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일시 : 2025년 12월 6일(토) 오후 5시 30분
■ 대담자 : 송당교회 김상구 장로 (예석건축연구소)
◆김영미> 송당교회에 어떻게 처음 발걸음을 내딛게 됐나요.
◇김상구> 저희 교회를 개척하신 분 중에 박규대 집사님 가정이 있었어요. 당시에는 수도시설이 잘 없던 때라 밭에서 일을 하다 물이 부족 할 때면 박규대 집사님 댁에 자주 물을 얻으러 가곤 했는데, 그러다 보니 집사님 가정과 가까워졌습니다.
집사님 가정과 가까워지면서 자연스럽게 교회 문턱을 넘기 시작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꾸준히 다녔지만 교회가 좋아서나 믿음이 깊어서라기보다는 그저 교회 자체가 좋았습니다. 중‧고등학교때는 통학을 했는데, 학교 끝나면 집보다 교회 앞 버스정류장에 내려서 교회에서 한참 동안 있다 집으로 걸어오곤 했어요. 또 어떤 날은 교회에서 잠을 자고 있으면 새벽기도 나오신 집사님께서 바닥에 깔려 있던 카펫으로 덮어주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교회는 저에게 너무나 평안한 장소였어요
◆김영미> 그때는 왜 그렇게 교회가 좋았을까요.
◇김상구> 아마도 집사님 댁에 캔디 만화 주인공 그림을 아주 잘 그리는 예쁜 누나가 있어서 그랬던 게 아닌가 싶지만 저에게 신앙의 기초를 다지는데 가장 큰 영향을 준 분은 박규대 집사님입니다. 저에게는 교회 안에서 '아버지' 같은 분이셨어요. 장로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저에게 늘 "너는 장로가 될 사람"이라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씀해주셨고,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어린 저에게 먼저 안부전화 주시고 항상 기도하고 있다며 응원해 주신 분입니다. 송당이라는 작은 마을의 첫 장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며, 또 그분의 사랑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예요.
그분은 사랑과 행함이 있는 그리스도인의 표상이고 지금도 그분 삶의 모습은 늘 신앙의 본이 되어 제 마음에 깊이 남아 있습니다. 저는 우리교회가 너무 좋아요. 나무 한그루 한그루가 소중하고, 화려하지 않지만 평안을 주는 교회라서 좋습니다. 또한 어머니 아버지 같은 분들과 신앙의 길을 함께 걸어갈 수 있다는 것이 참 귀하고 소중합니다.
◆김영미> 장로님이 아이들과 유독 가까운 것도 그 영향이겠네요.
◇김상구> 맞아요. 교사로 섬기는 손길이 부족한 송당교회에서 저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주일학교 교사로 섬겼습니다. 어린이들이 저를 사랑해 줘서 두 팔이 부족할 정도였답니다. 한 해는 여름성경학교 강습회를 간 적 있는데, 다른교회 장로님들이 자기 교회 교사들만 데리고 나가서 따로 맛있는 걸 사주던 걸 보며 '나는 나중에 우리 교회 어린이들에게 부족함 없이 마음껏 사줄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지금은 주일이면 교회 근처 편의점에 가서 어린이들에게 오늘은 "마음껏 골라!"라고 합니다. 어린이들이 저를 좋아해 준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고마워서 인사하면 용돈, 반가우면 편의점 간답니다. 삼촌처럼 따르는 모습이 참 귀하고 기쁩니다.
◆김영미> 어릴 때 받았던 사랑이 이어진 거네요.
◇김상구> 사실 제가 신앙생활을 시작하던 시절에는 선배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청년들도, 학생들도 풍성했죠. 그런데 대학 진학이나 직장 문제로 모두 육지로 떠나고, 어느 순간 저 혼자 남아 있더라고요. 그 공허함이 참 컸습니다.
어느 날 종탑 앞에 서서 많이 울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 "저는 끝까지 송당교회를 지키겠습니다"라고 맹세했어요. 그래서 이런 질문을 받거나 제 마음을 이야기하는 게 지금도 조금 두렵습니다. 그때 느꼈던 외로움과 책임감이 너무 선명해서요.
그 약속을 지키는 길이 쉬웠던 것은 아닙니다. 이끌어줄 어른도, 뒷받침해줄 후배도 없이 혼자서 많은 일들을 감당하다 보니 성도들 사이의 갈등, 목회자와의 관계 등 여러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힘들 때마다 곁에서 함께 기도해 주고, 동역해 주신 집사님들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습니다.
◆김영미> 신앙 1세대로 알고 있습니다. 송당에서 믿음생활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김상구> 그렇습니다. 외부에서 볼 때 송당은 무속신앙이 강한 지역입니다. 저희 교회 근처에는 당오름이 있는데 그 곳에 '본향당'이 있습니다. 무속신들의 고향이라고 부르는 곳이기도 합니다. 송당에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여자 선배들 중에는 교회 다닌다는 이유로 오빠한테 매를 맞기도 하고, 어쩌다 교회 나오면 친척들의 괴롭힘으로 교회나오는 것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저는 막내라 조금 덜했지만, 예배를 드리고 싶어 아버지 몰래 성경책을 돌담 사이에 숨겨놓고 저녁 먹은 후 공부한다고 방에 들어갔다 창문으로 몰래 나와 교회에 가기도 했어요. 그런 모습을 보고 아버지께서 "교회 다니는 것만큼 하면 서울대 가겠다"라고 말씀하기도 했어요. 그때의 열심이 지금의 신앙의 자리에 있게 하지 않았나 생각하고, 두 아들이 예수님 잘 믿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김영미> 그래서 교회 건축도 많이 하셨죠.
◇김상구> 처음은 교회건축 설계를 주로 했습니다. 저는 '교회 건축만큼은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늘 있었어요. 그래서 공부도 많이 하고 자료도 수집했죠. 그러다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셔서 제일행복한교회(구 신동아교회)를 시작으로 청수성결교회, 해변교회, 복음교회, 행원교회, 함덕교회, '행원교회 들락날락센터', 그리고 올레길을 걷는 이들이 쉬어가는 '순례자의 교회'까지 설계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특히 순례자의 교회는 예수님께서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말씀하신 것에서 영감을 얻어 '새집' 형태로 디자인했고요. 올레길을 찾는, 마음이 상한 이들에게 작은 쉼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김영미> 교회 건축을 할 때 특별히 중요하게 여기는 점은 어떤 겁니까.
◇김상구> '교회건축은 그 교회만의 이야기가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회건물의 외형적인 부분과 실내공간도 그 교회의 역사가 담길 수 있도록 신경을 씁니다. 성도들이 교회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아, 내가 예배드리러 교회 왔구나' 하고 걸음을 멈추게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각 교회의 상황과 교회가 세워지는 곳에 맞는 형태를 갖는 것도 중요하고요.
◆김영미> 요즘은 송당교회 '알송달송센터'를 건축하고 있는 걸로 압니다.
◇김상구> 코로나 이후 저희 교회 아동부가 크게 성장했습니다. 많아야 10명이던 아동부가 유치부 포함하면 50명까지 늘었어요. 예배 공간이 턱없이 부족해지고, 어른들이 예배 후 쉴 수 있는 공간까지 어린이들에게 내어주는 상황이 되다 보니 추가공간이 필요했습니다.
이름은 하나님께서 너무나도 확실하게 알려주신 것 같아요. '알'은 다음세대를 상징하고, '송'은 다음세대를 향한 성도들의 응원, '달'은 창조주 하나님을 '송'은 성도들의 응원을 받은 다음세대가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다음세대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담은 알송달송센터가 건축 되고 있고 현재 공정률은 80% 정도입니다. 내년 봄 완공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김영미> 센터를 지으며 장로님 마음에 특별히 담긴 기도가 있을까요.
◇김상구> 지금 교회 재정 형편에서 알송달송센터를 건축한다는 것은 큰 부담입니다. 그렇지만 '다음세대가 없으면 교회는 망한다'라는 생각으로 온 성도들이 마음을 모아 결정했습니다. 사실 저는 다른 공간 건축을 감당하면서 어려움을 겪은 터라 이번 센터 건축은 후임 장로님들이 하길 바랐지만, 올해 제게 십여 년 만에 한가한 시간이 주어졌고, 뒤돌아 설 때마다 하나님께서 "네가 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순종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오늘도 방과 후 교회로 몰려드는 어린이들을 바라보며, 흐뭇하고 감사한데요. 이곳을 이용하는 모든 아이들과 청소년, 그리고 성도들이 '우리가 사랑받고 있구나', '이 사랑은 송당교회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구나'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김영미> 송당교회는 지역사회와도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죠.
◇김상구> 송당초등학교와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데 얼마 전에 학교 진입로 확장공사로 통학로가 없어지면서 교회가 출입구를 열어 함께 쓰게 되면서 학교와 더 가까워졌습니다.
그리고 매주 금요일마다 교회식당에서 송당초 전교생 어린이들에게 간식도 나눠주고 여름워터파크. 트렘펄린 놀이터로 아이들을 섬기고 있는데 이 사역이 정말 좋은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부모님들도 간식비라며 헌금과 물품을 보내오고, 교회 잔디도 어느 날 깎아주기도하고, 여러 행사 때마다 믿지 않는 부모님들이 함께 마음을 모아 주세요. 마을에서 교회에 대한 신뢰가 쌓이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김영미> 앞으로의 사명에 대해 고민하신 부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김상구> 제 평생 소원은 '80세까지 아동부 교사로 섬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전담 교역자가 세워지면서 아동부 교사를 계속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차량 운행을 하며 아이들과 소통했는데요. 요즘은 부모님들이 직접 데리고 오니 그마저도 하지 못하게 되었죠.
그래서 지금은 한 발 물러서 청소하고, 뒤에서 돕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제 사무실엔 어린이 책이 정말 많습니다. 언젠가는 아이들이 와서 책을 보고 놀고 만들기를 하는 작은 공간이 되면 좋겠어요. 가끔은 들과 산으로 나가서 나무와 식물을 돌보며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아이들과 나누는 것도 제 소망입니다.
◆김영미> 기도 제목을 나눠주시죠.
◇김상구> 저의 기도 제목은 늘 교회입니다. 저의 첫 건축은 화장실, 식당, 사택이었는데요. 알송달송센터를 건축하고 난 다음은, 제 평생 소원인 '내가 섬기는 송당교회의 새 성전을 짓는 것'입니다. 그 일이 저에게 주어질지, 아니면 후배 장로님들이 하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시골교회라는 이유로 무시받던 지난 시간들이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도 하나님은 계시다고 증거 되는, 송당마을 속에 우뚝 서는 아름다운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