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되기 전, 그는 타이슨처럼 정치를 하겠노라는 포부를 밝혔다. '우직하게 두들겨 맞으면서도 KO를 노리는 타이슨'과 '안 맞으려 요리조리 피하는 메이웨더', 질문자가 제시한 두 개의 선택지 가운데 '생각할 겨를도 없이' 타이슨을 택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그는 본인 말대로 우직하게 두들겨 맞는 국정을 폈던가. 재임 중 무려 25차례 법률안 거부권을 행사하는 '불통 국정'을 이어가면서 오히려 요리조리 피한 쪽에 가깝다. 특히 배우자의 비위 혐의 수사를 위한 특검법은 국회가 통과시킬 때마다 3차례나 거부권으로 가로막았다.
같은 당 출신 전임자들과 분명한 차이를 드러내는 대목이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전임자들은 국회의 특검법을 받아들이면서 '본인들을 두들겨 팰' 이광범 특별검사와 박영수 특별검사를 손수 임명했다. 가족과 친인척 관련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한 대통령은 그가 유일하다.
우직하지 못한 행태는 내란재판 법정에서 더욱 선명하다. 내란 우두머리 피고인인 그는 재판을 질질 끌었다. 공소제기 절차나 공판기일 지정, 증거와 증인 채택 등 과정에서 줄기차게 이의를 제기했다. 변호인 교체 등을 이유로 기일을 늦추는 전술도 폈다. 재구속 뒤에는 재판 출석을 16차례나 거부했다.
이에 앞서서는 헌재의 소송 서류나 공수처의 출석요구서를 수령 거부하는 방식으로 탄핵심판과 수사를 지연시켰다. 내란의 실체 규명과 단죄를 늦추려는 지연전술이 지속된 셈이다. 이렇게 벌어들인 시간에 지지세력을 규합하거나 법리적 돌파구를 모색하는 등 나름의 계획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계획이 실제 성과를 낼지는 알 수 없다. 재판에서 불필요한 절차적 다툼이 길어질수록 '반성과 책임을 회피한다'는 인상은 강화되고, 정상참작 가능성은 낮아진다. 대통령이라는 권력자에 기대되는 도덕적 기준이 훨씬 높다는 점에서, 그동안의 재판 대응은 오히려 불리한 요소일 수 있다.
그가 재판에서 제시한 것은 승패를 가를 결정타라기보다, 부정적 인상의 누적이었다. 이쯤 되면 그가 준비하고 실행한 일련의 재판대응 계획에 과연 얼마만한 값어치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하필 그가 동경했던 마이크 타이슨은 이런 말을 남겼다.
"누구에게나 그럴듯한 계획은 있다. 한 방 얻어맞기 전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