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현대시의 주요 목소리로 평가받는 로버트 크릴리의 시 세계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소개된다. 민음사에서 '세계시인선' 18번째 권으로 크릴리 시선집 '나는 긴장을 기르는 것 같아'를 펴냈다.
크릴리는 미국 최고 시집에 수여하는 볼링겐상(1962)을 수상했으며, 뉴욕주 계관시인(1989~1991), 미국예술과학아카데미 펠로(2003) 등을 역임한 시인이다. '20세기의 에밀리 디킨슨'으로 불릴 만큼 간결하면서도 내밀한 어법으로 현대시사에 자리매김해 왔다.
초기에는 블랙마운틴 시학의 '투사시(Projective Verse)' 흐름 속에서 출발했지만, 이후 일상의 언어와 절제된 형식으로 독자적 시 세계를 구축했다.
이번 시선집은 크릴리와 버펄로대학교에서 매주 미국 시문학을 논했던 번역가 정은귀 한국외대 교수가 '사랑을 위하여(For Love)', '끌림(The Charm)', '단어들(Words)', '거울(Mirrors)' 등 대표 시집에서 직접 고른 73편을 실었다. 영어 원문도 함께 수록됐다.
수록 시 '그 꽃'의 첫 구절인 "나는 긴장을 기르는 것 같아 / 아무도 가지 않는 숲속의 꽃들처럼"에서 드러나듯, 크릴리의 시는 상처·감정·욕망을 일상의 이미지로 절제해 드러낸다. 말하지 못한 감정의 여백, 드러냄과 숨김의 반복이 그의 시적 특징으로 꼽힌다.
시 '언어'에서 "나는 / 당신을 사랑해 / 다시, / 그러면 대체 왜 공허한지"와 같은 구절은 그의 시가 말과 침묵, 의미와 비어 있음 사이를 오가는 방식으로 독자에게 울림을 남긴다는 점을 보여준다.
크릴리의 작품을 국내 독자가 만나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973년 시작된 '세계시인선'은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 에밀리 디킨슨, 보들레르 등 고전·모더니즘·현대 시인을 아우르며 가장 오랜 생명력을 이어온 시문학 시리즈다. 출판사는 "크릴리의 시를 통해 독자들이 새로운 감각의 정밀함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