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형·이명애 작가 "설명하면 무기력, 감정을 흔드는 것이 먼저"

부산국제아동도서전서 풀어 낸 두 작가의 '그림 공감'
"아이들에게 절망 대신 감정의 문 열어야 변화 시작"


"어린이들에게 너무 무서운 세상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어요."(김지형 작가)
"환경 문제는 정보보다 감정이 먼저 도달해야 해요."(이명애 작가)

그림책 '미세미세한 맛 플라수프'의 김지형 작가와 '플라스틱 섬'의 이명애 작가는 11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2025 부산국제아동도서전 '우리의 내일을 고민하는 그림책' 대담에서 환경을 다룬 이유와 창작 과정에서 감당해야 할 책임을 이같이 털어놓았다.

김지형 작가는 작품이 탄생한 배경을 "3주 동안 재활용 수거가 중단돼 골목마다 쓰레기 산이 쌓인 장면에서 출발했다"고 말했다. 그는 "환경 문제를 아이들에게 말할 때 '두려움'을 앞세우면 마음의 문이 바로 닫힌다"며 "아이들에게 죄책감을 떠넘기지 않고, 어른으로서 사과하는 마음으로 작업했다"고 강조했다.

작품 속 주인공 '폴리'의 이름은 플라스틱 어원 'poly'에서 따왔다. 김 작가는 "아이들이 캐릭터를 '사람처럼' 느끼고 감정적으로 닿을 수 있는 매개가 필요했다"며 "불안한 현실을 그리되, 아이들이 끝까지 따라올 수 있도록 감정의 연결고리를 조심스럽게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그림책 '미미세한 맛 폴리수프'의 김지형 작가. 김민수 기자
김지형 작가의 그림책 '미세미세한 맛 폴리수프'. 두마리토끼책 제공

김 작가는 책의 시각적 구조에도 세심하게 의미를 담았다. 그는 "해변에서 주운 플라스틱 조각들을 실제 면지에 활용한 이유는 '환경 문제는 멀리 있는 사건이 아니라 손에 잡히는 현실'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며 "형광색 점과 불규칙한 선은 환경 파괴를 둘러싼 불안정성과 아이들이 느끼는 감정의 흔들림을 시각화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반면 이명애 작가는 '환경 문제를 감정으로 이해하는 방식'에 방점을 찍었다. 그는 BIB 황금패상을 받은 '플라스틱 섬'의 창작 동기를 "환경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멀리서 보면 아름답지만 가까이서 보면 재앙'이라는 장면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문제를 설명하려 들면 아이들은 금방 무기력해진다. 먼저 마음이 흔들리고, 그다음에 생각이 들어온다"며 "그림책은 아이들의 감정이 자연스럽게 깨어나는 통로이자 출발점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번 개정판에서 바다 색을 지운 이유에 대해 "오염된 바다를 특정 색으로 고정하고 싶지 않았다. 독자가 스스로 머릿속에서 '자신의 바다'를 떠올리며 읽기를 바랐다"며 "비워둔 여백은 상상력이 들어설 자리이자, 감정이 숨 쉴 공간"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그림책을 만들 때 카메라가 줌인·줌아웃하듯 감정의 리듬을 따라가는 '영화적 구성'을 항상 염두에 둔다"고 창작 방식을 소개했다.

대담에서 두 작가는 환경을 다루는 그림책의 '톤과 균형'에 대해 공통된 고민을 공유했다.

그림책 '플라스틱 섬'의 이명애 작가. 김민수 기자
이명애 작가의 그림책 '플라스틱 섬'. 사계절 제공

김 작가는 "아이 독자 중에 '너무 무서워요'라고 말한 경우가 있었다"며 "그래서 반드시 이야기 말미에는 현실을 넘어설 수 있다는 '출구'와 '희망의 기미'를 숨겨두려 한다"고 말했다.

이 작가도 "정답을 제공하는 것은 과학책과 백과사전이 훨씬 잘한다"며 "그림책의 역할은 아이 마음에서 문제를 감당할 힘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담에서는 환경을 다루는 창작자들에게 요구되는 '윤리적 태도'에 대한 논의도 이어졌다.

김 작가는 "환경 문제는 창작자의 시선을 정교하게 다듬도록 요구한다. 공포·과장·절망을 앞세우면 안 된다"고 했고, 이 작가는 "환경 그림책은 어린 독자에게 세계를 설명하는 동시에, 어른 세계의 잘못을 고백하는 작업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향후 작업 계획도 공개했다.

김지형 작가는 의류 폐기 문제를 다룬 신작 '뷰티풀 원더 풀라버거'를 준비하고 있다. 이명애 작가는 '버려지는 것·사라지는 것·전쟁·지구 소비'를 테마로 한 4부작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조성순 평론가는 대담을 마무리하며 "환경 문제는 단기간에 해결되지 않지만, 그림책은 아이들에게 절망이 아니라 '길게 숨 쉬는 변화'를 느끼게 할 수 있는 매체"라고 평가했다. 이어 "두 작가가 아이 독자에게 남긴 감정의 씨앗은 앞으로의 환경 논의에서도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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