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어떤 '실패들'에 관한 이야기

황진환 기자

이번 칼럼은 실패했다. 계획은 그럴싸했다. 키보드를 두드리기 전까지는. 드라마 때문이었다. 실패한 '김부장'을 끌어다 작은 실패들을 위로하는 다정한 글이 쓰고 싶어졌다. 한 해를 닫는 마지막 날에 어울릴 법한, 그런 글.

개인적인 좌절, 주변의 부침. 성과를 내고도 허탈했던 순간이나, 버텼지만 보상받지 못했다고 느낀 시간들. 혹은 언론의 위기와 자성의 목소리까지. 소소한 실패들을 하나씩 꺼내보다 결국 멈췄다. 다정한 문장으로 감싸기에는 너무 크고, 아직 끝나지 않은 실패가 있었다.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실패였다.

비상계엄은 6시간 만에 해제됐다. 헌정사 최초로 현직 대통령이 체포됐고, 이어 구속됐다. 헌법재판관 8명 만장일치로 파면됐다. 여덟 차례 기소됐다. 가장 먼저 결심이 진행된 체포 방해 등 혐의 사건에서는 징역 10년이 구형됐다. 본류 사건인 내란 우두머리 재판의 법정형은 사형, 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밖에 없다.

그저 한 개인의 몰락으로 볼 수는 없다. 계엄 해제에 뒤이은 체포와 구속, 파면과 기소는 결과일 뿐이다. 그 이전에 정치가 사라져서다. 야당과의 대화는 단절됐다. 심지어 정부여당과도 소통하지 못했다. 조정과 설득의 언어는 자취를 감췄다. 정치의 빈자리를 무력으로 채우려 했을 때, 파국을 향해 걸어 들어간 꼴이 됐다.

뒤집어 보자. 국회는 150분 만에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처리했다. 한 차례 불발에도 탄핵소추안을 의결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체포영장을 집행했고, 법원은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헌법재판소는 파면을 결정했다. 조은석 내란 특별검사팀은 신병을 다시 확보했다.

제도는 제대로 작동했다. 절차는 멈추지 않았다. 권력은 마침내 통제됐다. 누군가의 결단이나 영웅적 행동 덕분이 아니었다. 제도와 절차는 결코 스스로 움직일 수 없다. 그 톱니바퀴를 돌린 건 수많은 '김부장들'이었다.

누군가는 거리에서, 누군가는 출근길에 휴대전화를 확인하며, 또 누군가는 아이를 재운 뒤 거실 불을 끄지 못한 채 상황을 지켜봤다. 때로는 목소리를 냈다. 요구는 단순했다. 법대로 하자, 선을 넘지 말라. 그렇게 함께 실패를 통과했다.

그 평범함이 2025년을 버티게 했다. 실패가 실패로만 남지 않도록 만들었다. 민주주의는 늘 거창한 장면으로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이번에도 그랬다. 실패한 권력의 뒤편에서, 실패를 견뎌낸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이 칼럼은 실패했다. 김부장을 불러내 실패한 사람들을 토닥이려다, 실패를 통과해 온 사람들을 기록하는 글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어떤 실패들은 기록될 때 비로소 다음 실패를 막는 기억이 된다.

어떤 실패들에 관한 이야기로 올해를 마친다. 내일이면, 작년은 끝났고 새해는 아직 모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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