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충돌' 사태로 재판에 넘겨진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과 박주민 의원이 1심에서 벌금형의 선고유예를 받았다. 함께 기소된 이종걸·표창원 전 의원, 김병욱 대통령실 정무비서관 등 민주당 전·현직 관계자들 총 10명 전원은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2019년 4월 사건이 일어난 지 약 6년 8개월 만에 나온 판결이다.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2부(김정곤 부장판사)는 19일 오후 2시 폭력행위처벌법 위반(공동폭행) 등 혐의로 기소된 민주당 박범계 의원에게 벌금 300만 원의 선고를 유예했다. 박주민 의원에게도 벌금 300만 원의 선고가 유예됐다.
선고유예는 유죄는 인정되지만 범죄가 비교적 가벼운 경우 형의 선고를 일정 기간 미루는 것으로, 해당 기간동안 특정한 사고가 없으면 형 자체를 면소해 주는 판결이다. 현행법상 현직 국회의원은 일반 형사사건에서 금고 이상의 형이 선고되면 의원직이 박탈된다. 이날 판결로 박범계, 박주민 의원 모두 의원직 박탈을 면하게 됐다.
같은 혐의로 함께 재판에 넘겨진 이종걸 전 의원에게는 벌금 500만 원, 표창원 전 의원에게는 벌금 300만 원이 선고됐다. 당시 민주당 원내부대표였던 김병욱 대통령실 정무비서관은 벌금 1천만 원 선고받았다. 이외 당시 민주당 보좌관과 당직자 등 관계자들에게도 벌금 200~300만 원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국회는 대화와 설득을 통해 법안을 처리하는 대의민주주의 핵심 기관으로, 국회 내에서의 폭력 행위는 어떠한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이어 "국회의원, 보좌진, 당직자들이었던 피고인들은 그 누구보다 법질서를 준수할 의무가 있었음에도 폭력적 수단으로 법안 처리를 강행했다"며 "이같은 행위는 국회에 대한 신뢰를 훼손한 것으로 그 책임이 가볍지 않다"고 지적했다.
다만 재판부는 "자유한국당 관계자들이 국회를 점거하고 봉쇄하면서 국회 기능이 마비되고 의사 진행이 장기간 중단되는 특수한 환경 속에서 불가피하게 촉발된 측면이 있다"며 "피고인들의 사익을 위한 행위는 아니었다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은 2019년 4월 당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과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선거법 개정안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려고 하자, 당시 야당인 자유한국당 의원 및 관계자들이 이를 막으면서 물리적으로 충돌한 사건이다.
이날 1심 선고를 받은 민주당 전·현직 관계자들은 당시 몸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자유한국당 의원과 관계자들에 상해를 가한 혐의를 받는다. 이들은 앞서 재판 과정에서 무죄를 주장하며 폭행 사실이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들의 행위가 정당했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주장을 대부분 받아들이지 않았다. 먼저 피고인들의 행위가 국회의원 면책특권에 해당한다는 주장에 대해 "법안 처리를 폭력적 방법으로 강행한 행위는 의정활동 범위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면책특권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또, 피고인들에 대한 기소가 차별적·선별적 기소로 공소권 남용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검찰은 구체적 가담 경위, 유형력 행사의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기소 대상을 선정했다"며 "피고인들이 주장하는 사유만으로는 공소 제기가 공소권 남용의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폭력 행위가 없었으며 고의도 없었다는 피고인들의 주장에 대해 "국회 폐쇄회로(CC)TV 영상 등 객관적 증거에 의해 피고인들의 유형력 행사 사실이 확인된다"며 "유형력을 행사하게 된 경위를 고려하면 고의성도 충분히 인정된다"고 했다.
행위의 정당성에 대해서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경호권 발동에 의한 질서유지 등 합법적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물리력을 행사했기 때문에 정당 행위로 볼 수 없다"고 봤다.
의원직을 유지하게 된 박범계 의원은 이날 선고 후 법원 앞에서 취재진과 만나 "저희들에 대한 기소는 윤석열에 의해 자행된, 공수처 설치에 앞장섰던 의원들에 대한 정치 보복적 기소였다"며 "재판부께서 무죄를 선고해 주시기를 바랐지만, 선고 유예를 하셨다는 점에서 아쉽다"고 말했다. 이어 "그럼에도 재판부가 오랜 시간 방대한 사건 기록을 모두 검토하고 피고인 측 주장을 일일이 판단해 준 점에 대해서는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박주민 의원과 김병욱 대통령실 정무비서관은 곧장 항소 의사를 밝혔다. 박 의원은 "항소를 통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폭력에 저항한 것이 정당했다는 것을 끝까지 밝히겠다"고 말했다. 김 비서관도 "재판 결과를 존중해야겠지만 납득할 수는 없다"며 "항소해서 실체적 진실을 밝혀나가겠다"고 했다.
앞서 같은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 황교안 자유와혁신 대표 등 자유한국당 전·현직 의원 및 관계자 26명 전원이 1심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현직 국민의힘 의원 6명 모두 의원직 박탈을 면했다. 이들은 특수공무집행방해와 국회선진화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부는 당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였던 나 의원에게 벌금 총 2400만 원을, 당시 당대표였던 황 대표에게는 벌금 총 2천만 원을 각각 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