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연이어 '비핵화' 대신 '핵 없는 한반도'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북한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비핵화'를 에둘러 다른 표현으로 사용하며 손을 내미는 동시에 국내 자체 핵무장론을 차단하는 이중포석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비핵화 대신 '핵 없는 한반도, 한반도 비핵화'
이 대통령은 지난 3일 외신 기자회견에서 "핵 없는 한반도, 한반도 비핵화는 우리가 남북이 기본적으로 합의한 대원칙이기 때문에 거기에서 벗어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전날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출범회의 연설에서도 "한반도에서 전쟁 상태를 종식하고 핵 없는 한반도를 추구하며 공고한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노력도 지속하겠다"고 강조하며 남북 간 연락 채널 복구와 교류 협력 사업을 제안했다.
정부는 '핵 없는 한반도'라는 표현을 기존에 사용해온 '한반도 비핵화'와 같은 의미로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비핵화는 남북한 모두에서 핵무기와 핵 위협을 제거한다는 개념으로 쓰인다. 다만 북한은 이 개념을 남한에서의 미국 핵우산 제거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주장한다.
정부가 비핵화라는 명시적 용어 대신 '핵 없는 한반도'를 반복해 언급한 이유는 북한과의 대화환경을 조성하는 유화책의 일환이다. 북한은 비핵화의 전제조건에서는 미국과 대화할 의지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핵 없는 한반도는 우리의 궁극적인 지향점을 표현하는 것이고, 비핵화는 이를 실현하기 위해 추진해 나가는 과정이 좀 더 부각된 것"이라며 비핵화의 의지가 후퇴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북한 비핵화 동시에 국내 핵무장론 차단 '이중포석'
아울러 정부가 북한만이 아닌 한반도 전체의 비핵화를 뜻하는 용어를 사용해 국내 자체 핵무장론을 차단하기 위한 의미도 가지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통령이 연일 공개적으로 내놓고 있는 국내 핵무장론 경계 발언의 연장선이라는 것이다.
올해 초 조현동 전 주미대사는 "미국 측과 협의를 통해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는 '북한 비핵화' 용어를 사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북한 비핵화'는 핵무기를 실질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북한의 핵무장 해제에 초점을 맞춘 표현이다.
비핵화의 주체를 북한으로 명확히 한 것인데, 조기대선 국면 당시 떠오른 국내 '핵 잠재력 확보론'과 맞물려 우리나라의 자체 핵무장 가능성을 열어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다만 한미 정상회담 이후 핵추진잠수함 확보와 원자력 협상 후속 논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 대통령은 국내 일각의 핵무장론을 차단해 미국 조야의 의구심을 불식시키는 데 공을 쏟고 있다.
다른 관계자는 "핵 없는 한반도는 지난 정권과 달리 북미대화에 적극적인 달라진 상황이 반영된 것은 물론 우리 정부의 비확산 의지를 강조하는 용어 선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