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통상부가 유럽연합(EU)의 신규 철강수입규제(TRQ),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역외보조금(FSR) 조사 등 국내 기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주요 통상 규제에 대해 강한 우려를 제기하고, 한국 철강·배터리·원전 기업에 과도한 부담이 되지 않도록 제도 개선을 요청했다.
3일 산업부는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이 1~3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을 방문해 마로시 셰프초비치 EU 통상·경제안보 집행위원, 보리스 부드카 유럽의회 산업연구위원장 등 EU 고위급 인사들과 연쇄 면담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현 정부 출범 이후 고위급 인사의 첫 브뤼셀 방문이다.
여 본부장은 이번 일정에서 △신규 철강 TRQ 도입 계획 △CBAM 단계별 확대 △EU 배터리규정 △한수원 체코 원전 수주 관련 FSR 조사 △한-EU 디지털통상협정(DTA) △미래지향적 협력 프레임워크 구축 등 양측 핵심 현안을 집중 협의했다.
우선 양측은 기존 FTA 무역위원회를 확대·개편해 내년 상반기 '한-EU 차세대 전략대화'를 출범시키기로 합의했다. 경제안보·공급망·첨단기술을 포괄하는 최고위급 협의체로, 향후 한-EU 협력의 최상위 컨트롤타워가 될 전망이다.
EU는 최근 역내 철강업계 보호를 이유로 외국산 철강 전 품목의 무관세 수입쿼터를 47% 축소하고, 쿼터 초과 물량에 대한 관세를 25%에서 50%로 인상하는 방안을 예고한 상태다. 한국의 EU 철강 수출은 44억 8천만 달러(약 6조 3천억 원) 규모로 미국과 함께 최대 수출시장에 해당하는 만큼 업계 피해가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커진 상황이다.
이에 한국 측은 EU에 자동차·가전 등 주요 산업에 필요한 고품질 철강을 안정적으로 공급해 온 만큼 EU가 추진하는 신규 조치가 국제 통상 규범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한국은 EU의 중요한 공급망 파트너라는 점을 들어, 신규 규제가 도입되더라도 한국을 최우선 협상 대상국으로 고려하고 한국산 철강 수출 물량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TRQ 적용 배제나 충분한 쿼터 확보 등 특별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CBAM도 대표적 민감 현안이다. CBAM은 EU 역외 생산 제품에 EU 배출권거래제(ETS) 수준의 탄소 비용을 부과하는 제도로, 2026년 초부터 실제 비용 부과가 시작될 예정이어서 한국 철강·배터리 업계에 추가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여 본부장은 "CBAM 적용 대상이 하류재까지 확장되면 공급망 하단의 중소기업까지 큰 부담을 떠안을 수 있다"며 "한국처럼 배출권거래제를 운영하는 국가의 탄소 비용이 충분히 인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여 본부장은 EU 집행위가 추진 중인 한수원 체코 원전 사업 관련 역외보조금(FSR) 조사에 대해서도 "기업의 예측가능성을 떨어뜨리는 조치"라며 강한 우려를 전달했다.
산업부는 이번 면담이 지난 9월 아세안 경제장관회의, 10월 G20·GFSEC 회의 등에 이어 세 번째 양자 접촉이라며 "이번에는 약 1시간 동안 단독 면담이 이뤄져 우리 기업의 사정과 우려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여 본부장은 "이번 방문은 EU가 새로 도입하는 통상규제에 대한 우리 입장을 명확히 전달하고, 배터리·디지털·공급망 등 미래 협력 의제를 구체화하는 계기가 됐다"며 "고위급·실무급 채널을 통해 기업들의 예측가능성을 높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