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기야 색깔론 꺼내든 장동혁…중도층은 포기했나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4일 국회에서 열린 제18차 전국위원회에 참석해 인사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12·3 불법 비상계엄 1년' 이튿날인 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재명정부의 '허술한 안보관'을 도마에 올렸다. 범여권의 '국가보안법 폐지 법안'을 때리며 "쿠팡까지 들어온 중국인 간첩부터 막아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다.

그는 이재명 대통령의 '대북전단 살포 사과' 및 '한미연합훈련 축소' 가능성 등을 차례로 언급하며 "이 정권의 안보 붕괴를 반드시 막아낼 것"이라고 투쟁 결의를 다지기도 했다.

다만, 당내에서도 장 대표가 계엄 옹호성 입장을 낸 직후 '종북몰이'에 나선 데 대해 시선이 곱지만은 않은 분위기다.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둔 가운데 '중도층은 아예 포기한 거냐'는 질타 섞인 우려도 흘러나오고 있다.  

계몽령 답습하더니 急색깔론 꺼낸 장동혁 


장 대표는 더불어민주당·진보당 등이 발의한 해당 법안에 "간첩 말고는 누구도 불편하지 않은 법을 폐지하겠다는 것은 결국 대한민국을 '간첩 천국'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라는 꼬리표를 달았다.
 
아직 진상을 조사 중인 쿠팡의 대규모 정보 유출사태도 한 꾸러미로 엮었다. 민감정보 대부분을 빼돌린 주체가 중국인이라고 단언하는가 하면, 현 정부가 간첩죄 개정을 막아 "중국 간첩들이 활개 치게 만들어 놨다"는 '혐중(嫌中)' 조장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계엄 1년을 맞은 3일, "12·3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며 극우세력의 '계몽령' 주장을 답습하더니, 급기야 해묵은 색깔론을 꺼내든 셈이다. 
 
문제는 이같은 레토릭이 먹히는 대상이 소위 '집토끼'라 불리는 강성 지지자에 한정된다는 점이다. 내년 6월 지방선거 성패를 좌우할 중도층 또는 무당(無黨)층에게는 설득력을 갖기 힘들다는 게 당 안팎의 중론이다.
 
그러잖아도 여론은 우호적이지 않다. 최근 여러 기관의 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은 민주당의 반토막인 20%대 수준을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당내에서는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인용으로 인증된 계엄의 위헌성·위법성은 제대로 사과하지 않으면서, 특검 수사와 여권의 '내란전담재판부' 추진 등에 대해서만 반(反)헌법적이라고 열을 올리는 태도는 모순적이지 않느냐(재선 의원)"는 일갈이 나온다. 또, 장 대표의 선동성 발언이 야당을 '반국가세력'으로 몰았던 윤 전 대통령의 계엄령 프레임과 거의 흡사하다는 해석도 제기된다.

20%대 지지율에도 '지지층 결집 외길'만…왜?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와 법사위원인 나경원 의원이 4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특별재판부 설치 및 법왜곡죄 신설의 위헌성 긴급세미나'에 참석해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당내에서는 장 대표가 이렇게 지지층 결집만 고집하는 배경을 먼저 '탄핵 트라우마'에서 찾는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한 직후 초래된 결과가 반면교사가 됐다는 해석이다. 당시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에서 비박(非박근혜)계 중심의 탈당과 분당이 일어났지만, 지지율 답보와 분열로 인해 생명이 길지 못했던 점을 이른 것이다.
 
당을 오래 지켰던 한 관계자는 "지금은 다선이 된 중진 의원들은 모두 그때의 교훈이 뼛속깊이 각인됐을 것"이라며 "그 교훈은 바로 핵심 지지층과 척을 지고는 정치를 오래 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장 대표가 물론 '1.5선'이지만 강성 당원 지지로 당권을 쥔 만큼 그런 생리를 모를 리 없다고 부연했다.

최근 장 대표가 "(여당과) 잘 싸우는 사람을 공천하겠다"며 내년 6·3 지방선거 공천의 가장 중요한 척도로 '당성'(黨性·당에 대한 충성심)을 내세운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당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을 이끌고 있는 나경원 의원 또한 "당심과 민심은 결코 다르지 않다"고 강조한 바 있다.

현 시점에 계엄 사과를 감행해 봐야 당장의 정치적 실익이 없을 거라는 계산도 바탕에 깔려 있다. 일단 임박한 선거가 없는 데다, '중도는 허구에 가깝다'는 지도부 일부의 신념이 한몫했을 거라는 분석이다.
 
한 당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12·3 계엄 관련 사과에 관심이 있는 중도 유권자는 많지 않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불확실한 유동층의 마음을 얻고자 '우군'인 당원들의 심기를 거스를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을 개연성이 있다.

수도권 등에선 '지선 필패' 위기감…"민심 먼저 잡아야"


하지만, 중도층 여론에 민감한 수도권 의원들과 초·재선 등 사이에선 상당한 위기감이 감지된다.

대개 지난 3일 계엄 사죄와 '윤 어게인' 절연, 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한 사과문에 이름을 올렸거나, 개별적으로 비슷한 의사를 표명한 이들이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이 동참한 '계엄 사과'에 연명한 한 의원은 "지금 상황으로는 (야당이 유리하다고 평가되는) 서울시장 선거도 필패다. 정치는 타이밍인데 장 대표가 태도를 전환할 적기를 놓친 게 아닐까 싶다"고 우려했다. 또다른 당 관계자도 "당이 취약해졌을 때는 (당심보다) 민심을 먼저 잡아야 한다"며 "장 대표가 내년 초까지 구성원들이 납득할 만한 '지선 승리 로드맵'을 내놔야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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