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대한감리회 여성 목사 안수는 70년 됐지만 남녀평등 역사 자체는 94년 됐어요. 1931년, 우리 교회에는 남녀 외국인 선교사가 있으나 남선교사는 회원 될 자격이 있고, 여선교사는 일만 할 뿐 회원 될 자격이 없으니 불공평하다, 이 정신이 저희의 교단 법인 '교리와 장정'에 들어가서 명시됐죠. 회원 자격 란에 괄호열고 '남녀구분 없음' 괄호 닫고. 이게 어느 순간에 사라졌다고 하는데 남녀 구분이 없는 게 너무 당연할 때쯤 없어진 거죠."
최근 여성 안수를 위해 투쟁해 온 여성 사역자들과 신학자, 목회자들이 모인 토론 자리에서 최소영 기독교대한감리회 양성평등위원회 총무는 한국교회 남녀평등의 제도적 출발점을 이렇게 설명했다. 감리교에서 조선에 파송된 여성 선교사들의 역할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며 연회 조직의 정식 회원 자격을 부여한 것이 시작이었다. 1955년에는 여성 목사 안수가 이뤄졌고, 이후 한국기독교장로회,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총회,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예장 백석총회, 기독교한국침례회 등으로 여성 안수는 점차 확산됐다.
"과거엔 '남녀구분 없음', 지금은 '남자'로 제한"…거꾸로 가는 한국교회 남녀평등
약 100년이 지난 지금, 여성 안수를 둘러싼 한국교회의 시계는 퇴보하고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총회는 올해 정기총회에서 목사 자격 요건에 '남자'라는 표현을 명시적으로 삽입하는 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기존 규정에는 성별에 대한 명시가 없었지만, 이를 분명히 해 여성 안수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이로 인해 불과 1년 전, 109회 총회에서 여성 사역자에게 강도사 고시 응시 자격을 부여하고 강도권을 허락하기로 했던 결정은 사실상 무력화됐다.총신대학교 여동문회 부회장인 최성희 전도사는 "여동문회 내부에서는 지금 헌법 개정에 반대할 경우 어렵게 얻은 강도권마저 날아갈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고 전했다. 처음부터 다시 투쟁을 시작할 수 있겠느냐며 강도권에 만족하자는 체념도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최 전도사는 "차별된 문화에 젖어있지 말고 여성 사역자들이 응집력 있게 나아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최 전도사는 또 "합동교단에서 여성안수 불허는 남녀차별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똑같이 공부하고도 남성에게는 임시직으로 주는 과정을 우리에겐 평생 머물게 하는 것"이라며 "총회와 노회의 의사 결정권도 주지 않는데, 이는 총회의 헌법을 성경보다 위에 두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성경 전체를 문자적으로 해석하지도 않으면서 선택적으로 이 부분에 대해서만 문자적인 해석을 강요하는 것은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에 반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답을 정해놓은 '여성 안수' 논의…"'왜'라는 질문은 하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합신총회는 '여성 안수는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정암신학연구소가 최근 '여성 안수, 어떻게 볼 것인가?'를 주제로 정암신학강좌를 열었는데 여성 안수를 허락하지 않는 보수 교단, 합동·합신·고신에서 강연자로 참여해 신학적인 이유로 여성 안수를 허락할 수 없다고 강의했다. 주제 선정이 합신 총동문회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점을 고려하면, 보수 교단 내부에서 확산되는 여성 안수 논의에 대한 일종의 방어적 움직임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스스로를 전도사도 신학자도 아닌 '그냥 합신 소속 청년'이라고 소개한 박종찬 씨는 "여성 사역자들에 대한 배려가 없었던 일방적인 강의였고, 이미 답을 정해놓고 하는 발표들이었다"고 꼬집었다. 그는 "과거 합신 신대원 입학설명회를 갔는데 마지막 시간에 교무처장이 나와 '저희 교단은 여성들의 섬김에 감사하지만 성경적 원리에 따라 여성 목사 안수를 허용하지 않는다'고 맥락 없는 말씀을 하셨다"며 "그 날로 신대원 가는 것을 포기했다" 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우리가 어떤 유산을 물려줘야 할지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을 목사로 안수했다는 이유로 합신총회 경기북노회에서 면직됐다가 복권된 강경민 목사는 "25년 동안 목회를 하며 43명의 장로를 안수했는데 여자 장로는 단 한 명도 없었다"면서 "그럼에도 '왜'라는 질문을 해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강 목사는 "어떤 배경 속에서 자라느냐가 인생을 규정하는데 자기 환경을 뛰어넘어 질문하는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을 주변에서 거의 보지 못했다"며 "나 역시 그런 질문 없이 오랫동안 목회해왔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이어 "여성 안수를 허용하면 동성애 등 교회가 세속화될 것이라고 말하는데 정작 여성 안수의 본질이 무엇인지 질문하지 않은 채 '당연히 안 된다'고 여기는 습성이 있지 않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자라온 배경에 대해서 '왜'라는 근본적인 질문만 던질 수 있어도 그 신앙교육은 성공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먼저 길을 걸어온 이들의 쓴소리…"여성 안수는 교단 정치의 언어가 됐다"
여성 안수 운동의 길을 먼저 걸어간 이들은 교단들의 이런 차별적인 행보에 쓴소리를 쏟아냈다. 예장통합 전국여교역자연합회 전 총무인 성명옥 목사는 "1987년부터 여교역자 이름으로 여성 안수 운동을 시작했다"며 "'우리는 50년을 기다렸습니다'라고 전단지를 만들어서 돌리는데 한 유명 원로 목사가 전단지를 빼앗다시피 하시더니 '전도사들이 심방이나 하지 왜 여기 와서 세상 것들하고 똑같이 하고 있냐' 하더라. 수고한다 한마디라도 해줬으면 얼마나 용기가 됐을까 싶다"고 말했다. "여성 안수 운동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전도사들한테 일을 더 시키는 등 치졸하게 굴기도 했는데 전도사들도 그렇게 길이 들어서 얼마나 보수적이었던지 모른다"고 전했다.
'여성안수실현을위한예장여성회'에서 회장을 지낸 예장통합 탁혜경 목사도 "신학생 시절 여성 안수 운동하시는 분들께 협조하지 않았다"며 "안수를 받지 않아도 얼마든지 주님의 일을 할 수 있다는 자만심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이어 "전도사로 사역하러 갔을 때 하나님이 이 그 생각을 깨셨다"며 "섬기던 교회의 목사님이 내게는 설교를 시키지 않으면서 신대원 1학년 남학생한테는 설교를 시켰다. '목사 될 사람이니까 훈련시켜야지' 하더라. 너무 분해서 부글부글 끓었다"고 했다. 탁 목사는 "이후 여성 안수 운동을 시작하며 평신도를 찾아다니면서 교회 여성들의 인식을 깨우는 교육을 진행하고 이를 위해 커리큘럼도 만들었다"고 말했다.
여성 안수가 제도적으로 허용된 이후에도 차별이 이어지기도 했다. 최소영 목사는 "1972년 감리교 교리와 장정에 이상한 법이 들어왔는데, 결혼한 여자 목사는 교회 담임을 할 수 없다는 규정이었다. 민주화 운동이 있던 89년도에 없어졌다"면서 "2005년에는 부부 목사가 한 교회에서 담임자와 부담임자로 함께 사역할 수 없다는 규정이 생겼는데 최근 10월 입법의회에서 이 부부 목사 사역 제한 폐지안이 11표 차이로 부결됐다"고 말했다.
여성 안수 문제를 교단 내 정치 문제로 만드는 점도 지적했다. 총신대 박유미 교수는 "여성 안수에 찬성하면 바로 프레임을 씌워 공격해 교단에서 내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며 "결국 여성 안수는 '동성애'처럼 교단 내에서 제거하고 싶은 누군가를 치는 효과적인 공격 수단이 됐다"고 말했다.
"절반의 복음만 전하는 한국교회"…교단 넘어 연대의 필요성
보수 교단 내부에서 여성 안수를 위해 설득해나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제장로교(IPC) 조샘 목사는 "여성 안수를 반대하는 보수 교단들은 여성 차별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적으로 옳지 않다고 믿는 것"이라며 "그런 이들에게는 그들이 믿는 성경 해석이 그렇게 견고하지 않다는 점을 알려줘 '여성 안수가 성경적으로 옳지 않다'는 믿음에 약간의 흠집만 내도 충분히 변화의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이어 "갈등이 심화된 사회에 복음의 화평케함을 전하기 위해서라도 여성 안수를 도입해야 한다"며 "어떠한 상황 속에 있는 사람만 성경을 일방적인 관점이 아닌 또 다른 관점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여성들을 배제한다면 절반의 복음만 전하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예장통합 이선영 전도사는 "여성 안수를 위해 싸워 오신 선배들 덕분에 여성 안수에 대해서 크게 고민해 본 적이 없다"면서 "타 교단에서 여성 안수에 대해 반대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 교단으로 오면 되지 않느냐는 안일한 생각도 했다. 타 교단에서 여성 안수를 허용해야 한다고 내가 목소리를 내는 것이 맞는가 하는 고민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성 안수 문제에 대해선 모두 함께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교단을 넘은 연대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