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국가의 안보 결단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지난 11월 5일,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에 대한 1심 결심 공판에서 검찰은 국가안보 라인의 고위 공직자들에게 실형을 구형했다. 12월26일 1심 선고를 남겨두고 있는 이 재판이 던지는 질문은 단순히 특정 인물의 형사 책임을 넘어선다.

대한민국이 앞으로 어떤 기준으로 국가 안보 판단을 이해하고 평가할 것인지, 그리고 정책적 결정을 어디까지 사법적 판단의 영역으로 가져올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우리 사회 앞에 꺼내 놓았다. 국가안보에 관한 결정은 본질적으로 불완전한 정보, 제한된 시간, 상충하는 국익 속에서 내려지는 고도의 전문적 판단이다.

문제는 그러한 판단을 사후적으로 확대된 정보나 달라진 정파적 해석을 기준으로 형사 처벌의 대상으로 삼기 시작할 때 발생한다.

위기 상황에서 내려진 결정을 뒤늦은 정보로 재구성하거나 정치적 잣대로 평가한다면, 이는 과거를 재단하는 방식에 그치지 않고 현재의 판단체계마저 위축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정책적 판단이 형사 재판과 곧바로 연결되는 구조는 공직자가 감당해야 할 위험 부담을 과도하게 키운다. 책임을 묻는 과정이 불투명해질수록 공직자들은 점점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태도로 돌아설 수밖에 없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안전한 선택"이라는 후퇴된 문화가 자리 잡게 되면, 위기 대응 능력은 급격히 낮아지고 사회 전체의 안전망이 약화된다.

이번 재판에 연루된 공직자들은 오랜 경험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명을 지켜 왔던 분들이다. 그분들의 전문적 판단이 정치적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되었고, 지난 3년의 시간 동안 명예와 개인의 삶까지 흔들리는 고통을 겪어왔다.

동시에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의 아픔과 슬픔도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를 단순히 개인적 비극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국가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해 온 인재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보호해야 하며, 책임 추궁 또한 사실과 절차에 기반해 공정하게 이뤄져야 한다. 그렇지 않을 때 발생하는 국가에 대한 신뢰와 인재 유실은 국가가 감당하기 어려운 손실로 돌아온다.

국제사회의 사례도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한다. 9·11 테러 대응 과정의 정보 실패나 이라크전 정보 오판처럼 논란이 거셌던 사건들에서도, 미국과 유럽의 민주주의 국가들은 정책 판단을 형사 처벌로 직접 연결하지 않았다.

원칙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사회 전체가 감당해야 할 비용은 더욱 커진다. 이번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의 1심 선고는 국가 시스템 전반에 상징적인 메시지를 남길 것이다.

만약 실형이 선고된다면 앞으로 국가안보와 관련된 결정을 내리는 모든 공직자는 언제든지 '사법적 위험'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결과적으로 국가안보 라인의 결단력은 약해질 것이고, 이는 장기적으로 대한민국의 대응 역량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책 판단과 형사 책임의 경계를 명확히 하고, 위기상황에서 공직자들이 주저함 없이 판단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을 만드는 일이다. 동시에 지난 3년간 재판을 받아온 공직자들에 대해서도 사실과 절차에 기반한 정당한 평가와 유가족들에 대한 위로도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은 정치적 선택이 아니라 국가가 책임져야 할 최소한의 도리다. 국가안보를 위해 헌신한 사람을 국가가 지켜주는 일, 이는 건강한 민주주의의 조건이자 공동체가 지켜야 할 기본 원칙이다.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 재판은 우리가 앞으로 어떤 안보 체계를 만들고 어떤 민주주의 원칙을 유지할 것인지 묻는 역사적 분기점이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아니라 공공의 원칙과 제도적 안정성을 기준으로 이 문제를 바라볼 때, 우리는 보다 안정적이고 성숙한 민주주의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윤재선 (산천무지개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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