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쓰리헤드하트핸드 등 4개 제작업체는 지난 10월 전 관장을 사기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전씨가 주최한 전시회에 제작업체로 참여해 작업을 수행해지만, 정산금을 지급 받지 못해서다.
문제의 전시는 지난해 8월부터 올해 4월까지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렸던 '구름이 걷히니 달이 비치고 바람 부니 별이 빛난다(구달바별)' 미디어아트 전시다. 간송문화재단과 한 언론사가 공동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와 서울시 등이 후원했다.
전 관장은 개인회사 '케이엠엠아트컨설팅'을 통해 해당 전시를 직접 기획하고 준비했다. 간송미술관의 소장 문화재인 <훈민정음해례본>, <미인도> 등이 미디어 기술로 새롭게 해석돼 전시됐고, 전통 미술의 아름다움을 현대적으로 재탄생시켰다는 좋은 평가도 받았다.
그러나 흥행에는 철저히 실패했다. 전 관장 측에 따르면, 약 60억 원 정도가 투자됐지만, 40억 원 이상 적자가 났다. 결국 해당 전시의 콘텐츠를 만든 제작업체 4곳은 전시가 끝난 지 반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 관장으로부터 대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들 업체의 총 계약금액은 약 16억 5천만 원인데, 이중 13억 5천만 원이 미지급 상태다. 전체의 약 80%에 달하는 금액이 정산되지 않은 셈이다.
계약서에 따르면, 이들 업체는 전시에 구조물과 영상 등 미디어 콘텐츠를 만들어 제공하는 용역 계약을 전 관장과 맺었다. 전시에서 벌어들이는 티켓 수익을 지분율에 따라 매달 정산 받고 올해 5월 15일까지 남은 대금을 모두 정산받기로 했다. 쉽게 말해 티켓이 잘 팔릴수록 매달 지급받는 금액이 커지는 구조다. 당초 7월에 개관하기로 했던 전시가 전 관장 측의 내부 사정으로 3주 연기되면서 발생한 금액도 추가로 계약했고, 전시 흥행에 따라 흥행보수(러닝게런티)도 받기로 했다.
전씨를 고소한 제작업체 측은 전 관장이 정산 구조와 수익 규모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며 사기 의도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전 관장은 전시대행사 '간송랩' 대표에게도 빌린 돈을 갚지 않았다는 이유로 손해배상 소송이 걸려 패소했는데, 이 과정에서 전시 티켓 수익금이 입금되는 사업 통장이 압류됐고 일부 수익금이 빠져나갔다. 업체들은 이같은 사실을 제때 알리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 제작업체 측은 전 관장이 티켓 판매 구조도 은폐한 정황이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전 관장은 전시 티켓판매대행사 '인터파크' 외 또다른 티켓 판매대행사들과도 계약을 체결했는데, 이같은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제작업체 측은 "다른 업체에 티켓 판매금의 절반을 수수료로 지급하고 있었는데, 이런 사실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자 그제야 사실을 인정했다"고 말했다.
결국 전 관장이 정산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전시를 무리하게 추진했다는 게 제작업체 측의 의심이다. 제작업체 측과 전 관장 측에 따르면, 전 관장은 해당 전시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약 30억 원을 대출받고 전시투자사로부터도 20억 원가량을 투자받았다. 제작업체 측은 "이런 재무 상태를 알았다면 대금을 추후에 정산받는 방식으로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산이 늦어지면서 제작업체는 당장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고 주장한다. 쓰리헤드하트핸드 이상훈 대표는 "우리 업체는 직원 4~5명 규모의 영세한 콘텐츠 제작사인데, 현재 직원들에게도 양해를 구하고 모두 프리랜서로 전환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매년 2월 대기업과 영상제작 협력업체 연장 계약을 하는데, 연장 조건에는 신용도가 중요하다. 정산이 안 돼 이미 신용 등급이 강등된 상황인데, 계약에 문제가 생길까봐 걱정이 크다"고 걱정했다.
이 대표는 "국가 문화유산의 가치를 현대적 방식으로 알리는 일이라 자부심을 가지고 참여했고, 4개월간 콘텐츠 제작에 전념했다"며 "수차례 정산 논의를 전 관장에게 요청했으나, 전 관장은 변제방법에 대해 회피하거나 답변을 미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수십년간 정부로부터 공적 자금과 신뢰를 받아온 간송미술문화재단이라 믿고 계약했는데, 전 관장의 재정 상태는 뒤늦게 알았다"고 덧붙였다.
전 관장을 사기 혐의로 고소한 제작업체 4곳 외에도 전시투자사, 티켓판매대행·홍보업체 등도 모두 정산금을 지급 받지 못해 전 관장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건 상태다. 합하면 소송 규모는 약 47억 원이다. 약 20억 원대의 소송을 제기한 전시투자사는 전 관장이 그 일가와 공동 소유하고 있는 유물 '청자상감운학문매병'에 가압류를 신청해 법원이 이를 받아들였다. 제작업체 측은 지난 7월에는 공정거래위원회에 분쟁 조정 신청을 했고, 9월에는 서울시와 문화체육관광부 등에 현 상황을 담은 내용의 탄원서도 제출한 상태다.
전 관장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전시 사업이 잘 될 것이라 예상했는데, 저도 실패할 줄 몰랐다. 개인적으로도 현재 사정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어 "정산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죄송스럽게 생각하고 있지만, 사기의 의도는 정말 없었다"고 해명했다. 전 관장은 "이번 전시가 상업적으로는 실패했지만, 질적 측면에서는 매우 좋은 평가를 받았다. 여러 지자체들과의 협력 사업, 해외 진출 사업 등도 계획하고 있다"며 "새로운 사업이 잘 돼서 미수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백방으로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서울 중부경찰서는 지난 10월 해당 고소장을 접수하고 전 관장을 사기 혐의로 수사 중이다. 오는 11일 전 관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할 예정이다.
전 관장이 운영하는 간송미술관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 미술관으로,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가로서 우리나라 문화재를 수집해왔던 '간송 전형필' 선생이 1938년 간송미술관의 전신 '보화각'을 세웠다. 상당수의 국보급 문화재가 전형필 선생 일가 소유로 간송미술관에 보관돼 있다. 전 관장은 현재 간송미술관·대구간송미술관 관장, 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 학교법인 동성학원 사무국장 등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