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대신 대전 어은동…'머무는 청년'이 만든 대전의 새로운 실험

■ 방송 : 대전CBS <이슈 앤 톡> 표준FM 91.7, 홍성 99.3 (17:00~17:30)
■ 제작 : 손성경 PD
■ 진행 : 권오철 교수
■ 대담 : 우은지 박사, 이창현 대표

시티파머스 이창현 대표. 자료사진

◇권오철: 오늘은 새로운 월간 코너, <우리 동네를 소개합니다>, 줄여서 우동소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저출생과 인구 감소로 지역이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 속에서, 바로 우리가 사는 동네에서 대안을 한 번 찾아보자는 취지로 준비했는데요. 이 시간은 대전CBS와 대전시청자미디어센터 라디오 제작단이 함께 만드는 시민 참여형 라디오입니다.
 
오늘은 대전이라는 도시에서 '대전 머무르기'를 선택한 청년 두 분을 모셨습니다. 카이스트 산업디자인학과에서 로컬을 연구하고 있는 우은지 박사님, 그리고 어은동에서 카페 시티파머스를 운영하며 지역 커뮤니티를 실험하고 있는 이창현 대표님입니다.
 
많은 청년들이 지역을 떠나는 시대에, 이 두 분은 이곳을 '머무는 곳'이자 '자신이 기여하고 싶은 삶의 무대'로 만들고 있는데요. 오늘은 그 선택의 이유, 머무르는 동력, 그리고 앞으로의 가능성까지 함께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두 분 반갑습니다.
 
◆우은지, 이창현: 네, 안녕하세요.
 
◇권오철: 네, 안녕하세요. 잘 오셨습니다. 먼저 두 분, 간단하게 자기소개부터 해 주시죠. 이창현 대표님부터 부탁드릴까요?

◆이창현: 안녕하세요. 어은동에서 작은 카페랑 옥상 텃밭을 운영하고 있는 이창현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권오철: 네, 반갑습니다. 우리 우은지 박사님도요.
 
◆우은지: 네, 안녕하세요. 저는 우은지라고 하고요. 카이스트에서 로컬 커뮤니티 디자인을 연구하고 있고, 어은동에서 연구도 하고, 일도 하고, 또 놀기도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권오철: 아유, 많은 걸 하고 계시네요. 알겠습니다. 우리 이창현 대표님, 서울 출신이시고 연구원 생활도 하셨다고 들었는데요. 대전, 그중에서도 어은동을 선택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이창현: 저는 원래 국가 연구기관에서 정책을 만드는 연구를 했어요. 그중에서도 특히 지방 도시 활성화, 그러니까 '지역에서 어떻게 하면 잘 살아볼 수 있을까'를 연구했는데요. 그 일련의 과정에서 어은동을 처음 방문하게 됐던 것 같습니다. 여러 도시들을 다녀봤는데, 어은동이 좀 특별하게 느껴졌어요.
 
◇권오철: 어떤 점이 특별했습니까?
 
◆이창현: 다양한 청년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생태를 좋아해서 생태 책방을 여는 친구도 있었고, 빈 건물을 어떻게 활용해 볼까 하면서 리모델링을 하는 친구도 있었고, 매거진을 만든다거나 축제를 기획하는 친구도 있었고요. 옆에 계신 우은지 박사님도 그중 한 분이고요. 그분들이 '직업'보다는 자기 이야기를 사는 방식으로 삶을 만들어가고 있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면서 저도 그동안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 내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이 동네에서 한 번 해보고 싶다, 이들과 함께해 보고 싶다, 이런 생각이 강해졌고 그 과정에서 카페를 열게 됐던 것 같습니다.
 
시티파머스 옥상 텃밭. 시티파머스 인스타 캡처

◇권오철: 주변 반응은 어땠습니까?
 
◆이창현: 일단 "왜 하필 대전이냐"는 얘기를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저는 서울에서 태어나서 자라고, 대학도 서울에서 나왔거든요. 친구들은 여전히 거기서 결혼도 하고, 집도 사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데 왜 지방으로 내려가느냐, 왜 서울에서 살 권리를 포기하느냐,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들 입장에서는 조금 이해가 안 됐던 것 같아요.
 
◇권오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 그래도 나는 대전에서 살아야겠다" 이렇게 결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습니까?
 
◆이창현: 일단 제가 좀 자유롭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그전에는 세종에서 살다가 대전으로 내려왔는데, 서울에서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여기서 느꼈습니다. 지금은 서울에 가면 오히려 좀 답답해졌어요. 지하철을 타고 가면, 나는 내 속도로 걷고 싶은데 뒤에 있는 사람들 속도에 맞춰서 걸어야 하고, 어딜 가든 한두 시간씩 걸리는 이동 시간도 너무 길게 느껴졌거든요. '내가 왜 이 정도의 거리를 감내하면서, 이 시간을 포기하면서 살아야 할까' 이런 고민이 들었어요. 대전에서는 아내랑 카페를 운영하면서 갑천을 자전거로 타고 출퇴근하고, 그곳에서 같이 도시락도 먹고, 이렇게 저만의 속도와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게 좋았습니다.
 
◇권오철: 기만 해도 여유가 느껴지네요. 대전 내려오신 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이창현: 대전에 내려온 건 한 2년 정도 됐고요. 카페를 연 건 1년 정도 됐습니다.
 
◇권오철: 지금은 어떠세요? 만족도, 몇 퍼센트쯤 됩니까?
 
◆이창현: 지금은 더 이상 서울에는 못 갈 것 같아요.
 
◇권오철: 예, 듣기만 해도 참 좋네요. 이번에는 우리 우은지 박사님께도 비슷한 질문을 드려볼게요. 대전에서 연구자로 살아온 이야기를 좀 들려주시죠.

카이스트 우은지 박사. 자료사진

◆우은지: 네, 저는 원래 구미가 고향입니다. 저는 대학을 KAIST로 오면서, 스무 살 때 대전에 왔고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대전에 살고 있습니다. 보통은 학부 졸업하면 서울로 가거나, 아니면 해외로 나가거나 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학부 졸업 후에 직장 생활도 대전에서 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대전에 남고 싶다"는 마음이 계속 있었던 것 같습니다.
 
회사 다닐 때, 신입사원 연수 때문에 두 달 정도 서울에서 지낸 적이 있었는데요. 그때 느꼈던 도시의 밀도나 속도 같은 것들이 저와는 좀 안 맞는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원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도, 물론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내가 살고 싶은 곳을 내가 선택하려면, 박사 과정을 통해 조금 더 선택지가 넓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권오철: 대전에서 연구자로 산다는 건, 어떤 의미입니까?
 
◆우은지: 저도 여백이 있다는 점이 참 좋은 것 같아요. 연구자는 결국 세상에 대해 궁금한 걸 계속 탐구하고, 그 답을 찾아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남들의 시선이나 누군가의 속도에 떠밀려서가 아니라 내가 정말 궁금한 걸, 내 시간과 공간 안에서 여유를 가지고 계속 탐구해 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대전이 연구하기에 좋은 도시라는 생각이 듭니다.
 
◇권오철: 알겠습니다. 그럼 두 분께 이런 질문도 드려볼게요. 청년이 '대전은 살 만한 도시다'라고 느끼려면, 어떤 조건들이 필요하다고 보시는지요?
 
◆이창현: 저는 '친구'가 생각보다 정말 중요하다는 걸 여기 와서 느꼈던 것 같아요. 성인이 되고 나서는, 공부나 일 말고는 제 삶 가까이에 친구가 잘 없더라고요. 그런데 여기 어은동에 와서는, 여러 방식으로 삶을 꾸려가는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아, 이런 게 삶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 사람들 가까이에서 나도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카페를 운영하면서도 정말 다양한 청년들을 만나요. 대학교 다니는 친구, 취업 준비하는 친구, 일을 그만두고 다음 길을 찾는 친구, 임산부까지도 오고요. 그런데 요즘 청년들이 함께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이 참 적다는 걸 많이 느꼈어요. 그래서 그런 공간들이 조금씩 더 생긴다면, 대전뿐 아니라 어디든 조금 더 살 만한 동네가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권오철: 우리 우은지 박사님도 한번 말씀해 주시죠. 청년이 살 만한 대전을 만들려면, 어떤 게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우은지: 청년의 특징이 뭘까 생각해 보면, 사실 가능성이 정말 무궁무진한 세대잖아요. 어떤 목표를 두고 한 길을 빠르게 달리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진로 고민을 계속하고 있는 게 지금의 현실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청년들이 살 만하다고 느끼는 도시는, 청년들이 실험을 해보고, 자기 삶의 형태를 직접 찾아갈 수 있는 다양한 선택지를 보여주고, 그걸 실제로 한 번쯤은 체험해 볼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권오철: 두 분 말씀을 듣다 보니, 청년들도 그런 삶을 살고 싶어 하는 건 분명한데요. 현실적으로는 또 생계 문제, 경제적인 부분이 걸려 있잖아요. 취업을 해야 하는 이유도 결국 경제력 때문이고요. 이창현 대표님은 어떠세요?
 
◆이창현: 경제력이요… 경제력…

◇권오철: 지금 카페도 직접 운영하고 계시잖아요.
 
◆우은지: 저는 이 부분에서 어느 정도는 우리가 감안을 해야 하는 지점도 있다고 생각해요. 자유롭고 주체적인 삶을 선택한다는 건, 완전히 돈만을 쫓는 삶과는 다를 수밖에 없고, 어느 정도는 그런 부담을 감수하면서 자유를 선택하게 되지 않나 싶습니다.

◇권오철: 그런데 카페를 여는 데도 초기 투자금이 적지 않았을 텐데요.
 
◆이창현: 그 부분은 아내랑 제가, "그래도 우리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걸 한 번 실험해 보자" 이렇게 마음을 먹었던 것 같아요. 그때 은지 박사님이랑 같이 차를 타고 왔는데요. 계속 나왔던 이야기 주제가 바로 그거였어요. '우리가 어떻게 경제력을 감당할 것인가.' 물론 경제성도 중요하지만, 그 이상의 다른 가치를 쫓는 사람들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경제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져 살아간다면, 조금 더 재미있고, 조금 더 나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했고요. 그래서 이 카페가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젊을 때 한 번은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권오철: 지금 하고 계신 일이 바로 시티파머스에서의 이런 실험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실제 공간에서 그런 실험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거죠?
 
◆이창현: 네, 맞습니다. 저희가 주로 하는 프로그램 중 하나가 '먼데이 모닝 클럽', 줄여서 머모클인데요. 월요일 아침에 모여서 그냥 한 주를 어떻게 보냈고 그리고 다음 주는 어떻게 보낼지 그리고 끝나고 나서는 각자의 일을 하는 단순한 일상을 묻는 모임인데요. 그런데 거기서 정말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와요. 어느 날은 AI 이야기, 어느 날은 임신 이야기처럼요. 그 주제들을 바탕으로 또 새로운 실험들이 이어지기도 하고요. 책 모임이 열리기도 하고, 바자회로 확장되기도 합니다. 이 공간에서 저희가 실험을 하듯, 찾아오는 분들도 각자가 해보고 싶은 것들을 여기서 실현해 보고, 그 과정이 또 카페의 콘텐츠가 되고, 이렇게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권오철: 이런 실험들이 지역 주민들에게는 어떻게 비쳐지고 있나요?
 
◆이창현: 처음엔 주민들보다는 청년들이 훨씬 더 많이 찾아왔어요. 특히 프리랜서분들은 "이런 이야기를 나눌 데가 없었다"는 말을 많이 하더라고요. 청년들끼리도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정작 주변 친구들과는 이런 얘기를 나눌 기회가 없었다는 거죠. 그러다 보니 청년들끼리 먼저 확장되고, 그 과정에서 한두 명씩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합류하면서 아주 천천히 커뮤니티가 만들어지고 있는 느낌입니다.
 
◇권오철: 현실적인 고민도 분명 있으실 것 같아요.
 
◆이창현: 맞습니다. 모임을 하는 것 자체는 좋은데, 결국 커뮤니티도 사람과 사람의 관계다 보니, 매번 공간을 열고 준비하고 운영하는 데는 시간과 노동, 그리고 수익 문제가 같이 따라오더라고요.
 
◇권오철: 이번에는 우은지 박사님께 질문을 드려볼게요. 디자인이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 이런 지역 문제, 특히 청년들의 '머무름' 문제를 해결하는 데 디자인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우은지: 말씀을 듣고 바로 떠오른 건, 이창현 대표님이 하고 계신 이런 실험들도 저는 '경험 디자인'이라고 생각해요. 관계를 만들어내는 디자인이요. 동네 가게 같은 일상적인 공간에서 청년과 주민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면서 만들어지는 이 실험들이, 잘 촉진되고, 또 임팩트가 확장된다면 지역 안에 정말 여러 개의 작은 세계들이 생겨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 과정 자체가 "여기, 대전에 남아서 살아봐도 괜찮겠다"라고 결심하는 데 영향을 주는 하나의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권오철: 그럼 대전에서 '살아보기'라는 경험 자체를 조금 더 매력적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 아주 간단하게라도 떠오르는 게 있을까요?
 
◆우은지: 네, 그냥 떠오르는 대로 말씀을 드리면요. '살아본다'는 게 사실 단기 체류와 장기 체류가 전혀 다르잖아요. 장기 체류의 경우에는 "대전에는 이런 게 있구나" 하고 새로운 매력 포인트를 탐색할 수 있도록, 일종의 '탐험가처럼 동네를 발견해 보는 서비스 디자인'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요. 지금은 대전이 '빵의 도시', '과학의 도시'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걸 넘어서서 자기만의 보물 찾기처럼, 각자가 느끼는 대전의 매력을 발견하는 방식도 될 수 있겠죠. 그리고 장기 체류자에게는 "내가 이 지역에서 지금 성장하고 있나?" 이 경험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내가 이 지역의 일원으로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있고, 그 관계 속에서 내가 조금씩 자라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는 서비스가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권오철: 그럼 이번에는 두 분께 함께 질문드려보고 싶은데요. 지금까지는 개인 차원에서 풀고 계신 이야기들이라면, 만약 정부나 기관이 조금 개입해서 도와준다면 어떤 부분이 가장 필요하다고 보세요?
 
◆우은지: 사실 정확한 건 연구를 해봐야 알겠지만요. 굉장히 추상적이고 거시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청년들이 실험을 하고, 실패를 해도 괜찮고, 그 실패 하나하나가 '포트폴리오'가 되는 구조, 그런 지원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창현: 저는 청년들이 아무 목적 없이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보통 정부 지원이나 어떤 제도가 생기면 항상 달성해야 할 목표, 성과 지표가 정해져 있잖아요. 그러다 보니 원래는 아무 의미 없이, 그냥 하고 싶어서 하던 일도 "이게 무슨 의미가 있지?" 하고 이유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되더라고요. 그게 아니라, 저희 카페에서처럼 그냥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서로를 알아가는 모임, 그런 게 자주 만들어진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혁신'에 굉장히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우은지: 아까 말씀드린 걸 조금만 더 확장해 보면요. 청년들이 실패하거나 실험에 참여했을 때, 그 경험 자체가 제도적으로도 긍정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대전이 사실 민간에서 실험하려는 움직임이 굉장히 많은 도시거든요. 청년들 주도로 이뤄지는 이런 실험들이 더 잘 알려지고, 더 잘 확산되고, 그 임팩트가 제대로 측정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창현: 저희 카페가 충남대와 카이스트 사이에 있거든요. 그런데 저희가 '마을학회'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요. 충남대 졸업생도 많고, 카이스트 졸업생도 많다 보니까 그들이 지금 하고 있는 연구와 이야기를 이 동네에 풀어내는 자리를 만들고 싶었어요. 주민들의 이야기도 함께 듣고요. 그래서 저는 대학과 지역의 연계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어은동에 있으면서 느꼈던 건, 충남대와 카이스트가 각자의 담벼락을 조금만 더 낮추고 연구자들이 동네 안으로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다면, 동네의 분위기가 굉장히 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유럽이나 미국의 대학을 가보면 학교 주변 카페나 펍에서 각자 연구하는 내용들을 자유롭게 나누고, 거기서 피드백도 받고 인사이트도 얻고, 그 과정에서 학교도, 동네도 같이 살아 움직이더라고요. 그런 연계를 만들어 주는 정책이나 과정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권오철: 말씀을 듣다 보니, 대학과 동네가 더 가까워지려면 현실적인 장벽도 있을 것 같고요. 혹시 직접 해보고 싶은 제안이나 아이디어도 있으신가요? 이 간극을 좁히기 위해서요.
 
◆우은지: 제가 포틀랜드 주립대에 견학을 간 적이 있어요. 거기는 '커뮤니티 베이스 러닝' 프로그램이 굉장히 특화된 학교인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커뮤니티 매니저'라는 역할이 따로 있다는 점이었어요. 이분은 교수님들이 수업을 설계할 때 "이걸 지역과 연계하고 싶은데, 어떤 자원이 있을까?"이걸 대신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교수님들은 자기 전공 연구에 집중하다 보니 지역에 어떤 주체가 있고 어떤 자원이 있는지 알기 어렵잖아요. 그래서 그 매니저가 지역과 학교 사이를 오가면서 연결해 주는 허브 역할을 하는 거죠. 사실 카이스트, 어은동, 충남대가 지리적으로는 굉장히 가까운데, 막상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잘 모르거든요. 인스타를 팔로우하지 않으면 바로 옆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는 세상인데, 이런 장벽을 허물기 위한 여러 층위의 시도들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티파머스의 '마을학회' 같은 시도도 그런 예고요.
 
◇권오철: 그럼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여쭤볼게요. 아까 실패를 인정하는 플랫폼, 실험의 중요성 이야기를 해 주셨는데, 이런 실험들이 지속 가능해지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우은지: 저는 디자인을 하는 사람이다 보니,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할 때의 동기와 좌절 지점에 굉장히 관심이 많은데요. 실험과 실패의 플랫폼이 지속되려면 그 실험에 대한 '크레딧', 즉 기록과 인정이 명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식적으로 발표된 결과물이 아니더라도, "내가 이 미완성의 활동에 이렇게 기여했다"는 사실이 개인에게 자부심으로 남을 수 있는 장치, 그게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권오철: 이제 마지막으로요. 이 방송을 듣고 있을 또래 청년들에게, 한 말씀씩 전하고 싶은 이야기 부탁드립니다. 먼저 이창현 대표님부터요.
 
◆이창현: 저희 또래 분들을, 또 카페에서 만나는 청년들을 보면요. 참 다들 어려워해요. 많이 힘들어하고요. 그런데 그 힘듦을 마음 놓고 털어놓을 데가 없고, 결국은 혼자서 견뎌내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특히 서로를 인정하고, 칭찬하는 문화가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을 늘 합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서로를 인정해 주고, 서로를 칭찬해 주고, 자기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으면서 지금 겪고 있는 이 힘듦을 함께 넘어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겠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의 작은 실험, 자기가 진짜 하고 싶은 것들을 조금씩, 아주 조금씩이라도 시도하면서 자기만의 꿈을 계속 쫓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우은지: 이창현 대표님 말씀에 이어서… 혹시 홍보 하나만 해도 될까요? (웃음)
 
◇권오철: 하셔도 됩니다. (웃음)
 
◆우은지: 저희가 12월에 하나의 행사를 기획하고 있는데요. 이름이 조금 독특합니다. 이름하여 '처치 곤란'입니다.
 
◇권오철: 이름부터 벌써 쉽지 않은데요. (웃음)
 
◆우은지: 네, 여기서 '처치'는 두 가지 의미를 담았어요. '처치하다'의 처치이기도 하고, 영어로는 '교회(Church)'를 뜻하기도 합니다. 동네 카페, 동네 식당, 그리고 동네 교회가 함께 모여서 12월 연말을 맞아, 한 해를 돌아보고 관계를 돌아보는 포럼 형식의 모임을 열 예정이에요. 연말이 되면 왠지 더 용기가 나잖아요. "밥 한 번 먹자", "잘 지냈어?" 이런 말 한마디가 더 쉬워지는 시기이기도 하고요. 그런 작은 인사, 작은 관계 맺음들이 동네에서부터 먼저 시작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이 자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12월 22일부터 3일간, 어은동 시티파머스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권오철: 12월 22일, 어은동 시티파머스에서 열리는 '처치 곤란' 행사, 기억해 두시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대전에서 살아보기'를 주제로, 디자인 연구자이자 커뮤니티 실험가인 카이스트 우은지 박사님, 그리고 지역 공간을 직접 운영하며 머무는 삶을 실천하고 있는 시티파머스 이창현 대표님과 이야기 나눴습니다.
 
두 분 말씀을 들으면서 청년이 머무는 도시는 단순히 일자리나 집값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 실험, 그리고 자율성이 함께 어우러질 때 가능해진다는 점이었습니다. 이창현 대표님, 우은지 박사님, 오늘 귀한 이야기 나눠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창현, 우은지: 감사합니다.
 
◇권오철: <우리 동네를 소개합니다>, '우동소'는 대전CBS와 대전시청자미디어센터 라디오 제작단이 함께 만드는 시민 참여형 라디오입니다. 다음 달에도 또 다른 동네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함께해 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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