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율 수치에만 집착…인구 '정책' 아닌 '전략' 필요하다

[2026, 5大축②]AI·반도체 떠받칠 '인구 전략'의 조건
'일할 사람·소비할 사람' 줄어드는 인구 감소 사회
"한국 경제, 고출생 전제 성장 공식에서 벗어나야"
출산율 수치 집착 속 백화점식으로 나열된 저출산 정책
李정부, '저고위' → '인구전략위원회'로 확대·개편
"출산 장려 넘어 인구 감소에 적응하는 전략 필요"

연합뉴스

▶ 글 싣는 순서
①韓경제 떠받치는 반도체…'도약' 위해선 대전환 필요하다
②출산율 수치에만 집착…인구 '정책' 아닌 '전략' 필요하다
(계속)
한국 경제는 반도체에 기대 버티고 있지만, 인구 감소와 에너지·기후 제약 속에서 기존 성장 방식은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인공지능(AI) 전환 역시 산업 정책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구조 변화를 요구한다. CBS 노컷뉴스는 반도체·인구·에너지·기후변화·AI를 대한민국의 향방을 가를 5대 핵심 과제로 설정했다. 이번 기획은 정부의 경제성장전략을 다섯 축으로 점검하며, 개별 정책이 아닌 구조적 작동 방식을 묻는다. 현재의 성장 공식이 지속 가능한지, 그리고 한국 사회가 구조적 전환의 기로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짚어본다. [편집자주]

한국은 이미 인구가 줄어드는 나라다. 2020년 인구가 감소세로 전환된 이후 지난해까지 6년 연속 반등 없이 감소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출생아 수는 20만 명대로 떨어졌고, 생산가능인구 감소는 이제 통계가 아닌 현실로 다가왔다.

인구 감소는 경제 전반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고용노동부 산하 한국고용정보원은 고령화 등 노동공급 제약의 영향으로 경제활동인구는 2030년부터, 취업자 수는 2029년부터 각각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노동시장의 기반 자체가 축소되는 흐름이 불가피하다는 의미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지난 9일 '2026 경제성장전략'을 발표하고,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등 전략산업을 중심으로 잠재성장률 반등을 도모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반도체 세계 2강, AI 글로벌 3대 강국 도약이라는 목표도 함께 제시했다.

그러나 인구 감소 사회는 이 같은 첨단 산업 전략의 추진 여건을 구조적으로 제약할 수밖에 없다. 산업을 뒷받침할 인력과 수요 기반이 동시에 위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양대 전영수 국제대학원 교수는 "반도체와 AI 중심의 성장 전략은 필요하지만, 인구 감소를 전제로 하지 않은 전략은 현실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이미 한국 경제는 고출생을 가정한 성장 함수에서 벗어나야 할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한국고용정보원 제공

이공계 인력 부족 현실화…의대 쏠림은 변수

류영주 기자

인구 감소의 영향은 특히 반도체·AI 등 이공계 산업에서 먼저 드러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달 '이공계 인력 부족 실태와 개선 방안' 보고서에서 2029년까지 AI·반도체·빅데이터 등 신기술 분야에서 중급(학사) 인재 29만 2100여명, 고급(석·박사) 인재 28만 7200여명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했다. 기술 경쟁이 심화될수록 인력 공백은 더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의대 선호 현상은 이공계 인력 기반을 더욱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의대 정원 확대 논의가 이어지는 동안, 이공계 핵심 인재의 유입 기반은 상대적으로 위축되고 있다는 것이다. 산업계에서는 "AI와 반도체를 국가 전략 산업으로 삼으면서, 이를 떠받칠 인재 생태계는 오히려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대한상의는 줄어드는 학령인구와 '의대 쏠림'을 이공계 인재 부족 원인으로 지목하고 의사보다 미흡한 보상 체계, 낮은 직업 만족도, 직업 불안정성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내 취업 이공계 졸업자가 최종 학위 취득 후 10년이 지난 시점에 받는 평균 연봉은 9740만 원으로 해외 취업자(3억9천만 원)의 4분의 1, 국내 의사 평균 연봉(3억 원)의 3분의 1에 불과했다.

'출산율 반등' 평가 엇갈려…핵심 구조는 그대로

이런 가운데 정부는 최근 합계출산율의 소폭 반등을 정책 성과로 강조하고 있다. 2024년 합계출산율은 0.75명으로 9년 만에 반등했고, 지난해에는 0.8명대 진입 가능성도 거론된다. 주형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전 부위원장은 "저출생 반전의 틀을 만들었다"며 "2030년 목표를 상회해 1.1명대 수준까지도 기대해볼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를 두고는 구조적 반전이라기보다 일시적 증가에 가깝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코로나19 시기 미뤄졌던 혼인과 출산이 재개된 데 따른 기저 효과에다 출산 적령기인 30대 여성 인구의 일시적 증가가 겹친 결과라는 것이다.

실제로 국회예산정책처는 '인구 전망 2025~2045' 보고서에서 출생아 수가 단기적으로는 소폭 증가하더라도, 중장기적으로는 다시 감소해 2045년에는 20만 명 수준에 머물 것으로 전망했다.

그동안 정부의 저출산 대응은 출산율 수치를 끌어올리는 데 초점을 맞춘 '인구 정책' 중심으로 전개돼 왔다. 출산율 하락의 원인을 양육 비용 부담으로 설정하고, 현금·현물 지원을 확대하면 출산이 늘어날 것이라는 식의 접근이었다. 이 과정에서 각종 출산·양육 지원 사업이 늘어났지만, 정책은 점점 백화점식으로 나열되는 구조를 반복해 왔다.


국가데이터처 제공

전문가들은 주거 불안, 일자리의 질, 장시간 노동, 사교육비 부담, 수도권 집중 등 출산 결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구조적 요인은 여전히 정책의 주변부에 머물러 있다고 평가한다. 출산·양육 지원은 확대됐지만, 청년 세대가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조건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구조 속에서 특히 출산율 제고에만 정책의 초점이 맞춰지면서, 이미 불가피해진 인구 감소 사회에 대한 대비는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과거 연간 70만 명 출생을 전제로 설계된 교육·국방·대학·연금 체계는, 출생아 수 20만 명대 현실과 점점 괴리를 드러내고 있다.

한반도미래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생산가능인구 1명이 1명 이상의 고령인구를 부양해야 하는 구조는 연금과 복지 시스템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한다"며 "출산율 반등 여부와 별개로 인구 감소를 전제로 한 제도 개편이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


'수치 집착' 버리고 사회 구조 재설계하는 '전략' 짜야


이 때문에 단기적인 출산율 반등에 정책 성과를 걸기보다, 출산율 관리 중심의 '인구 정책'에서 벗어나 사회 구조를 재설계하는 '인구 전략'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인구 전략은 출산율 수치 자체를 목표로 삼기보다, 인구 변화가 경제·산업·복지·재정에 미치는 영향을 전제로 사회 시스템을 조정하는 접근이다.

정부도 '경제성장전략'에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인구전략위원회'로 확대·개편하고, 정책 범위를 인구 문제 전반으로 넓히겠다고 밝혔다. 이에 맞춰 향후 5년간 인구 구조 변화에 대응하는 '제5차 기본계획'(2026~2030)을 마련하겠다는 방침도 제시했다.

인구 문제를 출산율이 아닌 국가 전략 차원에서 다루겠다는 취지다.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 이상림 책임연구원은 "출산율을 올리기 위한 단기 지원 정책에서 벗어나, 사회 구조를 바꾸고 인구 감소에 적응하는 인구 전략으로 정책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저출산 대응에 효과가 있었던 정책으로 주 40시간 근로제를 꼽았다. 노동 시간이 안정되면서 육아 부담이 완화됐고, 이는 출산과 양육 환경 개선으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독일 역시 출산 장려 정책보다 중소기업 강화, 숙련 노동 유지, 부모 시간제 근무 등 산업·노동 정책이 축적되며 가족 형성 환경이 개선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상림 연구원은 "노동시간 단축, 교육 구조 개편, 수도권 집중 완화, 연금·국방·대학 체계 개편은 단기적으로 출산율을 끌어올리는 정책은 아니지만, 청년 세대의 삶의 안정성을 높여 출산 환경을 개선하고 인구 감소 사회의 충격을 완화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구 감소는 인력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생산과 소비 구조가 바뀌는 사회에서는 에너지 수요와 기후 대응 전략 역시 근본적인 재설계를 요구받는다. 특히 반도체와 AI 산업처럼 막대한 전력을 필요로 하는 첨단 산업은, 인구 감소 사회에서 에너지 공급의 지속 가능성과 기후 비용을 함께 고려하지 않으면 성장 자체가 제약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인구, 산업, 에너지, 기후가 각각의 정책 과제가 아니라 하나의 구조적 문제로 맞물려 있다고 지적한다. 인력이 줄어드는 사회에서 에너지 인프라 확충은 더 어려워지고, 기후 규제는 산업 비용을 높이며, 이는 다시 성장 전략의 실행 가능성을 흔드는 요인이 된다. 인구 전략은 산업 전략과 에너지·기후 전략을 함께 설계하지 않으면 완결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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