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와 중국산'에 뿌리채 흔들리는 K배터리…돌파구는?

K-배터리, 보조금 폐지·중국 LFP 공세 직격탄
중국산 저가 공세에…美 ESS 시장으로 만회
ESS로 버텨보지만…한계도 분명

연합뉴스

국내 배터리 업계가 비상이다. 미국 내 전기차 보조금 폐지와 중국산 배터리의 대약진이라는 이중고에 직면하면서다.

국내 업체들은 갈등이 심화하는 미·중 관계를 파고들면서 ESS(에너지 저장 장치·Energy Storage System)로 눈길을 돌리고 있지만 새로운 수요 창출에도 더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잇따라 계약 해지…韓中 점유율 데드크로스 현실화

LG에너지솔루션 제공

31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배터리 업계 위기감은 LG에너지솔루션이 이달 지난해 매출의 절반에 달하는 대규모 계약 해지를 잇달아 발표하면서 고조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달에만 두 건의 대규모 계약 해지를 공시했다. 포드와 FBPS로부터 계약 해지가 현실화하면서 일주일 사이 지난해 매출의 절반이 넘는 13조 5천억 원 규모의 배터리 공급 계약이 취소됐다. 불과 열흘 남짓한 기간에 연 매출의 50%가 넘는 대형 계약들이 줄취소된 것이다.

문제는 이같은 초비상 사태를 단기간에 만회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 9월 전기차 구매 보조금 혜택을 종료한 데다 유럽연합(EU)도 2035년까지 내연기관차 판매를 금지하려던 정책을 사실상 철회하면서 전기차 캐즘은 더욱 심화할 수밖에 없다. 업계에서는 미국 전기차 보조금 폐지 여파로 인해 판매량이 전년 대비 15% 정도 급감할 것으로 예상할 정도다.

포드는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차세대 전기 픽업트럭(T3)과 차세대 전기 상용 밴 개발 계획을 모두 취소하기로 했고 GM 역시 2035년까지 전 차종을 전기차로 전환하겠다는 전략을 폐기했다.

설상가상으로 유럽 내 전기차 수요가 중·저가형 모델에 쏠리는 것도 국내 배터리 업체엔 악재다. 국내 업체들은 삼원계 배터리를 주력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중국 업체들은 이보다 저렴한 LFP 배터리를 대량으로 양산하면서 유럽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실제로 유럽 시장 내 한국 배터리의 점유율은 2022년 63.5%에서 2024년 상반기 기준 48.8%로 14.7%p 급락했다. 반면 같은 기간 중국 업체들의 점유율은 34.0%에서 47.8%로 13.8%p 급등하며 한국을 1%p 차이로 바짝 추격하고 있다.

이러한 급격한 변화의 배경에는 유럽 각국의 보조금 삭감이 자리 잡고 있다. 보조금이 줄어들자 소비자들은 주행거리가 조금 짧더라도 가격이 저렴한 전기차를 찾기 시작했고, 완성차 업체들은 원가 절감을 위해 한국산 삼원계 배터리 대신 중국산 LFP 배터리를 대거 채택하기 시작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가성비를 따지는 소비자들이 전기차 시장의 메인이 되면서 유럽 시장은 중국 쪽으로 유리하게 가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업체들도 뒤늦게 LFP 라인 전환에 나서고 있지만 이미 규모의 경제를 확보한 중국과의 가격 경쟁에서 기회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출하량 감소는 공장 가동률 하락으로 이어진 상태다.  SK온의 공장 가동률은 2023년 87.7%에서 2024년 43.6%로 급락했고 2025년 3분기에는 누적 기준 52.3%에 머물렀다. LG에너지솔루션 역시 같은 기간 가동률이 69.3%에서 50.7%까지 하락했다.

ESS는 과도기적 해결책…美中 갈등 더 파고들어야

연합뉴스

배터리 업체들은 전기차 시장에서 고전을 겪으면서 ESS 생산 능력을 확대하고 있지만, 이것만으로 캐즘을 완벽하게 극복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인 의견도 나온다. ESS 시장의 성장만으로는 전기차 시장의 부진을 상쇄하기에는 부족해서다.

증권가에서는 전기차용 배터리 수요는 내년 기준 2년 전에 비해 400GWh 낮아졌지만 같은 기간 ESS 시장 수요는 100GWh 늘어나는 데 그칠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 ESS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기는 하지만, 전기차 수요 둔화로 발생한 배터리 산업 전반의 성장 공백을 완전히 상쇄하기엔 역부족인 상황인 것이다.

여기에 이미 ESS 시장마저 중국에 선수를 뺏겼다는 평가도 크다. SNE리서치 집계 결과 올해 10월 기준 국내 배터리 3사의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합산 점유율은 16%로 전년 대비 3.5%p 하락한 상태다.

다만 미중 갈등이 상시화되면서 국내 배터리 업체들에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ESS 시설이 국가기간산업이나 첨단산업에 쓰이는 만큼 미국은 중국산 배터리에 대해 넘기 힘든 '관세 장벽'을 세웠다.

SK증권 리서치에 따르면 중국산 LFP 배터리는 관세 전 kWh당 70달러로 절대적인 가격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관세를 적용하면 2026년 기준 실질 가격은 104달러까지 오른다. 한국 LFP(116달러)와의 격차가 12달러 수준으로 좁혀지는 셈이다.

또다른 업계 관계자는 "미국이 정책적으로 (배터리에) 중국산 광물을 쓰면 보조금을 주지 않고 고율의 관세까지 매기면서 국내 업체에 동앗줄이 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에릭 슈미트 전 구글 회장이 설립한 비영리 싱크탱크 SCSP는 "중국에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고 미국이 혁신 및 생산을 주도할 수 있는 탄력적 로봇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하면서 이같은 진단에는 더 힘이 실린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또 ESS 라인 전환은 물론, 새로운 수요를 창출해야 한다는 진단도 내놓고 있다. ESS 시장이 선호하는 LFP 각형으로 체질 개선을 서두르되, 넥스트 모빌리티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구체적으로는 드론과 휴머노이드 로봇에 쓰이는 고출력·고안전 배터리 개발도 거론된다.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의 핵심 전력으로 손꼽히는 분야인 만큼 미국 내에서 중국산 배터리 의존도를 낮추려는 수요가 동시에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산업연구원 황경인 전문위원은 "한국이 강점을 보유한 배터리 분야에서 미국과의 협력을 확대해 휴머노이드용 고성능 배터리 시장을 선점할 필요가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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