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배구 여자부 IBK기업은행이 7연패 뒤 4연승으로 분위기를 확실하게 바꿨다. 김호철 감독이 자진 사퇴하고 여오현 감독 대행이 지휘봉을 잡으면서 일어난 변화다.
기업은행은 10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진에어 2025-2026 V리그' GS칼텍스와 원정에서 세트 스코어 3-0(30-28 25-19 25-22) 승리를 거뒀다. 지난달 22일 김 감독 사퇴 이후 4연승이다.
당시 기업은행은 7연패 수렁에 빠져 있었다. 우승 후보로 꼽혔지만 이후 반등하며 5승 8패, 승점 16이 됐다. 6위지만 5위 페퍼저축은행을 승점 1 차로 바짝 추격했다.
경기 후 여 대행은 4연승에 대해 "비결은 없다"면서 "선수들이 열심히 잘 따라주고, 그게 힘인 것 같다"고 겸손한 소감을 밝혔다. 이어 "연패로 팀이 무거워지면 선수들이 눈치만 보는데 이때 감독이 훈련이나 경기 중에 어떻게 풀어줄 것인지가 중요하다"면서 "다행스럽게 선수들이 계속 대화하고 '괜찮아, 할 수 있어' 긍정적 모습을 보인다"고 짚었다.
하지만 전술적인 변화가 없을 수 없다. 여 대행은 191cm 장신인 아시아 쿼터 킨켈라를 아포짓 스파이커로 세우고 같은 키인 주포 빅토리아가 아웃사이드 히터로 보내는 전략을 짰다. 그렇게 되면 빅토리아가 상대 아포짓 스파이커를 블로킹할 수 있게 된다.
경기 후 GS칼텍스 이영택 감독은 이날 공격 성공률이 35%를 밑돌며 16점에 그친 주포 실바에 대해 "빅토리아가 블로킹을 하다 보니까 어려움이 있었던 거 같다"고 짚었다. 여 대행도 "빅토리아, 킨켈라에 미들 블로커들까지 상대는 정말 부담되는 높이일 것"이라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이 전술은 '불혹의 리베로' 임명옥(175cm)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빅토리아는 아웃사이드 히터지만 사실상 리시브를 하지 않는다. 킨켈라와 육서영이 리시브를 맡는데 수비가 불안해 임명옥이 이들의 중간에서 도와주는 형국이다. 여 대행은 "임명옥이 있기 때문에 킨켈라를 아포짓으로 기용할 수 있다"고 했다.
이날 임명옥은 46%가 넘는 리시브 정확도(13개 중 6개)로 팀에서 가장 높았다. 육서영(26개 중 10개), 킨켈라(18개 중 4개)보다 안정적이었다.
그러면서 임명옥은 양 팀 최다 22개의 디그로 그물 수비를 펼쳤다. 수비 성공률도 65.71%로 가장 높았다. 매치 포인트에서 실바, 최유림의 강타를 잇따라 몸을 날려 걷어낸 장면이 압권이었다. 임명옥의 끈질긴 수비에 육서영이 오픈 공격으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경기 후 임명옥은 "(여 대행이) 나를 믿고 포메이션을 짜주시는데 감사하다"면서 "거기에 부응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이어 "리시브 부담에 힘들다는 생각은 한번도 하지 않았다"면서 "궂은 일을 해주면 특히 킨켈라는 더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맏언니다운 듬직한 모습을 보였다.
시즌 초반 실바는 임명옥의 수비를 칭찬하는 인터뷰를 했다. 이에 임명옥은 "1라운드 경기 때 실바의 공격을 많이 걷어내긴 했는데 실바가 2라운드 때 그래서인지 페인트를 많이 넣더라"면서 "오늘은 페인트에 대비하고 나왔는데 실바가 범실을 하면서 분위기가 떨어졌다"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특히 실바는 임명옥의 동안도 칭찬했다. 임명옥은 "인터뷰를 보니 실바가 내가 (한국 나이로) 40살이라는 사실에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고 하더라"면서 "어이가 없었는데 나도 내가 동안이라고 생각한다"며 파안대소하며 취재진의 웃음도 자아냈다. 이어 "20대까지는 아니고 30대 초반 정도로 생각하는데 기분은 좋았다"고 웃음을 보였다. 그만큼 나이를 잊은 활약을 펼치고 있다.
한국 남자 배구 전설의 리베로로 불리는 여 대행과 여자 배구 최고의 리베로로 꼽히는 임명옥의 환상 케미다. 임명옥은 "(여 대행이) 오늘도 지적을 하더라"면서 "2단 연결을 좀 더 붙여달라는 주문이었다"고 귀띔했다.
이어 "그래도 가장 많이 하시는 말씀은 '명옥아 웃어'인데 킨켈라에게도 '오늘도 웃고 가자'고 하면 미소를 씨익 짓더라"며 본인도 30대 초반의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불혹에도 20대 못지 않은 엄청난 수비력으로 기업은행의 반등을 이끌고 있는 임명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