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경제 떠받치는 반도체…'도약' 위해선 대전환 필요하다

[2026, 5大축①]
AI 호황에 반도체 수출 비중 30% 전망…쏠림 현상 심화
산업 구조적 취약성 드러나…"반도체 호황, 양날의 칼"
메모리 반도체 편중도 숙제…'시스템 생태계' 키워야
에너지·기후·인구가 맞물린 지속가능성 시험대
'반도체 이후'를 준비할 구조적 전환 요구


▶ 글 싣는 순서
①韓경제 떠받치는 반도체…'도약' 위해선 대전환 필요하다
(계속)

최근 대한민국 경제는 명실상부 반도체가 떠받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글로벌 경기 둔화와 불확실성 속에서도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반등 그래프를 그리는 배경에는 반도체 수출 회복 덕분이다. 정부도 반도체 '슈퍼사이클'(장기호황)을 근거로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를 2%로 잡았다.

그러나 반도체가 한국 경제를 떠받치는 구조가 안정적인지에 대해서는 점검이 필요하다. 한국 경제가 반도체, 그중에서도 메모리 반도체 수출에 편중됐기 때문이다. 문제는 메모리 반도체가 글로벌 경기 변동에 민감하다는 점이다. 경기 하락 시 자칫 한국 경제 전반이 휘청거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반도체를 기초체력 삼는 한편, 장기적으로는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사회 구조적 대전환이 필수적이라고 제언한다. 반도체 산업과 맞물려 돌아가는 에너지, 기후, 인구 분야에 대한 정부의 종합적인 개선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작년 대한민국 경제 '떠받친' 반도체…올해도 수출 비중 30% 전망

부산항 북항이 분주한 모습이다. 연합뉴스

지난해 한국의 최고 수출 효자 품목은 단연 반도체였다. 12일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연간 수출액 7079억 달러 중 반도체 수출은 전년보다 22.2% 증가한 1733억9천만 달러에 달했다. 전체 수출에서 반도체 비중은 24.4%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특히 전년 대비 전체 수출액 증가분이 260억9천만 달러인데, 반도체 증가분은 314억7천만 달러에 달해 전체 증가분의 약 120.6%에 달한다. 이는 글로벌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와 AI 열풍으로 인한 서버 수요 증가로 메모리 반도체 가격과 출하량이 동시에 상승했기 때문이다.

출처 WSTS
올해는 반도체 수출이 더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세계반도체무역통계기구(WSTS)는 올해 글로벌 반도체 시장 규모가 약 975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전년보다 26% 넘게 성장한 수치로 역대 최대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HBM 시장 규모는 598억달러로, 전년 대비 43.8%나 뛸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국내 반도체 수출 비중 역시 30%를 돌파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반도체 상승세를 의식한 정부는 올해 경제성장률을 지난해 1% 안팎에서 대폭 끌어올린 2%로 전망했다. 재정경제부 김재훈 경제정책국장은 7일 언론사 부장 사전 간담회에서 '구조적 제약이 큰 상황에서 성장률 2%가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2% 성장률은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수출 회복과 건설 투자가 마이너스 폭을 줄이면서 완만하게 개선될 것이라는 전제를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건설 투자가 그동안 전체 성장률을 끌어내렸지만, 올해는 그 영향이 완화될 것으로 본 것이다.

실제로 반도체 특수는 건설 투자 회복세 등으로도 흘러갈 것으로 보인다. 전반적인 주택 건설이 침체된 상황에서도 대규모 반도체 설비 증설은 '단비'나 다름없다. 실제로 반도체 생산 클러스터인 경기도 평택에는 삼성전자가 P5 반도체 공장 건설을 추진 중이다. 경기도 용인 일대에는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도합 1천조원 가까이 투자하는 메가 반도체 클러스터가 조성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전력, 용수, 교통 등 관련 산업 전반에도 파급 효과가 이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반도체 쏠림 현상도 과제…메모리 반도체 의존 현상 우려


15대 주요 품목의 2025년 수출 실적(억 달러, %). 산업통상부 제공
수출 호조는 고무적이지만 마냥 축배를 들 수는 없다. 우리 경제가 지나치게 반도체에 의존하는 '쏠림 현상'이 심화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반도체(24.4%)를 제외하면, 나머지 주요 품목의 순(純)수출은 감소했다. 특히 15대 주력 수출 품목 가운데 9개 품목의 실적이 떨어지면서 전반적으로 부진한 성적을 냈다. 반도체 수출 호황이 곧바로 내수 회복이나 고용 확대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반도체 공정이 고도화할수록 해외 고가 장비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국내 소부장 기업의 매출 기여도는 감소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산업 구조가 오히려 취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만약 AI 열풍에 올라탄 반도체 호황이 꺾일 경우, 수출 증가세 둔화와 함께 경제 전반이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최근 '수출·경상수지 상황에 대한 평가와 향후 전망' 보고서에서 "AI 혁명은 메가트렌드로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지만, 닷컴 버블과 같은 급격한 조정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며 "반도체 호황은 우리 경제의 '양날의 칼'로, 의존도가 높아진 만큼 경기가 하강 국면으로 전환될 경우 파장이 예전보다 클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 국장도 경제성장전략 사전 브리핑에서 "그동안 반도체가 우리 경제 성장을 이끌어 왔지만 반도체로 편중된 성장을 하다 보니 어떤 한계도 있었다"고 우려한 바 있다.

반도체 부품 공장. 한국무역협회 제공

여기에 더해 한국의 반도체 생태계가 계속해서 도전받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위기감은 더욱 커진다. 한국은 메모리 분야인 HBM과 D램 등에서는 세계를 주도하고 있지만, 정작 AI 시대에서 '머리' 역할을 하는 시스템 반도체 부문에서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한국무역협회는 지난해 7월 '팹리스 스타트업 활성화 및 수출 연계 전략' 보고서에서, 전세계에서 한국의 시스템 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2% 수준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72%를 차지하는 미국과 대만(8%), 일본(5%), 중국(3%)에 밀리는 수준이다. 이는 한국의 반도체 수출 구조 역시 일부 품목에 과도하게 쏠려 있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1조 달러'에 달하는 반도체 시장이 서서히 시스템 반도체 쪽으로 무게 중심을 옮겨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혁신 아이디어와 설계 기술을 전문으로 하는 팹리스 분야의 경우 메모리 분야보다 부가가치가 높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엔비디아가 대표적이다. 위탁 생산을 담당하는 파운드리 분야에서는 대만의 TSMC가 압도적인 경쟁력으로 글로벌 공급망을 주도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시스템 반도체 투자로 반도체 생태계 전반을 키우는 전략적 전환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산업연구원 김양팽 전문위원은 통화에서 "당연히 메모리 반도체 분야를 포기할 수는 없고 이 분야에서 초격차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시스템 반도체 육성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 반도체 성장 동력 확충·다각화 목표 발표

이재명 대통령이 9일 청와대에서 열린 경제성장전략 국민보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 역시 반도체 수출 의존 구조, 특히 메모리 반도체 쏠림 현상을 인식하고 있다. 이에 정부는 9일 '경제성장전략'(옛 경제정책방향) 발표를 통해 올해 반도체 성장 동력을 확충·다각화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기존의 제조 중심에서 팹리스까지 아우르는 생태계를 구축해 반도체 '세계 2강'을 달성하겠다는 취지다.

지난달 10일에는 이재명 대통령을 주재로 'AI 시대, 반도체산업 육성전략'을 통해 시스템 반도체 육성 계획을 발표했다. 민간과 함께 700조원 이상을 투자해 반도체 생산 팹 10기를 신설하겠다는 방침이다. 남부권을 중심으로 초대형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수출에서의 반도체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방안도 냈다. 방산·바이오·K문화 분야를 집중 육성해 '신성장 엔진'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수출 품목을 다변화해 안정적인 구조를 갖추겠다는 목표다.

근본적으로 '에너지·기후·인구' 구조적 대전환 필요해

전문가들은 산업 지원책도 고무적이지만, 반도체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는 사회 구조적 대전환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제언한다. 특히 반도체 산업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에너지 △기후 △인구 등에서의 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해야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후 튼튼한 반도체 산업을 기초체력 삼아 당면한 AI 전환까지 속도를 낼 경우 대한민국 경제가 도약할 수 있다는 취지다.

삼성전자 지속가능경영보고서 2025
에너지(전력) 문제는 반도체 산업의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다. 24시간 가동되는 반도체 공장만 하더라도 '전기 먹는 하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DS(반도체) 부문 에너지 사용량은 3만4592GWh다. 이는 모바일·가전 부문 전력 소모량(4180GWh)의 9배 수준이다. SK하이닉스의 전력 소모량도 2021년 1만921GWh에서 2023년 1만2011GWh로 높은 수준이다.

이를 현재 수준의 재생에너지만으로 충당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많다.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가 지난해 6월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반도체 산업의 재생에너지 수요는 2032년부터 공급을 초과하고, 2038년에는 부족분이 25%에 달한다. 여기에 애플 등 글로벌 고객사가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만든 반도체를 요구하기 시작하면서, 'RE100'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중요한 과제가 됐다.

이 같은 문제는 최근 정부가 추진 중인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사업에서 본격적으로 불거지고 있다. 용인에 반도체 공장이 10개 들어서야 하는데 용인에 해당 수요에 맞는 전력과 용수를 공급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재생에너지 전기를 끌어올 고압 송전선로 건설은 주민 반발에 부딪혔고, 기업 자체 생산만으로는 16GW에 달하는 막대한 전력 수요를 감당할 수도 없다. 결국 구체적인 에너지 공급 대책과 사회적 합의 없이 첫 삽을 뜨면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용인시 제공

중앙대 정동욱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통화에서 "에너지 '트릴레마'(세 가지 딜레마)인 환경 영향, 경제성, 공급 안정성 세가지 측면을 고려할 때 하나의 에너지로 모든 조건을 충족할 수는 없다"며 "결국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어느 정도는 섞어서 가져가는 '믹스 에너지'는 불가피하지만 그 구성 방식을 두고 사회적 논의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에너지 문제와 함께 딸려오는 기후 문제도 해결해야 할 주요 숙제다.

인구 문제도 향후 반도체 산업 성장 동력의 주요 변수다. 저출산으로 인한 생산 가능 인구가 감소하는 데다, 글로벌 경쟁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이공계 인재까지 기근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달 11일 '이공계 인력 부족 실태와 개선 방안' 보고서를 통해 2029년까지 AI, 클라우드, 빅데이터 등 신기술 분야 중급(학사) 인재가 29만2천여명, 고급(석·박사) 인재는 28만7천여명 부족할 것으로 내다봤다. 보고서는 해당 주요 산업에 대한 투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어 이를 감안하면, 해당 부족분은 최소치라고 분석했다.

인하대 강병구 경제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생산 가능 인구가 줄어들게 되고 이것이 장기적으로 잠재성장률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며 "결국 주요 분야의 인재 수급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경제성장전략 발표를 통해 인적 자본 극대화를 핵심 축으로 삼아 저출생·고령화 대응 정책 체계를 전면 재편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인구 감소에 대응해 노동 공급 기반을 유지하고, 중장기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구체적인 재원 마련 및 세제 개편 방안도 논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 교수는 "사회 대전환을 요구하는 정책 추진을 위해서는 상당한 재원이 필요하고 또 그에 맞는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며 "이번 경제성장전략에 이 같은 부분이 미흡했고, 향후 세제개편안 발표때 보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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