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학살 박진경 유공자 취소 난관…트라우마 호소

서훈 취소 법률 발의했지만 정작 전투공적 기록 확인 안돼
유족들 심리적 충격 호소 등 여파도…제도 전면 개선 촉구

지난 12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열린 박진경 국가유공자 등록 취소 촉구 기자회견. 연합뉴스

제주4·3 당시 대규모 학살에 앞장섰던 박진경 대령의 국가유공자 지정 취소 절차가 본격화되자마자 난관에 봉착했다. 박 대령의 유공자 지정 근거인 무공훈장 서훈을 취소할 수 있는 법안이 발의됐지만 확인 절차인 전투 공적 기록이 파악되지 않아서다.  

혼선이 거듭되면서 제주4·3 유족들은 심리적 충격을 호소하는 등 2차 피해도 이어지고 있다.

문대림 국회의원(민주당, 서귀포시)은 16일 잘못된 서훈을 취소할 수 있도록 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고 밝혔다.

해당 법안은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 △상훈법 일부개정법률안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등 3건이다.

이는 제주4·3 학살 책임자인 박 대령이 국가유공자로 지정된 데 따른 후속조치다. 국가보훈부는 지난 10월 무공훈장을 근거로 박 대령 유족이 신청한 국가유공자 등록을 승인했다.

'제주4·3특별법 일부개정안'에는 4·3 진압 공로로 수여된 서훈을 취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신설됐다.  서훈 취소와 훈·포장 환수 조항, 허위사실 유포자에 대한 처벌 규정도 담겼다.

'상훈법 일부개정안'에는 서훈 취소 사유를 국가 정체성에 반하는 중대한 행위까지 확대하는 내용이 담겼다.

'국가유공자법 일부개정안'은 제주4·3 등 과거사 관련 특별법에서 규정한 중대한 인권침해 책임자를 국가유공자 예우 대상에서 명확히 배제하도록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문 의원은 "법안을 발의한 오늘은 제주4·3특별법 제정안이 국회에서 의결된 지 26년이 되는 날"이라며 "제주4·3의 완전한 해결과 국가폭력 희생자·유가족의 명예회복을 위해 법안의 국회 통과를 반드시 관철하겠다"고 밝혔다.

제주4·3 당시 강경 진압을 주도한 박진경 대령의 추도비 옆에 '바로 세운 진실'이라는 안내판이 설치됐다. 제주도청 제공

하지만 박 대령의 국가유공자 지정 취소가 실제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국가유공자 등록을 취소하려면 그 근거가 되는 무공훈장이 허위나 날조 등 사유로 먼저 취소돼야 하는데 현재 전투 공적 기록 자체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정빛나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박 대령 무공훈장과 관련해 "1950년에 서훈된 사안으로 현재 자료 확인이 어렵다"며 유관기관가 계속 논의하겠다고 했다.

박 대령은 1948년 제주4·3 당시 강경 진압 작전을 벌이다 부하의 총격으로 사망했는데 이후 한국전쟁 중이던 1950년 전몰군경으로 분류돼 을지무공훈장이 추서된 것으로 알려졌다.

혼선이 거듭되면서 정작 피해는 유족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제주4·3연구소는 오는 17일 4·3 유족이 참여하는 북콘서트를 열 예정이었지만 행사 하루 전인 16일 취소했다. 참석 예정이었던 한 유족이 박 대령 국가유공자 논란으로 인해 심리적 트라우마를 호소했기 때문이다.

전교조 제주지부는 이날 성명을 내고 "(박진경 유공자 지정은) 애초에 발생하지 말았어야 할 일이고 역사 인식의 실패"라며 국가유공자 심사 체계 전면 개선, 국가폭력 가해자에 대한 명확한 배제 기준 마련 등을 촉구했다.

앞서 지난 10월 국가보훈부는 무공훈장을 근거로 박 대령 유족이 낸 국가유공자 신청을 승인했으며 지난달 4일 이재명 대통령과 권오을 보훈부 장관 직인이 찍힌 국가유공자증이 유족에 전달됐다.

그러나 박 대령은 4·3 무장대 토벌 과정에서 민간인 학살 작전을 지휘한 인물로 지적돼 논란이 확산했고 결국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은 지난 11일 제주4·3평화공원을 찾아 참배한 뒤 유족들을 만나 공개 사과했다. 이재명 대통령도 국가보훈부에 박 대령 국가유공자 취소 검토를 지시했으며 국방부도 무공훈장 취소 가능성을 살펴보겠다고 밝혔다.

제주도는 지난 15일 박 대령을 기리는 추도비 앞에 그의 역사적 과오와 실제 행적을 기린 '바로 세운 진실'이라는 안내판을 설치했다.

안내판에는 "박진경이 1948년 5월 6일 제주도에 와서 40일 남짓 강경한 진압 작전을 벌였고 그 대가로 상관을 앞질러 대령으로 특진했다"며 "그 무렵 미군 비밀보고서에 '12세~13세 소년, 60이 넘은 늙은이, 부녀자를 포함해 3천여 명이 체포됐다'고 기록될 정도로 박진경은 무리한 작전을 전개했다"고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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