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교체 완성 vs 여전히 내가 여제(女帝)'
올해 마지막 달에 한국 여자 바둑이 뜨겁다. '천재소녀' 김은지(18) 9단과 '바둑 여제' 최정(29) 9단의 자존심을 건 막판 겨루기에 바둑계의 관심이 집중되면서다. 두 명 기사는 오는 16일 물러설 수 없는 올 마지막 대국(제30기 하림배 프로여자국수전 결승 3번기)을 벌인다.
김은지는 후원사 시드로 하림배 본선에 진출했다. 16강부터 유주현 3단, 조승아 7단, 오유진 9단을 차례로 꺾고 결승에 올랐다. 전기 대회 4강에 올라 시드를 받은 최정도 16강에서 출발했다. 전유진 초단, 김경은 5단, 나카무라 스미레 4단은 연파하고 결승에 진출했다.
김은지와 최정에게 이번 '하림배' 패권은 어느 때 보다 중요하다. 김은지는 자신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세대교체 명분에 힘이 실린다. 세대교체에 쐐기를 박는 승부처인 셈이다.
최정은 '배수의 진'을 치고 화력을 쏟아부어야 할 입장이다. 최근 김은지와 대결 국면을 감안할 때 이 대회 마저 패하면 '바둑 여제'의 체면을 단단히 구기게 된다. "바둑계 사례를 감안할 때 진다면 슬럼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견도 다수다.
김은지는 지난 9일 생애 처음으로 세계기전(오청원배)에서 우승했다. '오청원배'에서 3번 우승 전력을 자랑하는 '세계 여자 바둑계 거성(巨星)' 최정을 무너뜨린 쾌거였다. 그는 앞서 12월 한국 프로 바둑기사 여자 랭킹에서도 1위 최정을 제치고 정상에 올랐다. 또 한국 바둑 여자 상금랭킹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누적 상금에서 김은지가 최정을 앞선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김은지는 세계대회 우승 후 "여자 세계대회 뿐 아니라 통합 세계대회에서도 우승하고 싶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이는 대한민국 여자 바둑을 평정은 물론 영역 확장의 의미로 해석됐다.
그러나 최정의 반격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김은지에게 최정은 어려운 상대임에 틀림없다. 상대 전적에서 9승 20패로 김은지를 월등히 앞선다. 김은지는 최정을 상대로 국내·세계 대회 타이틀 매치에서도 2승 5패로 열세다. 오는 16일 맞붙는 '하림배'에서도 최정은 무려 6차례(22·23·24·25·27·28회) 우승했다. 반면 김은지는 첫 우승에 도전한다.
다만 올해 들어 김은지와 최정은 결승전에서 1대 1로 호각세다. 최근 끝난 '오청원배'에서는 김은지가, 지난 5월 '닥터지 여자최고기사 결정전'에서는 최정이 승리했다. 또 올해 상대 전적만 따지면 4승 4패로 팽팽하다. 예고된 '하림배' 결승전 결과가 주목되는 이유다.
최정의 과거 인터뷰 내용도 소환되고 있다. 그는 지난 5월 바둑의 세대교체와 관련해 "언젠가는 김은지가 여자 바둑계를 이끌어가겠지만, 나도 최대한 버텨서 다른 후배들도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해보겠다"고 전했다. 자신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을 알리는 발언이었다.
최정이 '하림배'에서 설욕에 성공해 세대교체가 시기상조임을 입증할지, 김은지의 세대교체가 완성될지 바둑팬들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하림배 프로여자국수전의 우승 상금은 3천만 원, 준우승 상금은 1천만 원이다. 제한시간은 시간누적(피셔) 방식으로 각자 30분에 추가시간 30초가 주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