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가 과거 한 사업가로부터 금품을 제공받아 입건된 사건에서 뒤늦게 작성한 변제 영수증을 주요 근거로 무혐의 처분된 사실이 파악됐다. 금품이 전달된 시기 두 사람 사이 오간 문자메시지에는 대가성 청탁이 의심되는 장면도 여럿 발견됐다.
뇌물죄는 대가성이 뒷받침되면 변제 여부와 상관없이 성립하지만 당시 검찰은 사후 영수증을 토대로 단순 차용금이라는 이 후보자의 주장을 들어줬다. 무혐의 처분을 둘러싼 의구심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특히 사건이 불거진 당시 경찰 고위직 출신 현역 의원이 이 후보자와 해당 사업가 사이 중재자로 나선 정황도 포착되면서 정치권 안팎의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금품수수 1년여 뒤 만든 영수증…문자에는 청탁 정황
16일 CBS노컷뉴스가 입수한 이혜훈 후보자의 불기소 결정서에 따르면, 이 후보자는 2015년 10월 서울 서초구 반포동 한 호텔에서 사업가 옥모씨를 지인 소개로 처음 만났다. 이후 2017년 4월 7일까지 한번에 적게는 300만원, 많게는 1천만원을 옥씨로부터 수수했다.
현금뿐만 아니라 명품 가방과 자켓 등도 건네받았다. 이 후보자는 금품수수 의혹이 언론에 보도된 2017년 8월 31일 기자회견을 열고 옥씨에게서 받은 금액은 "통틀어서 6천만원 정도"라고 밝힌 바 있다.
이 후보자는 당시 기자회견에서 옥씨로부터 받은 금품은 대가성 없는 차용의 성격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모든 돈을 다 갚은 지가 아주 오래 전 일"이라며 옥씨에게 되갚은 금전을 증빙할 영수증도 있다고 주장했다.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이같은 영수증의 객관성을 인정하며 이 후보자를 무혐의 처분하는 주요 판단 근거로 삼았다.
하지만 영수증을 만든 시점을 보면 단순 차용이었다는 이 후보자의 주장은 설득력이 다소 떨어진다. 이 후보자와 옥씨 사이 변제 완료 영수증을 작성한 건 2017년 5월 17일로, 금품수수 시기로부터 1년 이상 뒤늦은 때여서다. 당시 즈음 옥씨와 이 후보자의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했다는 점도 뒤늦은 '위장 변제' 의혹을 짙게 하는 요소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를 보면 차용의 성격은 더욱 흐려진다. 옥씨의 부탁대로 이 후보자가 한 대기업 부회장과 약속을 잡아주거나 금융회사 임원과의 회동 자리를 마련해주려고 역할한 정황이 확인되기 때문이다. 이 후보자는 과거 기자회견에서 "청탁이 있었다든지, 어떤 대가라든지 그런 얘기의 돈은 전혀 아니"라고 해명한 바 있다.
명품의 경우 "옥씨가 코디 소품이라며 일방적으로 가져왔다"는 게 이 후보자의 당시 주장이었다. 하지만 옥씨가 공개한 문자메시지에는 이 후보자 측이 직접 자켓을 찾아갔다는 매장 직원의 답장이 등장한다.
현금도 마찬가지다. 옥씨는 "이 후보자가 2016년 10월 20일 급하게 연락이 와 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며 "당일 아침 모친상을 당했다. 그런데도 너무 재촉하길래 할 수 없이 돈을 건네고선 장례식장으로 갔다"고 주장했다. 옥씨는 이 후보자가 당시 보낸 조화 등을 근거로 날짜를 특정하고 수사기관에 금품수수 정황을 진술했다고 한다.
이같은 정황은 옥씨가 선의로 도와주겠다며 먼저 접근했고, 추후에는 오히려 옥씨가 돈을 융통해달라고 졸랐다는 이 후보자의 주장과는 배치되는 부분이다. 옥씨가 짚은 2016년 10월 20일 당시 금품수수 의혹은 실제 이 후보자의 범죄일람표에도 기재돼 있다.
변제 영수증이 뒤늦게 작성되고, 문제메시지 등에 비춰 대가성이 의심되지만 검찰은 사건이 불거진 지 1년 6개월이나 흐른 뒤에야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무혐의 종결했다. 이 후보자는 한차례 조사만 받았다고 알려졌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차용 명목으로 금품을 수수하고 나중에 문제가 돼서 이를 변제했다고 해도 대가성과 직무 관련성에 비춰 연관이 있으면 뇌물죄는 성립한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의혹에 이 후보자 측은 "당시 수사 과정에서도 제기됐던 사항으로 검찰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분석까지 거치며 고강도 수사를 추진한 후에 무혐의 처리한 사안"이라고 반박했다.
경찰 출신 의원 "고소 안 했으면…" 중재 정황
금품수수 의혹이 폭로되기를 전후해 이혜훈 후보자가 경찰 고위직 출신 A의원과 접촉한 정황도 포착됐다. 이 후보자가 수사를 비롯한 위기 국면을 앞두고 일종의 중재자 역할을 요청한 것으로 의심되는 배경이다.
CBS노컷뉴스가 확보한 녹취록에 따르면, A의원은 사업가 옥씨와의 통화에서 이 후보자와 연락했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고소하지 말아 달라'는 취지의 의사를 내비쳤다.
구체적으로 녹취록에는 A의원이 옥씨에게 "나는 생각에 고소를 안 했으면 (한다)"며 "(이 후보자에게도) 서로 자극하지 말고 그렇게 인터뷰하지 말고 언론하고 접촉하지 말아라(고 말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A의원은 당시 통화가 사건 수사와는 무관하게 이뤄졌다는 입장이다. 그는 "해당 전화는 이 후보와 갈등을 겪고 있던 옥씨로부터 먼저 걸려온 전화인 데다 이 후보로부터는 어떤 부탁도 받은 적이 없다"며 "둘이 고향 선후배 사이인데 싸우지 말고 잘 지내면 좋지 않겠냐는 취지로 말한 것 뿐"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문재인 정부 경찰과 검찰이 수사 중이었던 사안인데, 야당 의원이 무슨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이 후보가 나한테 부탁을 했겠나"라며 "더군다나 옥씨는 내가 고소하지 말라고 해서 안 할 사람도 아니다. 결국 고소하지 않았나"라고 선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