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막대한 로비'로 美 뒤에 숨나…한미 협상에 찬물

국회 정무위, 온플법 추진 만지작…시기 조율
쿠팡 개인정보 유출로 급물살…영업정지 조치 검토
쿠팡 규제 움직임 국면에 美 FTA 회의 돌연 취소
미 의회 "미국 겨냥 디지털 규제가 한국에 확산"
"쿠팡 사태가 미국 내 문제인식 영향 미친듯"
최근 5년간 대미 로비에 150억 쏟은 쿠팡
"유통기업이 미국에 로비해 한국 정부 주권 침해"

쿠팡 제공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일으킨 쿠팡을 겨냥해 정부·여당이 전방위 압박을 가하고 있다. 쿠팡 미국 본사를 겨냥한 세무조사와 함께온라인 플랫폼 규제 입법도 추진 중이다.

그러나 한미 통상 중 비관세 협상을 앞두고 미국이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고 있다. 미 의회가 우리나라의 플랫폼 규제 추진을 공개 비판한 데 이어 최근 한미자유무역협정(FTA) 공동위원회까지 돌연 취소되면서, 쿠팡 압박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 관측이 나온다. 그동안 대미(對美) 로비에 150억원을 넘게 쏟아부은 쿠팡이 한미 간 통상을 빌미로 미국 뒷배에 숨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개인정보 유출로 '플랫폼 규제' 힘 받아…영업정치 조치 가능성도

24일 유통업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 정무위원회는 온라인플랫폼공정화법(온플법) 제정 추진 시기를 조율 중이다. 온플법은 쿠팡 등 대형 플랫폼 기업을 시장 지배적 사업자로 규정하고 불공정 거래 등을 규제하는 목적의 법안이다. 구체적으로 자사 우대 행위 등을 규제하는 독과점규제법과, 플랫폼 입점업체에 대한 수수료 상한제 등을 담은 거래공정화법 등으로 구성됐다. 당초 올해 상반기 입법을 추진했지만, 한미 관세협상 과정에서 미국 측이 온플법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한동안 진전이 없었다.

그런데 최근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 여파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온플법 재추진에 힘이 실리고 있다. 한 국회 정무위 관계자는 통화에서 "구체적인 시점은 조율해야 하지만 쿠팡 사태로 온플법 추진에 힘이 실리고 있다"며 "미국에서 문제 제기하는 부분은 덜어내고 일부를 우선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소관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도 온플법 추진에 공감하는 기조다.

정부도 쿠팡을 겨냥한 전방위 압박에 나섰다. 국세청은 쿠팡 미국 본사를 겨냥한 세무조사를 추진 중이다. 서울지방국세청은 지난 22일 쿠팡 한국 본사와 쿠팡풀필먼트서비스에 조사관 150여 명을 투입해 회계 자료 등을 확보했다. 이와 함께 국외 거래를 담당하는 국제거래조사국도 투입해 쿠팡풀필먼트서비스와 미국 본사인 쿠팡Inc 간 거래 과정에서의 탈세 의혹도 들여다 볼 것으로 전해졌다.

초강수 카드인 '영업정지' 처분이 내려질 수도 있다.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19일 KBS '뉴스라인W'에 출연해 "쿠팡이 피해 회복 조치를 적절히 실행하고 있지 않을 경우에는 영업정지 처분을 부과할 수 있다"고 밝혔다. 국토교통부는 쿠팡의 택배운송사업자 인·허가권 박탈을 논의 중이다. 인·허가권이 박탈될 경우 쿠팡은 상품 배송을 할 수 없어 사실상 영업이 정지된다

규제 움직임에 美 압박 움직임…"쿠팡 간접적 영향 미쳤을듯"

이런 가운데 최근 미국이 비관세협상을 앞두고 돌연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면서, 쿠팡 규제가 한미 통상에 불씨가 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앞서 미 무역대표부(USTR)는 현지 시각 18일 워싱턴DC에서 예정돼 있던 FTA 공동위원회 비공개 회담을 취소했다. 해당 회의는 지난 10월 한미가 체결한 한미관세 협상 후속 조치로, 비관세 분야 합의 세부 이행계획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다.

이와 관련해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소식통을 인용해 해당 회의 취소가 한국이 디지털 규제를 추진하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기사에서 소식통은 "미 행정부는 한국이 디지털 분야를 비롯한 우선과제에서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고 보고 있다"고 밝혔다. 여기서 디지털 규제는 국회가 추진 중인 온플법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앞서 한미가 체결한 팩트시트에는 '네트워크 사용료 및 온라인 플랫폼 규제에서 미 기업이 차별받지 않도록 보장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미국 컴퓨터통신산업협회(CCIA)도 회의 취소 배경에 대해 "한국 국회의 국정감사 등에서 불거진 쿠팡 등 미국 상장 기업에 대한 과도한 규제 압박과 데이터 관련 조사를 규제 과잉이자 부당한 대우로 간주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미 무역대표부(USTR)의 제이미슨 그리어 대표는 한국이 규제안을 철회하지 않을 경우 보복 관세로 이어질 수 있는 무역법 301조 조사 착수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실제로 미 의회는 한국의 디지털 규제를 공개적으로 우려하고 있다. 현지 시각 19일 연방 하원 법제사법위원회 반독점소위 스콧 피츠제럴드 위원장은 청문회에서 "미국 기업에 대한 EU의 디지털 규제가 한국 등 동맹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다만 우리 정부는 해당 회의가 사전 의제 조율 과정을 밟다가 연기됐다는 입장이다.

한미 통상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통화에서 "미 의회를 중심으로 디지털 규제에 대한 경계심이 매우 높아졌다"며 "쿠팡이 미국 증시에 상장된 기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쿠팡 사태가 미국 내 문제 인식에 간접적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대미 로비 150억 쏟는 쿠팡…"기업이 국가 주권 위협" 비판도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쿠팡 침해사고 관련 청문회에서 해롤드 로저스 쿠팡 대표이사가 의원 질의에 답변을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

일각에서는 쿠팡의 막대한 대미 로비가 최근 미국의 부정적 반응에 영향을 미친 게 아니냐는 분석을 제기한다. 미 상원 로비 보고서에 따르면, 쿠팡Inc은  2021년 뉴욕증시 상장 후 그해 8월부터 최근까지 5년간 1075만달러(약 159억2천만원)를 로비 활동에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로비 대상은 연방 상·하원뿐 아니라 백악관, 무역대표부(USTR) 상무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국무부, 재무부 등을 망라했다.

쟁쟁한 로비스트들도 기용했다. 트럼프의 측근 제프리 밀러가 이끄는 '밀러 스트래티지'를 비롯해 로비 매출 1위 기업인 '에이킨 검프',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최측근인 알베르토 마르티네즈가 포진된 '콘티넨털 스트래티지' 등 최고 로비업체들이 쿠팡을 대리해 로비했다. 알렉스 웡 전 백악관 국가안보부보좌관도 쿠팡 소속 로비스트로 활동했다.

미국에서의 로비 활동은 불법이 아니다. 그러나 사실상 우리나라 전국민의 개인정보를 유출한 이후 책임 있는 조치를 보이지 않던 쿠팡 본사가, 미국에서만 방어막을 치는 데 급급했다는 지적은 피하기 어려워보인다. 특히 해당 로비가 실제 한미 양국의 민감한 통상 협상 국면에 영향을 미쳤다면, 개별 기업이 리스크 해소를 위해 국가 간 신뢰를 훼손한 책임까지 져야할 수도 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우영 의원은 쿠팡의 대미 로비와 관련해 "매출의 99%가 한국 국민에게서 나오는데, 그 돈으로 미국 정부에 로비해 한국 정부를 압박하는 것은 주권 침해이자 쿠팡의 민낯"이라며 "유통기업이 미국의 외교·안보 핵심기관까지 찾아간 것은 명백한 정치적 개입 시도"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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