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에 숨겨진 메시지가 있었다. 이 과정에서 극 중 미술 교사라는 설정을 활용해 그림으로 작품의 주제를 전달하고자 했다. 이는 사건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1회부터 등장한다. 안윤수(전도연)를 그린 한 학생의 그림이다.
넷플릭스 시리즈 '자백의 대가'에서 연출을 맡은 이정효 감독은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해당 장면의 연출 의도를 설명했다.
"이야기의 중심이었어요. 이번 작품은 편견에 관한 얘기인데 그 편견을 그림으로 표현하고자 했죠. 그림을 세로가 아닌 가로로 봤을 때 마치 학생들을 집어삼키는 듯한 이미지를 담으려 했어요."
이어 "작품은 두 사람을 향한 편견이 어떻게 옥죄고 어떻게 사람을 망치는지를 다루고 있어 그 장면을 (시각적으로) 표현해 봤다"고 덧붙였다.
이 감독은 편견이라는 메시지를 드러내기 위해 매회 진범의 정체를 숨기며 작품을 이끌어갔다.
그는 "누가 진짜 범인일까에 대한 호기심을 주고 매회 엔딩을 보고 싶게끔 하려고 했다"며 "사건이 안윤수에서 시작됐다면 모은(김고은)의 등장과 함께 두 사람의 거래를 조명하고 인물 사이의 긴장감을 유지하려고 했다"고 덧붙였다.
다만, 극 초반 안윤수가 고개를 갸웃한 장면과 중반 마스크를 쓴 인물이 같은 동작을 보인 것에 대해선 "우연"이라고 밝혔다.
이 감독은 "전도연 선배는 그림을 보며 '이게 뭐지'라는 반응에서 자연스럽게 한 동작이었고 마스크를 쓴 인물의 갸웃거림은 현장에서 나온 모습이어서 그걸 범인의 이미지로 살려봤는데 그 모습이 우연히 맞아떨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얼굴 활용한 전도연, 감정 절제한 김고은, 애드리브의 김선영"
'자백의 대가'는 전도연과 김고은이 10년 만에 호흡을 맞춘 작품으로 공개 전부터 주목받았다. 두 배우의 캐스팅에 대한 기대가 높았던 만큼, 이 감독도 더 좋은 반응을 얻고자 긴장된 마음으로 촬영에 임했다고 밝혔다.
그는 현장에서 두 배우의 연기를 지켜보며 여러 차례 감탄했다고 강조했다.
"전도연 선배가 이전에 함께한 드라마 '굿와이프(2016)' 때와 달리 이번 작품에서는 얼굴을 활용한 섬세한 연기를 많이 보여주셨어요."
이어 "전도연 선배는 인물을 설정할 때 헤어스타일과 의상 연구를 많이 하신다"며 "작품 속 '나는 화려한 의상을 좋아해요'라는 안윤수의 대사가 있어 중학교 교사 설정임에도 '히피' 스타일을 구축하려 했다"고 떠올렸다.
그는 파격적인 숏컷으로 변신한 김고은에 대해 "극 중 모은이 안윤수에게 '언니 화이팅'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사실 촬영 첫 주 또는 둘째 주였다. 그 모습보고 '아 저거다'고 생각했다"며 "또 태국에서 촬영한 자해 장면도 모은의 아픔이 온전히 전달돼 세 컷만으로도 충분했다"고 말했다.
이어 "모은과 안윤수가 대화하는 독방 신은 하루에 몰아서 찍었다"며 "대본볼 때만 해도 모은의 목소리가 센 느낌이었는데 김고은 배우가 감성적으로 말투를 힘없이 하길래 괜찮을까 싶었는데 장면을 붙여보니 감정적으로 너무 좋았다. 되게 똑똑한 배우라고 생각했다"고 감탄했다.
극 중 교도소에서 왈순을 연기한 김선영에 대한 칭찬도 이어졌다. 왈순의 의상과 대사는 온전히 김선영의 애드리브였단다.
이 감독은 "사실 김선영 씨가 맡을 만한 비중의 역할이 아니었는데 전도연 선배가 한다고 하니 '할 거 없냐'고 계속 얘기하셔서 작은 역할을 보여드렸다"며 "보시고 '애매한데' 이러셨는데 촬영장에 오시더니 욕설을 하시더라. 제 입장에선 너무 재미있었다"고 웃었다.
"배우들도 진범 누구냐고 묻기도…다시 보시면 다른 부분이 보일 것"
이 감독은 공들였던 장면으로 백동훈(박해수) 검사와 모은의 시선으로 이기대(이하율)를 살해한 장면을 꼽았다.
그는 "두 장면은 분명히 보여주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해 하루 반 가까이 촬영했다"며 "같은 사건이지만 두 사람의 다른 관점을 드러내야 선과 악에 대한 혼란이 있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사실 촬영 초반에는 배우들조차 진범을 알지 못핸다고 한다.
"도대체 범인이 누구냐고 계속 물었어요. 촬영을 좀 진행하고 난 뒤에야 알려드리니 다들 놀라셨어요.(웃음)"
예상치 못한 변수도 있었다. 태국에서 마지막 장면을 찍으려는 순간, 비가 갑자기 쏟아져 촬영이 잠시 중단되기도 했다. 그는 "다음날 일정이 있어서 그날 찍지 않으면 안 됐다"며 "그 장면을 꼭 담고 싶어서 비 맞으며 2시간 동안 기다렸다"고 떠올렸다.
이 감독은 끝으로 이번 작품을 통해 느낀 '연출의 대가'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멜로 장르는 초반에 (관계를) 만들어 놓으면 그 이후에는 두 사람의 호흡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지만, 장르물은 좀 노가다가 필요하다"며 "12부작의 스릴러가 정말 힘들었다"고 웃었다.
이어 "다시 한번 보시면 진범이 왜 그 대사를 했는지 다른 것들도 보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총 12부작으로 구성된 '자백의 대가'는 공개 3일 만에 넷플릭스 글로벌 톱10 비영어 TV쇼 부문 2위를 기록했으며, 인도네시아, 태국 등 총 9개 국가에서 톱10에 이름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