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발 유도했던 내란…北이 응하지 않은 까닭은

[12·3내란 1년]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연합뉴스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에 대한 외환 혐의 재판이 지난 1일 시작됐다. 윤 전 대통령 등이 비상계엄의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남북 군사대치 상황을 이용했는지를 따지는 재판이다. 특검팀은 이들을 적을 이롭게 했다는 '일반이적' 혐의로 기소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10월 평양 무인기 침투 사건이다. 평양에 무인기를 보내 북한의 군사적 대응을 유도하고, 실제 북한이 대응에 나서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면 이를 계엄 선포의 정당화에 활용하려 했다는 것이다.
 
윤 전 대통령 등이 북한의 군사적 행동을 유도하기위해 벌였던 북풍 공작의 실상은 향후 재판 과정 등을 통해 철저히 진상을 규명해야한다. 다만 북한이 왜 이런 도발 유도에 응하지 않았는가는 또 하나의 쟁점이다.
 

무인기에 대한 北 지도부 반응 '상당한 위협 인식' 

북한은 무인기 침투에 대해 국방성이 아닌 외무성 중대 성명으로 첫 반응을 내놨다. 한국의 무인기가 10월 3일과 9일에 이어 10일 평양 중구역 상공으로 침투하자 그 다음 날인 11일 대외매체인 조선중앙통신에 '주권사수, 안전수호의 방아쇠는 주저 없이 당겨질 것이다'라는 제목의 외무성 중대성명을 발표했다.

이어 12일 노동신문에 이를 공개해 주민들에게도 알렸다. 이 때는 평양 노동당 본부 청사 상공에서 포착된 무인기와 여기에 달려 있는 대북전단 묶음 통 사진도 함께 공개했다.
 
북한 지도부는 당시 당혹스러움과 함께 상당한 위협을 느꼈음이 분명해 보인다. 김여정 부부장이 12일 밤부터 5차례 연속 비난 담화를 냈고, 14일에는 김정은 국무위원장 주재로 '국방 및 안전 분야에 관한 협의회'를 소집해 "엄중한 공화국 주권침범도발사건", 즉 무인기 사건에 대한 대책을 논의했다. 북한의 국방성은 이후 한국 군부의 소행이라며 무인기 잔해를 물증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북한이 이런 증거를 토대로 내란세력의 도발 유도에 군사적 대응을 하고, 이를 계기로 접경지대에서 군사적 충돌이 확대됐다면 한반도는 그야말로 전쟁의 위기에 몰리는 위험천만한 상황이 도래됐을 가능성이 높다.
 
북한이 평양에서 한국군에서 운용하는 드론과 동일 기종의 무인기 잔해를 발견했다고 주장하며 공개했던 관련 사진. 연합뉴스

北 신중한 대응, 두 개의 전선 불가

그러나 북한은 무인기 침투와 대북전단 살포 등 북풍 공작에 대해 국경 인근 8개 포병연합부대 등에 '완전사격 준비태세'를 갖추라는 '작전예비지시'를 하달한 것 정도를 제외하고는 특별한 행동에 나서지 않았다. 북한은 12.3 비상계엄 선포와 내란 사태에도 사실 위주의 보도를 하며 매우 신중한 대응 모습을 보였다.
 
북한이 군사적 대응에 나서지 않은 이유로는 우선 러시아 파병이 꼽힌다. 특수부대만이 아니라 포탄과 로켓, 중화기 등 대규모 군사 장비를 러시아에 지원하는 상황에서 두 개의 전선으로 확대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웠다는 관측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는 "김 위원장이 러·우 전쟁에 집중하고 있었고, 이에 따라 대규모 군사 장비가 러시아로 나간 상황에서 두 개의 전선은 쉽지 않았다"며 "대신 러시아로부터 무인기 침투에 대한 대비책으로 판치르 방공망 설비를 지원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북한이 지난 2023년 말부터 남북관계에 적용하고 있는 적대적 두 국가 기조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적대적 두 국가, 군사적으로도 엮이고 싶지 않아

무인기 침투를 둘러싼 공방이 남북 간에 한창 진행되던 시점인 10월 17일 김 위원장은 최전방인 인민군 제2군단 지휘부를 방문해 전날 남북 연결도로를 폭파한 것을 언급하며 "이것은 단지 물리적 폐쇄만의 의미를 넘어 세기를 이어 끈질기게 이어져온 서울과의 악연을 잘라버리고 부질없는 동족의식과 통일이라는 비현실적인 인식을 깨끗이 털어버린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이 '만약'을 전제로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강조하지만 교류협력만이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남측과 엮이고 싶지 않다는 뜻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이기동 동국대 북한학연구소 객원연구원은 "올해 북한군이 접경지역에 방벽을 쌓는 과정에서 세 차례 군사분계선을 침범해 우리 군이 경고사격을 했지만 북한은 예전과 달리 대응 사격을 하지 않았고 유엔사를 통해 항의하는 형식을 취했다"며 "이는 적대적 두 국가에 따른 분리 전략으로 군사적 대응도 신중하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내란세력의 북풍공작이 이번에 전쟁 위기로 확대되지는 않았지만 북한의 향후 정책에 반영되지 않을 수는 없다. 북한이 앞으로도 군사적 행동을 자제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분단체제 속 남북의 적대적 경쟁은 반드시 다른 한쪽의 정책에 영향을 미쳤고 체제 목적에 활용된 것이 남북관계의 역사이다.
 

북풍공작, 향후 北 헌법 개정에도 영향

북한 공군 창설 80주년 기념행사가 지난달 28일 갈마비행장에서 진행됐다고 조선중앙TV가 30일 보도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와 딸 주애가 시위비행을 참관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1972년 남북의 헌법 개정이다. 1960년대 말 북한 무장 게릴라의 청와대 습격시도와 울진삼척지구 침투 사건 등에 따른 군사적 긴장 고조를 배경으로 당시 박정희 정권은 1972년 유신헌법 개헌을 통해 3선의 독재체제를 출범시켰고 이에 짝하여 북한도 헌법 개정을 통해 김일성 주석 중심의 수령 독재를 강화한 바 있다.
 
북한은 지금도 헌법 개정을 앞두고 있다. 내년 초 당 대회와 최고인민회의 등을 통해 적대적 두 국가 기조를 각각 당 규약과 헌법에 반영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이 당초 적대적 두 국가를 제기한 여러 이유 중 하나가 윤석열 정부의 적대 정책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향후 북한 헌법과 당 규약 개정에는 이번 북풍 공작도 누적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지난 달 28일 외통위 전체회의에서 북한의 동향과 징후 등을 종합 분석한 결과 북한은 내년에 "적대적 두 국가론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하기도 했다.
 

北 인식오류, 北 '좌경맹동분자'처럼 南 극우세력 한정

다만 북한이 '한국의 진보와 보수가 대북정책에서는 똑 같다'는 인식을 토대로 적대적 두 국가를 내세우는 것은 오류라는 목소리가 높다. 북풍 공작은 어디까지 극우세력에 한정된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도 마찬가지로 내부의 '좌익맹동분자들'을 언급한 적이 있다. 김일성은 지난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을 위해 평양을 방문한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에게 일련의 무장침투사건에 대해 "내부 좌익맹동 분자들이 저지른 일"이라며 사과 입장을 밝혔다. 무장침투를 주도한 김창봉 당시 민족보위상 등이 '좌익맹동분자들'로 거론돼 숙청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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