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집주인 시대, 판 깔아준 한국은행[베이징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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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외국인 집주인이 사상 처음으로 10만명을 넘어섰고, 그 가운데 절반이 중국인이라는 기사가 화제가 됐다.

구체적으로 외국인이 소유한 국내 주택은 총 10.4만호이며, 이는 6개월 전 대비 3.8% 증가한 수치이다. 또, 외국인 소유 주택은 가뜩이나 수요가 많은 수도권(경기 4.1만호, 서울 2.4만호, 인천 1.1만호)에 밀집됐다.

특히, 한국인들의 신경을 긁은건 외국인 주택 소유자 가운데 중국인의 비중이 56.6%로 절반을 훌쩍 넘어섰다는 점이다. 여기다 장기체류 외국인 수 대비 주택 보유 비율은 중국인이 7%대에 그쳤다. 한마디로 한국에 살지도 않으면서 한국 부동산을 '캡투자' 등으로 사들였다는 얘기다.

모두가 예상하는 대로 "아예 중국에 나라를 갖다 바쳐라" 등 혐중 댓글이 관련 기사에 줄줄이 달렸다. 또, 중국인의 한국 주택 쇼핑이 일부 사실로 드러난 것은 혐중 여론몰이에 혈안이된 극우세력에게는 좋은 먹잇감이다.

물론 중국인의 한국 부동산 쇼핑이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지만, 혐중 여론에 매몰되기 보다는 왜 중국인이 한국, 그것도 한국인도 사기 힘든 서울 등 수도권에 집중적으로 집을 사들이고 있는지 그 원인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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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원인은 환율로 보인다. 서울외국환중개 홈페이지 고시에 따르면 12월 1일 기준 원·위안 환율은 1위안당 207원대다. 기자가 처음 중국 특파원으로 발령받은 3년 전만 해도 원.위안 환율이 180원 안팎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그새 환율이 무려 15% 가까이 뛰었다.

중국인 입장에서는 위안화 기준으로 한국의 집값이 그만큼 싸지며 '바겐 세일'에 들어간 셈이다. 시쳇말로 '개이득'이다.

그렇다고 가격이 싸졌다고 중국인들이 한국 부동산을 무조건 사들이지는 않는다. 가격 메리트에 더해 한국의 부동산이 우상향을 거듭하고 있다는 것이 중국인들이 한국 부동산을 매력적인 투자처로 보는 또 다른 이유이다.

한국의 윤석열 정부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꺼져가던 부동산 시장의 불꽃을 되살리기 위해 특례보금자리론(2023년), 신생아특례대출(2024년) 등 매년 수십조원의 정책자금을 쏟아부어 부동산 가격을 떠받치는 모습을 온국민이 목격했다.

여기에 과거 진보 정권의 부동산 정책 실패로 집값이 급등한 경험까지 더해져 여전히 구매 수요는 꺾이지 않고 있다. 그 결과 올해 이재명 정부들어 시행한 각종 초강력 규제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부동산 가격은 여전히 우상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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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헝다' 사태로 대표되는 중국 부동산 시장의 침체는 중국 당국이 지난 2020년부터 부동산개발업체 구조조정에 들어가며 본격화됐고, 그 결과 중국 경제수도인 상하이의 집값이 최대 40% 가까이 폭락하는 등 집값 폭락이 여전히 진행중이다.

중국 부동산 시장의 장기침체로 대체 투자처를 찾고 있던 중국인 입장에서는 자국 통화 대비 원화 가치가 폭락하며 한결 싸진데다 '불패'를 자랑하는 한국의 부동산에 투자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셈이다. 여기다 한국인에게 적용되는 각종 대출 규제가 외국인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던건 '덤'이다.
 
그렇다면 왜 세계 10위권의 경제국인 한국의 원화 가치가 소위 '똥값'이 되었을까? 가장 큰 원인으로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을 꼽을 수 있겠다.

코로나19 사태 말기 미국이 금리를 급격히 올리기 시작했다. 한국은행 역시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했지만 미국에 훨씬 못미쳤고 결국 2022년 7월 한미간 금리역전이 시작된 이후 2%P까지 금리차가 벌어지는 초유의 상황이 벌여졌다.

현재 한미 간 금리차는 여전히 1.5%P에 달하는 등 무려 42개월째 한미간 금리역전이 이어지고 있으며 이는 역대 최장기이다. 그결과 원.달러 환율은 1500원대를 바라보며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 당시를 능가할만큼 외환시장이 불안한 상황이다.

물론, 최근 원화 가치 폭락에는 일본 정부의 대규모 부양책 예고로 원화와 동조화된 엔화 가치의 하락, 트럼프 행정부와의 무역협상에 따른 대미 투자 확대 전망, 국민연금과 서학개미의 해외투자 증가 등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보다 기축통화국인 미국 보다 금리가 한참 더 낮은 상황이 수년간 지속된데다 앞으로 당분간은 이런 추세가 계속될 것이 뻔한 상황에서 원화 가치가 지속적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기대 심리가 커지며 원화 약세가 이어지는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이다.

동시에 최근 몇년간 기준금리를 미국보다 더 늦게 올리고, 더 빨리 내리며 결과적으로 부동산 시장으로 향하는 유동성 공급을 막지 못한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은 수십조원을 부동산 시장에 푼 윤석열 정부의 정책과 맞물리며 식어가던 부동산 시장을 다시 뜨겁게 달구는데 일조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이창용 한은총재는 한미 금리역전이 시작될 당시 "역전 자체가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자본·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봐야한다고 했는데, 몇년이 지나 금융위기급으로 원화 가치가 하락한 현 상황을 그는 소위 서학개미 탓으로 돌렸다.

이 총재는 지난달 27일 기준금리 결정 직후 환율 급등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면서 "지금 (원달러 환율이) 1500원을 넘는다면 이는 한미 금리차나 외국인 때문이 아니고 단지 내국인들의 해외 주식 투자가 많기 때문"이라고 말해 매를 벌었다.

자신이 이끄는 한국은행의 장기간에 걸친 통화정책 실패가 원화 가치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보다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비판은 애써 외면한채, 서학개미 탓을 한 이 총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사람이 얼마나 될까?

비판여론이 확산되며 자녀 해외 유학비로 20억원이 넘는 돈을 썼던 그의 이력도 소환됐다. 환율 급등을 서학개미 탓으로 돌린 이 총재는 인사청문회 당시 이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해명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27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학개미의 급증은 장기간 횡보세를 이어간 국내 주식시장에 대한 실망 때문이기도 하다. 그들이 우상향을 거듭해온 미국 증시에 돈을 투자하는 건 한국 부동산에 투자하는 중국인들 만큼이나 합리적인 선택이다.

심지어 이 총재가 쓴 20억원이 넘는 자녀 유학비는 해외 교육기관의 배만 채웠을 테지만, 서학개미는 해외 주식 양도 이익의 22%를 꼬박꼬박 세금으로 내며 국가 재정에 보탬이 된다.

물론 국장 투자면 더 좋겠지만, 해외투자 역시 부동산에만 쏠려 있는 가계자금을 분산한다는 측면에서 오히려 긍정적인 현상 아닌가? 또, 한국 보다 먼저 장기 저성장을 경험하고 있는 일본의 경상수지 흑자 배경이 바로 과거 해외투자로 인한 막대한 배당·이자 수익 덕분이라는걸 이 총재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나마 이 총재는 재임기간 한국의 부동산 가격 상승에 대해 경고음을 내며 '입시제도 개편' 등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다만, 말만 앞섰을 뿐 그가 주도한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은 결과적으로 부동산 시장을 떠받치는 역할을 했다는 비판여론도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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