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내란 이후의 1년은 노동계가 '반국가세력'이라는 낙인을 걷어내고 사회와 민주주의 일부로 재평가 받는 과정이었다.
내란 사태 이후 탄핵과 정권 교체가 이뤄졌고, 이재명 정부 출범과 함께 최초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출신 고용노동부 장관이 임명되는 등 외형적인 변화가 뒤따랐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내란 1년이 지난 지금도 노동자의 현실은 여전히 참혹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화물연대 제압', '건폭 몰이'가 키운 계엄이란 괴물?
윤석열 정부의 노동조합 탄압은 단계적으로 심화했다. 그 시작은 2022년 말 화물연대 파업이었다. 당시 정부는 화물 기사들의 파업에 대해 '불법 집단운송거부'로 규정하고 사상 초유의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했다. 결국 화물연대는 범죄자로 몰리는 압박에 동력을 잃고 파업 철회를 했다.이러한 강경 대응 기조는 이듬해인 2023년 경찰력을 전면에 등장시켰다. 대통령이 건설노조를 '건폭(건설폭력배)'으로 지칭하며 강력 단속을 지시하자, 경찰청은 '특진'을 내걸고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무리한 소환 조사와 구속 수사가 이어지던 2023년 5월 1일, 건설노조 양회동 지대장이 분신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를 '법치주의 확립 과정'으로 규정하며 강경 기조를 굽히지 않았다.
이러한 '적대적 노동관'은 결국 사회적 대화의 파탄을 부르기도 했다. 2023년 6월, 광양제철소 앞 고공농성장에서 경찰이 김준영 금속노련 사무처장을 곤봉으로 유혈 진압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즉각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전면 불참을 선언했다. 합리적 실용 노선을 걷던 한국노총마저 대화 테이블을 박차고 나가게 만든 것은, 정부가 노동계를 국정 파트너가 아닌 '제압해야 할 적'으로 여겼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장면이었다.
노조에 대한 적개심은 결국 12·3 계엄령에서 극에 달했다. 당시 계엄 포고령 제4호는 "사회혼란을 조장하는 파업, 태업, 집회행위를 금한다"고 명시하며 노동계를 주요 타격 대상으로 삼았다.
검찰이 지난해 12월 내놓은 수사 결과는 더 충격적이다. 검찰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초, 김 전 국방장관과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을 관저로 불러 "현재 사법체계 아래에서는 정치인과 민주노총 관련자들을 처리할 수 없다. 비상조치권을 사용해 조치해야 한다"는 취지로 지시했다.
이는 윤 전 대통령이 계엄을 통해 노동조합을 물리적으로 제거하려 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계엄군의 체포목록에는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이 올라있었다. 윤 대통령에게 노동조합은 '반국가세력'이었던 셈이다.
이러한 탄압 속에서도 불법 계엄이 사태가 일어나고, 누구보다 앞서 대항한 것도 양대 노총이었다. 계엄 이후 윤 전 대통령의 퇴진 운동에 가장 앞서기도 했다. 민주노총은 계엄 직후 즉각 무기한 총파업을 선언하며 시민사회와 함께 광장에서의 퇴진 운동을 전개해나갔다. '정권 심판'을 주장해오던 한국노총은 계엄 직후 처음으로 '정권 퇴진'을 공식화하며 사회적 대화 중단을 선언했다.
노동조합은 '윤석열 탄핵'을 외치기 위해 거리에 나선 청년들과 함께 하기도 했다. 민주노총 양 위원장은 최근 KBS 비상계엄 특집 다큐에 출연해 "당시 청년들에게 민주노총은 위험한 집회 현장에서 믿을 수 있는 '든든한 아저씨' 같은 존재였을 것"이라며 "조직된 노동자들이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를 시민들이 확인했기에, 저들이 우리 사회에 필요한 존재구나인 것을 인식할 수 있었던 계기였다"고 소회를 밝혔다.
"노동자의 죽음과 일터의 붕괴가 계속되고 있다"
내란 사태 수습 후 들어선 이재명 정부는 노정 관계 복원을 시도하고 있다. 민주노총 출신 장관 임명은 노동계를 국정 파트너로 인정하겠다는 강력한 신호였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실제 노동 현장의 지표는 참혹한 상태다.
특히 쿠팡 '로켓배송'의 편리함 뒤에 가려진 죽음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올해 쿠팡 배송 관련 업무를 하다 사망한 노동자는 알려진 것만 총 7명이다. 지난달 26일 경기 광주 쿠팡 물류센터에서 50대 노동자가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사망했다. 동탄센터에서 30대 계약직 노동자가 숨진 지 닷새만이다. 물류센터뿐만 아니라 대리점 소속 택배노동자도 지난달 10일 제주에서 새벽배송 업무 중 교통사고로 숨진 사건을 포함해 올해 3명이 잇따라 사망했다.
이 밖에도 세종호텔 해고 노동자는 복직을 요구하며 300일 가까이 고공농성을 이어가고 있고, 홈플러스 노동자들은 대량 해고 사태 해결을 촉구하며 26일째 단식 농성을 벌이다 병원으로 이송됐다. 민주노총은 계엄 1년이 된 지난 3일 성명에서 "노동자의 죽음과 일터의 붕괴가 계속되고 있다"며 "내란 세력 단죄뿐만 아니라 노동 중심의 실질적 사회 개혁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동계와 전문가들은 내년이 이재명 정부 노동 정책의 성패를 가를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정권 교체 효과로 인한 '허니문 기간'은 사실상 종료됐다는 평가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산재와의 전쟁'이다. 정부는 출범 직후 '노동자의 생명 안전'을 최우선 국정과제로 내세웠으나,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을 중심으로 사망 사고는 줄지 않고 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내년에는 분명히 감축시킬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공언했지만, 내년이 실질적인 성과를 증명해야 할 '최대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함께 윤석열 정권의 두 차례 거부권 행사 뒤 이재명 정부에서 통과된 노란봉투법(개정 노조법)의 시행을 둘러싼 갈등도 뇌관이다. 정작 법은 어렵게 통과됐지만, 정부가 마련한 시행령은 노사 갈등의 불씨인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으면서 노동계의 반발이 거세다.
현장에서는 "이럴 거면 법 개정을 왜 했느냐"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만약 내년 시행 과정에서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아군'이라 믿었던 노동계와 정부 사이에 거센 후폭풍이 불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공운수노조는 "윤석열의 계엄이 다시 회자되는 것은 과거의 공포 때문이 아니라, 광장의 요구에도 삶이 나아지지 않았다는 현실 때문"이라며 "사람만 바뀌고 시스템이 그대로인 상황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