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회 민주주의의 상징 영국에는 PMQ라는 오랜 역사의 정치 행위가 있습니다. Prime Minister Question, '총리와의 대화'입니다.
넘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서 의원들은 저래도 되나 싶을 정도의 독설을 총리에게 내뱉습니다. 총리도 물러서지 않습니다. 이를 보는 여야 의원들은 야유와 환호 등 각자의 방식으로 응원합니다.
야유가 나온다 해서 법사위 같은 우리 국회 모습을 떠올리면 안 됩니다. 기본부터 다릅니다. 말에는 멸시보다는 유머가, 조롱보다는 해학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 국회에선 진짜 볼 수 없는, 본 적도 없는 모습이 많이 나오니 시청을 권합니다.
총리에겐 그야말로 고역인 자리이지만 피할 수도 없습니다. 매주 수요일 30분간, 정기적으로 열리기 때문입니다.
PMQ가 낳은 수많은 스타 중 하나가 영국 75대 총리 데이비드 캐머런입니다. 2005년 보수당 당대표였던 캐머런은 당시 총리였던 토니 블레어 면전에서 '당신의 정책은 구식이고, 당신도 이제 끝났다'며 이렇게 말합니다.
"This approach is stuck in the past. And I want to talk about the future. He was the future once"(이 접근은 구식입니다. 저는 미래에 대해 말하려고 합니다. 블레어도 한때는 미래였습니다).
블레어를 '한때의 미래'로 치부하며 그의 퇴장, 새로운 미래인 자신의 등장을 알린 당찬 선언이었습니다. 일약 스타가 된 캐머런은 이후 보수당의 총선 승리를 이끌며 2010년 총리가 됩니다.
하지만 그의 영광도 오래가지 못합니다. 영국 역사에 길이 남을, 영국을 뿌리부터 흔든 사건에 그는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새기고 맙니다. 2016년 '브렉시트'였습니다. 거센 비판 속 그는 총리직 사퇴를 선언합니다.
스스로 퇴진하는 캐머런은 자신의 마지막 PMQ에서 이렇게 말하고 자리를 뜹니다.
"After all, as I once said, I was the future once"(제가 말했던 것처럼 저도 한때는 미래였습니다).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고, 잘못을 반성한 겁니다. 과거 자신이 했던 말을 자신에게 돌려주는 방식으로.
의회내 박수를 금지하는 영국에서 야당 의원들조차 퇴장하는 캐머런의 등 뒤로 박수를 보냈습니다. 이후 그는 꽤 오랜 시간 정계에 발을 들이지 않았습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불법 비상계엄 1년, 역시나 반성과 사과는 없었습니다. 품격 있는 반성과 사과를 기대한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계엄을 옹호하는 발언이 나올 줄도 몰랐습니다. 그것도 윤 전 대통령이 아닌 국민의힘 대표의 입을 통해서 말이죠.
장동혁 대표는 "더불어민주당의 의회 폭거를 막기 위한 계엄이었다"고 말합니다. 의회 폭거를 막기 위한 계엄이었지만 정작 1년 전 장동혁 의원은 그 늦은 밤 군경을 뚫고 국회로 들어가 계엄 해제에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장 대표는 "국민의힘은 하나 된 전진을 해야 한다"며 강경투쟁도 예고했지만, 반성 없는 투쟁이 얼마나 호응을 얻을지 의문입니다. 당장 국민의힘 의원들조차 동요하고 있으니 말이죠. 장 대표는 "국민의 신뢰를 얻고 국민께 인정받는 새로운 보수정치를 시작하겠다"고 했지만, 어느 국민을 말하는지 당내에서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괴짜 총리로 불명예 퇴진한 영국 보리스 존스의 마지막 PMQ에서도 새겨들을 만한 말은 있었다고 합니다.
"Remember, above all, it's not Twitter that counts, it's the people that sent us here"(기억하세요. 중요한 것은 트위터가 아니라 우리를 이곳 의회에 보내준 국민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