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머드급 군사기지를 품은 평택시는 한때 경기도의 변방이었다. 하지만 이젠 전국에서 가장 급성장한 대도시로 손꼽힌다.
삼성전자 중심의 반도체산업부터 고덕국제신도시와 수소 생태계, 사통팔달의 고속철도와 도로망까지. 30년에 이르는 세월, 자족기능을 끌어올리며 군사도시에서 '미래형 첨단도시'로 옷을 갈아입었다.
그 긴 여정에 한결같이 걸음을 멈추지 않았던 토박이 정치인이 있다. 정장선 평택시장이다.
평택 구석구석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을 찾기는 쉽지 않다.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내리 3선, 또 시장으로 재선을 하며 도시의 기틀을 다진 장본인이다.
그렇게 평택을 설계하고 이끌어 온 정 시장이 '끝'을 결심했다. 최근 기자회견을 열어 더는 선출직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정계은퇴를 발표한 것. 정치이력은 누구보다도 화려했지만, 퇴장선언 만큼은 가볍고 조촐했다.
정 시장은 지난달 26일 CBS노컷뉴스와의 퇴임 인터뷰에서 "지난 30년, 참으로 치열하고도 뜨거운 시간이었다"고 돌이켰다.
이어 "평택이 한 단계 더 도약하도록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평생 응원하겠다"며 식지 않은 '지역 사랑'을 나타냈다.
중앙부터 지역까지 '종횡무진', 평택 대혁신 '씨앗' 뿌려
시장실에서 인터뷰를 시작하며 정 시장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도 해맑았다. 정 시장은 "오래 전부터 정치 활동을 30년쯤 이어오면 자연스럽게 마침표를 찍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 왔다"고 털어놨다.
그는 "좌절도 있었고 반대나 오해도 있었지만, 많은 분들의 응원과 격려로 여기까지 온 것"이라고 고마워했다.
정 시장의 뿌리는 평택에 깊게 박혀 있다. 제4대·5대 경기도의원을 시작으로 국회의원으로 내리 3선을 평택에서 활동했다.
무엇보다 국회의원 시절, 그는 도시 대혁신의 중심에 서 있었다. 당시 정 시장이 발의한 '주한미군기지 이전에 따른 평택시 등의 지원 등에 관한 특별법(평택지원특별법)'은 이후 지역 발전의 '주춧돌'이 됐다.
특별법 제정으로 20조 원에 육박하는 국가 지원금을 확보할 수 있었고, 수도권 규제에서 자유로워져 지역의 신성장 동력인 대규모 산업단지 물량도 확보할 수 있었다.
미군기지 수용에 따른 시민들의 대대적인 반대로 맞닥뜨린 '위기'를 평택 발전을 위한 '시드머니'로 바꾼 셈이다.
정 시장은 "미군 이전이 곧 지역 성장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마련한 법안"이라며 "특별법이 없었다면 삼성전자뿐 아니라 고덕국제신도시나 브레인시티, 카이스트 유치도 모두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활약은 중앙정치에만 머물지 않았다. 정 시장은 지역사회로 파고들었다. 2018년 제9대 평택시장에 당선된 뒤 내리 재선에 성공했다. 지역의 청사진을 완성하기 위한 수순이었다.
그는 "시장이 되고 나서는 국회의원 시절 그린 큰 그림이 현실이 되도록 세부적으로 채색해 나갔다"며 "도로나 공원, 복지정책 하나까지도 시민이 체감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반도체·AI·교통까지…'미래형 첨단도시' 평택 탈바꿈
정 시장과 함께 한 발 내디딘 평택은 최근 첨단 도시로의 탈바꿈을 준비하고 있다. 반도체·수소·미래차·AI를 중심으로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했다. 반도체 부문에선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평택만의 반도체 생태계를 구축했고, 수소 부문에선 우리나라에서 가장 빠르게 수소 인프라를 구축해 활용하고 있다. 반도체와 수소의 강점을 바탕으로 미래차와 AI 산업도 육성 중이다.
아주대병원과 카이스트 유치도 주요 성과다. 국제학교를 유치해 글로벌 교육 환경도 조성했다. 또 평택역 광장은 도심 재생의 상징으로, 평택지제역은 미래복합환승센터로 구축해 가고 있다. 올해 말부터는 고덕에 시청 신청사 공사를 시작한다.
도시의 '혈관'인 교통망 확충에도 진심이었다. 안중역 개통으로 KTX·GTX 노선을 확보해 수도권 접근성을 높였고, 시내버스 노선을 전면 개편하는가 하면 똑버스로 대중교통 사각지대도 메웠다.
정 시장은 부수고 짓는 개발에만 몰두하지 않았다. 앞으로 100년, 200년을 내다보며 오히려 도시숲과 공원, 정원 도시를 조성해 '푸른 도시'를 만들고자 했다. 통복천을 정비하고 평택호를 중점관리저수지로 지정해 하천 수질 개선에도 힘썼다.
"새로운 세대가 상상력으로 미래 평택 DNA 심어야"
정 시장은 30년 가까이 몸담은 정계를 떠나면서도 아쉬움은 없다고 했다. 정 시장은 "후회없이 열정을 다해 뛰었다"며 "평택 발전의 기틀을 닦았다는 점에서 소임은 다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러면서 새로운 세대가 평택의 미래를 맡아 줄 것을 당부했다. 정 시장은 "새로운 세대가 평택의 발전을 이어가야 한다"며 "평택이 발전할 기반은 잡혔고, 이제 더 높은 곳으로 도약할 시기"라고 말했다.
정 시장은 "지금 추진하고 있는 굵직한 사업들이 원만히 해결되고 새로운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지금은 생각지 못한 도시 성장의 원동력과 DNA가 마련되길 바란다"고 소망했다.
은퇴 후 삶에 대해서는 가족과 함께하겠다면서도, 또 다른 '정상'을 꿈꿨다. 그는 "아직은 구체적 계획이 없지만 히말라야에 등반하는 건 꼭 할 것"이라며 "가족과 함께 세계 문명이 탄생했던 이집트나 그리스도 꼭 가보고 싶다"며 환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