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양날의 검'이 된 희토류

안보보다 무서운 경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왼쪽)와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연합뉴스

중국과 일본이 제대로 한판 붙을 태세이다. 서로 한 치의 양보 없이 갈등 수위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 과정에 거친 언사들이 오가면서 양국민의 감정 싸움으로 확산되고 있다.
 
중일 갈등은 "(중국과 대만의) 무력 행사는 (일본의) 존립위기 사태"라는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지난달 7일 국회 발언으로 촉발됐다. 자위대의 군사 개입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 헌법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전쟁 자체를 금지하고 있지만, 2015년 아베 내각은 안보법제를 통해 '존립위기 사태' 시에는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중국은 다카이치 총리를 맹비난하며 거세게 반발했다. 일본이 '하나의 중국'을 부정하고 양국 외교 정신을 위반했다며 즉각 대일 보복에 나섰다.
 
중국 당국은 2016년 사드 배치로 인해 내려진 '한한령(限韓令, 한류 금지령)'과 비슷한 '한일령(限日令, 일본문화 금지령)'을 발동했다. 한한령처럼 표면적으로는 자제 요청이지만 실제로는 금지 명령이다.
 
연합뉴스

지난달 중국의 일본 단체 관광은 60% 이상 취소됐고 항공편 운항도 16% 중단됐다. 일본 가수 등의 공연이 줄줄이 취소됐고 무대에서 노래 부르던 일본 가수가 끌려 내려오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초대박을 친 '귀멸의 칼날' 등 일본 애니메이션과 영화의 상영도 전면 중단됐다.
 
한일령이 내년까지 지속될 경우 일본 관광업계의 손실은 1조 7900억 엔(약 16조 9천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 그럼에도 일본 국민들은 오히려 반기는(?) 분위기이다. 중국 관광객들에 대한 비호감이 컸던데다 "(총리의) 더러운 목을 베어 버리겠다"는 중국 외교관의 극언도 작용했다. 일본 정부와 국민 모두 전혀 굽힐 기세가 아니다.
 
그럼 중국의 다음 카드는 무엇이 될까? 중국은 이미 한일령과 함께 수산물 수입을 금지하는 산업 제재도 가했다. 그러면서 희토류 대일 수출 제한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스마트폰, 전기차 등 첨단제품 제조에 필수적인 희토류는 중국이 전 세계 생산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때문에 중국은 미국과 관세 전쟁에서 희토류를 주요 무기로 활용했다. 중국은 이미 2010년 일본과의 센카쿠 열도 분쟁 당시 희토류를 효과적으로 써먹었다. 일본 해상보안청이 불법 조업 중이던 중국 어선을 나포하고 선장을 구속하자 중국 당국은 즉각 석방을 요구했는데, 일본 측이 거부하자 희토류 대일 수출을 전면 중단한 것이다. 이에 일본 당국은 주요 산업의 피해를 우려해 아무 조건 없이 선장을 석방하며 백기를 들었다.
 
과거의 성공 사례도 있지만 어찌된 일인지 중국은 으름장만 놓을 뿐 희토류 카드를 실제로 꺼내지 않고 있다. 15년 전과는 달리 일본에 역공을 당할 지점이 생겼기 때문이다. 2010년 중국은 글로벌 IT 제조공장들이 집결하면서 세계 2위의 반도체 소비 시장이었음에도 자국 생산 비중은 세계 8.6%에 불과했다. 중국 당국은 반도체 무역 적자가 1천억 달러를 넘어서자 대규모 투자로 자국 생산 능력을 키워 현재는 15% 수준까지 끌어 올렸다. 일본에게 좋은 표적이 생긴 것이다.
 
연합뉴스

일본은 중국이 희토류 공격을 언급하자 선수를 쳤다. 홍콩 언론 등에 따르면 일본은 지난달 중순부터 중국에 대한 포토레지스트 출하를 전면 중단했다. 포토레지스트는 빛을 투과해 웨이퍼(반도체 칩 원판)에 회로 패턴을 전사(轉寫.옮겨 심다)하는 데 쓰이는 감광액의 일종이다. 일본이 세계 점유율 70% 이상을 차지하는데 2019년 한일 갈등 당시 일본이 수출 금지했던 바로 그 품목이다. 중국이 희토류로 일본을 때린다면 곧바로 반도체 소재로 맞받아치겠다고 경고장을 날린 셈이다. 대외 경제는 물론 내수까지 어려운 상황인 중국이 움찔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실제로 중국은 서슬 퍼런 겉모습과는 달리 뒤로는 설득의 외교를 펼치는 듯하다. 일본 여행도 유학도 가지 못하고 일본 애니는 보지 못하지만, 일본 음식은 그대로 즐길 수 있다. 일본 유명 회전초밥 '스시로' 체인은 지난 1일 상하이에 새 점포를 무사히 열었고, 추가로 2개 점포를 열 예정이다. 유통업체 이온도 지난달 말 후난성에 쇼핑센터를 오픈했는데 14만 명이 찾아 문전성시를 이뤘다. 일본 자동차 업체들 역시 별다른 영향이 없다고 한다.
 
중국의 두 얼굴은 외교부 당국자에 그대로 투영된다. 류진쑹 중국 외교부 아시아 국장은 지난달 18일 베이징을 찾은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을 배웅하면서 주머니에 손을 넣고 하대하는듯한 거만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지난달 랴오닝성 다롄시의 일본 대기업 공장을 방문해서는 '중국에서 안심하고 사업을 해달라'며 책임자와 포옹까지 했다고 일본 언론은 전했다.
 
내수 및 부동산 시장 침체, 미중 갈등, 인구 고령화 등 뇌관들이 산재한 가운데 일본과의 난타전이 본격화될 경우 중국 경제는 어떤 수렁으로 빠져들지 모른다. 희토류가 더 이상 '전가의 보도'가 아닌 지금, 중국은 어떤 계책을 꺼내게 될까. 무엇이든 쉽지는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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