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에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 배우자의 횡령 의혹 사건이 2024년 3월 접수됐지만, 권익위는 해당 사건을 그해 5월 경찰에 단순 '송부'해버렸다. 내용을 조사해 혐의를 어느정도 확인한 뒤 경찰에 '이첩'할 수도 있었지만, 사건을 떠넘겨버린 모양새다.
권익위가 신고를 접수한 3월과 사건을 송부한 5월 사이에는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다. 그해 4·10 총선에서 민주당이 175석을 획득해 압도적 다수당이 되면서 '슈퍼 야당'이란 말까지 나왔고, 당시 김 의원도 3선에 성공해 중진 의원의 반열에 올렸다.
권익위가 이같은 당시 권력 지형에 눈치를 본 것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는 대목이다. 권익위로부터 사건을 넘겨 받은 경찰은 그해 8월 김 의원 배우자 이모씨를 입건도 하지 않고 내사 종결했다. 그렇게 이씨가 조진희 전 동작구의회 부의장의 법인카드를 사적으로 유용한 혐의 사건은 일단락 됐다.
10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2024년 3월 18일 권익위에 '동작구의회 의원의 법인카드 횡령을 통한 사적 사용'이라는 제목의 부패행위 신고서가 접수됐다. 신고 대상은 당시 동작구의회 부의장이던 조진희 전 구의원. 2024년 4월 10일 제22대 국회의원 총선을 한 달도 채 남기지 않은 시점에 신고가 접수된 것이다.
CBS노컷뉴스가 입수한 당시 부패행위 신고서를 보면, 조 전 부의장이 법인카드를 김 의원 아내 이모씨에게 제공했을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정황이 다수 담겨 있다. 신고인 A씨는 신고서에서 "조진희는 2022년 9월 20일 오전 11시 51분쯤 '업무추진관계자와 간담회' 명목으로 시골집 백반식당에서 14만 원을 결제했고 같은 날 오후 6시 38분쯤 신방통통 낙지 식당에서 같은 명목으로 20만 7천 원을 사용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하지만 해당 시각에 조진희는 동작구의회 행정재무위원회에 참석 중이었고, 이에 대한 의회의 회의록에 같은 시간에 조진희가 직접 참석해 발언하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조 전 부의장이 법인카드를 직접 사용할 수 없었던 정황을 구체적으로 적은 것이다.
A씨는 또 "현직 동작구의원 등의 전화통화 녹취에서 조진희가 '국회의원 김병기의 부인 이씨에게 자신이 동작구 부의장용 법인카드를 줬고, 이 카드를 이씨가 사용한 적이 있다'는 취지로 말한 것을 들었다는 내용이 확인됐다"하며 해당 통화녹취록도 함께 제출했다.
이뿐만 아니라 신고서에는 2022년 7월과 11월에도 조 전 부의장이 아닌 제3자가 법인카드를 사용한 것으로 의심되는 내역들이 구체적으로 적시돼있다. 이같은 정황을 종합해 김 의원 아내 이씨의 법인카드 유용 의혹에 대해 철저한 조사를 통해 사실관계를 확인해야 한다는 게 A씨의 설명이다.
그러나 권익위는 2024년 5월 말 해당 신고를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권익위법) 제59조 3항에 따른 '수사기관 이첩'이 아닌, 같은 조 4항을 근거로 수사기관에 '송부' 처리했다. 제3항은 신고사항에 대해 수사가 필요한 경우 수사기관에 이첩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반면, 제4항은 이첩 또는 종결처리 대상인지 명백하지 않을 경우 조사기관에서 처리하도록 송부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결국 권익위는 총선 직전 현직 국회의원의 배우자 비위 의혹 신고를 접수하고도 사안에 대한 판단을 유보한 채 사건을 경찰로 넘긴 셈이다. 이후 사건을 넘겨받은 서울 동작경찰서 역시 해당 의혹에 대해 정식 수사를 착수하지 않고 2024년 8월 27일 최종적으로 내사 종결 처분을 내렸다.
더군다나 경찰 내사 과정에서 김 의원이 국민의힘 소속 경찰 출신 의원을 직접 찾아가 수사 무마를 청탁했다는 의혹, 자신의 전직 보좌진을 통해 수사팀과 접촉해 수사를 무마하려 한 의혹들 역시 연달아 제기된 바 있다.
권익위는 해당 신고를 수사가 필요한 경우로 판단하지 않은 이유에 대한 CBS노컷뉴스의 질의에 "사건 처리 내용과 결정에 대해서는 알려드릴 수 없다"는 입장만 밝혔다. 한편 김 의원은 2024년 6월 출범한 22대 국회에서 정무위원회에 배정됐다. 권익위는 정무위 피감기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