 대한은 '1월 20일 오전 10시 45분'. 태양의 황경(黃經)이 300º에 도달하는 시점이었습니다. 그 시간에 맞춰 시민 러너들을 만나러 출발했습니다. 출발지 서울시 은평구 대조동은 -9℃, 체감상으로는 훨씬 낮았습니다.

얇은 상의 네 벌과 레깅스 두 겹으로 몸을 감쌌지만, 얼굴과 발을 파고드는 냉기는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달리기 시작과 동시에 발이 꽁꽁 얼어붙습니다. 숨을 내쉴 때마다 뽀얀 입김이 고스란히 고글에 서립니다.

불광천 변은 아직 내린 눈이 녹지 않았습니다. 운동하러 나온 시민들은 종종걸음으로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월드컵대교 강물은 얼었습니다. 그래도 뛰다 보면 몸은 풀어집니다. 상암월드컵경기장에 다다르자 속도가 붙기 시작했고, 성산대교 부근에서는 페이스를 더 올릴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성산대교와 월드컵대교 사이 강물이 얼어있다. 이우섭 기자

성산대교 아래에서 1958년생 러너 백영호씨를 만났습니다. '이렇게 추운 날씨에 왜 뛰세요?'

"은퇴하고 시간도 많아서 매일 운동을 합니다. 자전거를 탈 때도 있고, 뛸 때도 있고. 지금은 걷는 정도의 아주 느린 속도로 뛰고 있어요. 그러면 에너지가 더 많이 소비된다고 하더라고요. 제 나이에 빠르게 뛰는 건 무리이기도 하고."

젊은 에너지를 받을 수 있다는 점 역시 춥더라도 러닝을 하는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날씨 때문에 나오기 꺼려지더라도, 한번 나오면 젊은 사람들에게 많은 힘을 얻어갑니다. 러닝하는 모습, 자전거 타는 모습을 보면 무척이나 보기 좋아요. 실내 체육관은 답답하기도 하고,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아요."

얼어붙은 한강. 이우섭 기자

인터뷰를 마친 뒤 다시 달립니다. 서울함을 지나 양화대교를 거쳐 당산철교에 도착했습니다.

딱 10km를 뛰었을 시점, 맞은 편에서 달려오던 1972년생 신우홍씨와 전소연씨를 마주쳤습니다. '이렇게 추운 날씨에 왜 뛰세요?'

"어차피 뛰는 걸 좋아해요. 날씨 상관없이 습관을 지키기 위해서 그냥 나와요. 며칠 전에 눈이 내릴 때도 달렸습니다. 날씨는 크게 상관없어요. 또 올해 마라톤 대회에 나갈 계획이라 그걸 준비하려면 더 훈련해야죠."(신우홍씨)

"오늘은 딱 10km 뛰었어요. 여기(당산철교 아래)에서부터 난지 캠핑장을 찍고 돌아왔습니다. 추워도 한강을 뛰면 기분이 최고예요. 실내에서 운동하면 너무 지루한데 한강은 공기, 경치, 코스도 좋아서 춥더라도 실내에서는 거의 운동을 안 해요."(전소연씨)

한강을 뛰고 있는 시민 러너 이찬영씨. 이우섭 기자

인터뷰를 마친 뒤 다시 달립니다. 지나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던 중, 앞에서 뛰고 있는 한 청년이 눈에 띕니다. '이렇게 추운 날씨에 왜 뛰세요?'

"추워도 자연 바람 맞는 게 좋아요.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뛰다 보면 기분이 훨씬 좋아집니다. 그냥 천천히 뛰면서 생각을 정리해요."

1994년생 러너 이찬영씨는 러닝을 통해 생각을 정리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곧 퇴사 후 창업을 할 예정이라 머릿속이 복잡한데, 뛰다 보면 생각이 단순해지고 답을 찾게 될 때도 있었다고 합니다.

"밖에서 러닝을 하면 명상하는 것 같아요. 생각 정리가 되는 느낌이 들어요. 사실 어제는 나오려다가 너무 추워서 안 나왔어요. 오늘은 청소하려고 창문을 열어보니까 날씨가 괜찮아서 일단 나왔습니다."

러닝에 대한 열정을 자신의 직업과도 연결했습니다. 개발자로 일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러닝 기록 애플리케이션도 출시했다고 합니다. 이찬영씨는 "요즘 존(Zone) 2 러닝이 유행이잖아요. 그 심박수에 맞게 뛸 수 있도록 알림이 오는 어플을 만들었습니다"라고 미소를 지었습니다.

존 2 훈련은 최근 '페이스메이커'를 통해서도 소개된 러닝 방법입니다. 최대 심박수 대비 60~70%로 달려 운동 효과를 극대화하는 훈련법입니다. 초보부터 고수까지 모든 러너에게 필요한 운동으로 알려졌습니다.(관련 기사 : '느리게 달려라' 존2 훈련이 뭐길래…금메달리스트의 러닝 꿀팁)

이우섭 기자

인터뷰를 마친 뒤 다시 달립니다. 응암역에 도착하자 러닝 후 휴식 중인 1997년생 김승환씨가 보입니다. 김승환씨의 머리 위로는 하얀 김이 끊임없이 솟아올랐습니다. '이렇게 추운 날씨에 왜 뛰세요?'

"추위에 뛰는 걸 더 좋아하는 편이에요. 습하지 않으니까 뛰기에 편하고, 몸에서 열이 올라오면 오히려 따뜻해지는 것 같아요. 냉장고 속에서 달리는 기분이 들어서 재밌어요."

체감 -20℃를 웃도는 '대한의 추위'도 러닝을 즐기는 시민들의 열정까지 얼어붙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들에게 강추위 속 러닝은 고행이 아닌, 각자의 페이스로 하루를 살아가는 또 하나의 방법이었습니다.

이 기사는 기자가 직접 뛰며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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