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재를 자청한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을 놓고 러시아의 명분쌓기가 계속되는 모양새다.
1일(현지시간) 타스 통신은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에 점령된 동부 헤르손에 드론 공격을 가해 수십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타스 통신은 러시아가 임명한 블라디미르 살도 헤르손 주지사를 인용해 이날 오전 헤르손 지역 흑해 연안 마을 호를리의 카페와 호텔이 우크라이나 드론 3대의 공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해당 공격으로 최소 24명이 숨지고 29명이 다쳤다는데 부상자 가운데는 어린이 5명이 포함됐다고 강조했다.
살도 주지사는 "무방비 상태의 여성과 어린이를 표적으로 삼은 호를리 테러 공격은 우크라이나 정권의 고뇌를 보여주는 징후"라며 "많은 이가 산 채로 불에 탔다"고 말했다. 러시아 당국은 2~3일을 애도 기간으로 선포했고, 러시아 외무부는 "키이우 정권이 이 야만적 만행으로 재차 비인간적이고 네오나치적인 본성을 보여줬다"는 성명을 내놨다.
앞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종전 협상이 진행 중인데도 우크라이나군이 드론으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관저를 공격했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는 강하게 부정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역시 지난달 31일 '공격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고, 트럼프의 평화 구상을 방해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추가 공격을 정당화하기 위해 날조되거나 과장된 이야기'라는 뉴욕포스트 사설 링크를 공유하며 우크라이나에 힘을 보탰다.
하지만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군의 푸틴 관저 드론 공격이 사실이라는 주장을 이어갔다. 리아노보스티 통신은 1일 러시아 국방부 성명을 인용해 "러시아 특수기관 요원들이 지난해 12월 29일 밤 노브고로드 지역 상공에서 격추된 우크라이나 드론의 항법장치에서 비행 계획 파일을 추출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해당 파일에 저장된 데이터를 해독한 결과, 드론의 최종 목표 지점이 푸틴 대통령 관저의 한 시설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고 강조했다. 전날 러시아 국방부는 자국 소속 군인이 숲에 격추된 우크라이나산 차클룬 드론의 잔해를 보여주는 영상과 드론의 항로를 상세하게 그린 지도를 공개했는데, 파일 추출까지 언급하며 공세를 이어간 셈이다.
해당 영상 공개 직후 헤오르히 티키 우크라이나 외무부 대변인이 "우습다. (우크라이나는) 이 같은 공격이 없었다는 데 절대적으로 확신한다"고 맞받아쳤지만 러시아는 드론 항법장치까지 추가 공개하며 우크라이나를 압박하는 모양새다.
러시아의 이같은 주장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달 28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2시간 반 동안 종전 관련 회담이 진행된 후 더욱 노골화되고 있다. 회담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는 물론 유럽 정상들과 전화로 소통하며 종전 필요성을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전쟁 종식에서 많은 진전을 이뤘다"며 평가했고, 젤렌스키 대통령도 "몇주 동안 미국과 우크라이나팀이 이룬 진전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종전 협상이 합의까지 얼마나 가까이 왔느냐는 질문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입장이) 가까워졌다"며 "95% 정도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러시아의 잇달은 우크라이나군의 푸틴 관저 공격 주장에 미국 안보 당국자들은 우크라이나의 해당 공격이 없었다고 판단내린 뒤, 이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미국, 우크라이나 드론 공격은 푸틴을 겨냥하지 않았다고 결론'(U.S. Finds Ukraine Didn't Target Putin in Drone Strike)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중앙정보국(CIA)이 분석한 결과 푸틴 대통령에 대한 공격 시도는 없었다"는 정보 당국 관계자의 말을 인용 보도했다.(U.S. national-security officials said Wednesday that Ukraine didn't target Russian President Vladimir Putin or one of his residences in an alleged drone operation.)
워싱턴포스트(WP) 역시 "우크라이나군이 푸틴 별장 중 한 곳을 공격하려 했다는 입증되지 않은 주장 뒤에는 전쟁 종식을 가로막으려는 러시아의 장애물이 숨어 있다"고 보도했다. WP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우크라이나를 자국의 영향권으로 되돌리려는 러시아의 고집"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결국 우크라이나군의 푸틴 관저와 헤르손 지역 드론 공격에 대한 러시아의 계속된 주장은 미국이 주재하는 종전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러시아 정부의 고도의 전략으로 풀이된다. 현재 종전 협상에서 최대 난제는 우크라이나의 동부 돈바스 지역 국경 문제로 모아진다. 러시아측은 우크라이나군이 돈바스 전체에서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의 이같은 주장을 기만 전술로 받아들이고 있어 실제 종전까지 적잖은 진통이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