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단체들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핵심으로 한 '3차 상법 개정안'의 추진 속도를 조절해 달라고 요청했다. 자사주 매입은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맞설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어 수단인 만큼, 이를 대체할 장치 없이 소각을 의무화하면 기업에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대한상공회의소와 주요 경제단체, 민주당 코스피5000특위·경제형벌민사책임합리화TF는 11일 서울 중구 상의회관에서 간담회를 열고 상법 개정안과 기업 관련 입법 현안을 논의했다.
회의에는 박일준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을 비롯해 한국경영자협회, 한국경영자총연합회, 무역협회, 중기중앙회, 중견련, 상장협, 코스닥협회 등 경제 8단체 부회장급 인사가 참석했다. 민주당에서는 권칠승 TF 단장과 오기형 특위 위원장이 참석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 제도가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앞서 민주당이 발의한 3차 상법 개정안에는 △신규 취득 자사주는 1년 이내 소각 △기존 보유 자사주는 1년 6개월 이내 소각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 민주당은 자사주가 특정 대주주의 이익을 위해 활용되는 문제를 막기 위한 취지라며, 연내 법안 처리를 목표로 하고 있다.
박일준 부회장은 모두발언에서 "소각 의무화와 관련해 예외 허용 범위와 절차를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며 "법안 초안에도 경제계 의견이 담긴 부분이 있으나 실제 기업 현장에서 무리가 없도록 하려면 더 정교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비공개 회의에서 재계는 개정안에 대한 우려를 보다 구체적으로 전달했다. 소각 기한이 지나치게 짧아 기업의 대응 여력이 제한된다며 소각 시한을 연장하거나 비상장 벤처·창업기업에 대한 예외 적용 등을 검토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간담회 후 오기형 위원장은 "경영상 필요에 따라 자사주를 제3자에게 처분하는 절차를 더 유연하게 할 수 없느냐는 의견도 있었다"며 "신주 발행 절차와의 정합성을 포함해 제도가 적정한지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경영계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가 도입될 경우 경영권 방어 수단이 약해질 수 있다며, 대안으로 의무공개매수제도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이에 대해 오 위원장은 "경제계도 제도 도입 자체에는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무공개매수제도는 기업 인수자가 지분 25% 이상을 확보해 최대주주가 되면 일반 주주에게도 동일한 가격으로 공개매수를 진행하도록 의무화하는 제도로, 소액주주 보호와 적대적 M&A 억제 효과가 동시에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경제계는 또한 배임죄와 관련해 '경영판단 원칙'을 명확히 해달라고 요청했다. 경영자가 어떤 행위까지 합리적 판단 범위로 인정받는지를 규정해 법적 불확실성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권칠승 단장은 "경영판단 원칙을 법률에 명문화하는 데 TF 내부 이견은 없다"면서도 "배임죄 관련 다른 조항의 정비도 필요해 시간이 더 걸리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