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제주4·3은 김일성 지시로 촉발됐다'는 등 제주4·3 왜곡 발언을 반복해온 태영호 전 국민의힘 의원에 대해 일부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제주지방법원 민사3단독 오지애 부장판사는 10일 오후 제주4·3희생자유족회 등이 태 전 의원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1심 선고공판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오 판사는 태 전 의원에게 4·3희생자유족회에 1천만 원을 배상하라고 명령했다. 다만 김창범 4·3희생자유족회장, 양성홍 4·3행방불명인유족회장, 생존 희생자 오영종(94) 씨 등 개인이 제기한 청구는 기각했다.
오 판사는 "대법원 판례에 따라 4·3희생자유족회는 피해자 지위가 인정된다"며 "피고의 발언은 의견 표명을 넘어 사실을 적시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를 뒷받침할 근거가 없다"고 판시했다. 이어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등에 비춰 허위사실 적시에 해당한다"며 "명예훼손과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다"고 밝혔다.
태 전 의원은 2023년 2월 13일 제주에서 열린 3.8 국민의힘 전당대회 첫 합동연설회 직전 SNS에 글을 올려 4·3이 김일성 일가에 의해 자행된 만행이라고 규정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태 의원은 14일에도 입장문을 내 북한 대학생 시절부터 4·3사건을 유발한 장본인은 김일성이라고 배워왔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밝혀 거센 반발을 불렀다.
같은해 6월 15일 4·3희생자유족회 등 7개 단체는 "수차례 사과 요구에도 이를 무시하며 심각한 명예훼손을 계속하고 있는 태 의원에 대한 엄정한 법적 심판을 요구하기로 했다"며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렇게 2년 넘게 이어진 소송 끝에 1심에서 승소한 유족회는 4·3 왜곡이 반복되지 않도록 처벌규정을 즉각 개정하라고 촉구했다.
제주4․3희생자유족회와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는 이날 1심 선고 직후인 오후 2시 10분 제주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4·3역사가 진실과 정의를 향해 진보해 나갈 수 있도록 조속히 4·3특별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줄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태영호 전 의원은 4·3에 대해 지속적인 왜곡을 하면서도 자신의 발언에 대해 뉘우치기는커녕 단 한 차례도 유족과 제주도민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또 재판 내내 보여준 진정성 없는 태도와 무책임한 회피에 분노를 금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4·3 왜곡과 폄훼에 대한 구체적인 입법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더 이상 희생자의 명예를 훼손하지 않고 유족들의 뼈저린 아픔에 상처를 덧씌우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한민국 국회와 정부는 4·3 왜곡에 대한 처벌규정이 담긴 4·3특별법 개정안을 즉각 통과시켜 줄 것을 온 유족의 이름으로 촉구한다"고 했다.
한편 2003년 정부 진상조사보고서에는 제주4·3을 군경의 진압 등 소요사태 와중에 양민이 희생된 사건으로 규정했고 제주4·3 기간 북한 김일성의 지시에 의한 것이라는 내용은 없다. 제주4·3이 벌어진 1947년 삼일절 기념대회 당시 경찰의 발포사건 때부터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통행금지령이 해제될 때까지 7년 7개월간 3만여 명의 양민이 희생당한 것으로 정부 진상조사보고서는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