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전 강제노동 문제가 또다시 반복되자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이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 보다 적극적인 개입을 촉구하고 나섰다. 민변은 "지자체의 형식적 실태조사만으로는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며 인권위의 직권조사 착수와 예고 없는 현장점검, 제도 개선 권고 등을 요구했다.
"현재 실태조사는 염주에게 개별적으로 연락해 염주의 양해하에 실태조사가 이뤄짐. 조사 일정 변경과 조사 의무 부과, 인센티브 마련이 필요함."
12일 CBS노컷뉴스가 확보한 '2025년 염전 노동자 실태조사 최종보고' 말미에 담긴 대목이다. 전남도와 전남연구원은 지난 4~11월 신안과 영광 등 도내 49개 염전에서 노동자 80명(외국인 12명)과 사업주 46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인 뒤 작성한 보고서다.
조사관들은 조사의 한계에 대해 "특히 7~8월 생산기에는 조사 자체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올해도 염전주들이 조사를 참여하지 않은 주요 사유는 '연락 두절' '참여 거부'였는데, 사실상 참여 의사가 있는 염전만 조사 대상에 포함됐음을 보여준다.
염전 강제노동 문제가 처음 공론화된 2014년 이후에도 문제는 반복되고 있다. 국가와 지자체가 재발 방지를 약속했지만 2021년 또 다른 피해자가 탈출했고, 2023년 전수조사에서도 5건의 인권침해 의심사례가 확인됐다.
최근엔 주한 미국 대사관까지 나섰다. 지난달 18일 신안의 한 염전주가 60대 지적장애인 A씨를 10년간 무임금으로 노동시킨 혐의로 구속된 사안에 대해 진상 파악에 나선 것이다. 대사관은 A씨가 2014년 '염전노예' 사건 당시 구조되지 못한 이유, 신안군이 2023년 수사를 의뢰한 뒤에도 피해자와 가해자가 분리되지 않은 경위 등을 집중적으로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남연구원 측이 보고서 말미에 밝혔듯, 조사 구조가 감시 대상의 '양해'에 기대는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한계에 봉착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 때문에 일부 시민단체들은 지자체 조사만으로는 반복되는 문제를 근절하기 어렵다며 인권위의 적극적인 개입을 요구하고 있다.
민변 소수자인권위원회는 전날 성명을 통해 "수차례 언론 보도·위원회 결정·법원 판결이 있었음에도 염전의 인권침해는 계속되고 있다"며 "이는 정부의 형식적 대응과 인권위의 소극성이 더는 유효하지 않음을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민변은 인권위에 △신안 염전 강제노동 사건 직권조사 착수 △독립적이고 예고 없는 현장조사 △단순 권고를 넘어 구속력 있는 제도개선 방안 마련 등 세 가지 조치를 촉구했다.
다만 인권위는 수사기관이 아니어서 강제수사권은 없다. 그럼에도 민변은 '직권조사'의 목적이 개별 피해자를 직접 탐색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지자체 실태조사 구조가 실효성을 갖추고 있는지 점검하고 개선을 권고하는 데 있다고 강조한다.
민변 최정규 변호사(법무법인 원곡)는 "전남도·신안군이 매년 실태조사를 반복하고 대책을 내놓고 있으나, 사후 관리·모니터링 체계가 부재해 2014년·2021년 이후에도 인권침해가 되풀이되고 있다"며 "인권위 조사 목적이 '일일이 가가호호 방문해 피해자를 찾는 것'이 아니라, 지자체 실태조사가 실제 근절 효과를 내는 구조인지 점검하고, 필요한 제도 개선을 권고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실제로 미국 대사관조차 과거 염전노예 사건·계절노동자 문제 때 직접 전남도를 찾아 모니터링에 나섰던 사례가 있었던 만큼 당사국인 우리나라도 인권위를 통해 국가적 문제로 강제 노동 문제를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