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전주 중화산동의 한 교회 사무실. 30년 목회를 마무리하는 홍동필 목사(전주새중앙교회)는 "지나온 길을 보면 분명합니다. 교회는 제가 이끈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고 하나님이 지켜오셨습니다. "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의 손은 여전히 성경을 움켜쥐고 있었고, 눈빛은 1994년 11월 28일 그날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1994년 11월 28일. 홍 목사가 처음 부임한 화산중앙교회(현 전주새중앙교회)의 풍경은 참담했다. 십자가는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었고, 양철지붕 사이로 빗물이 새어 들어왔다. 교회 옆에는 무덤이 있었다. 여름이면 벌레들이 강단으로 기어올라왔다. 설교 중 날아드는 벌레를 앞 좌석 성도에게 튕겨 보낼까 봐, 그는 손으로 끌어당겨 조심스럽게 털어냈다.
부산의 대형교회인 호산나교회에서 부목사를 보낸 그에게, 이곳은 충격이었다. "안 간다"고 했던 그를 부산에서 전주까지 찾아온 교인들이 설득했다. 당시 호산나교회 담임인 최홍준 목사가 "가라"고 했을 때, 그는 속으로 이미 후회하고 있었다.
부임 초기, 홍동필 목사와 성도들은 만장일치로 교회 이전을 결정했다. 길도 없고, 무덤 옆이고, 부흥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109평 땅에 51평 조립식 건물. 교회 이름은 '전주새중앙교회', 처음엔 "이 넓은 공간을 언제 다 채우나" 싶었지만, 8년 만에 184명이 모였다. 184명이 50평 공간에 앉으려니 너무 좁았다.
그러던 중 2002년, 중화산동 땅을 발견했고 만장일치로 계약이 결정됐다. 문제는 돈이었다. 교회 재정은 13만 원. 내일 계약하려면 1억이 필요했다.
그날 밤, 전화가 왔다. 암 투병 중이던 남편을 전도해 교회에 등록한 지 얼마 안 된 초신자였다. "목사님, 계약금 없죠? 은행에서 대출해주면 갚을 수 있죠?" "갚죠." 다음 날 오전 10시, 장로들이 은행에 갔다. 1억 원 대출이 실행됐고 계약이 성사됐다.
그리고 건축이 시작됐다. 한 미혼 여성 집사가 결혼 자금으로 모아둔 천만 원 적금을 깨서 헌금했다. "시집이 늦을 것 같아요. 그냥 헌금할게요." 홍 목사는 눈물을 삼키며 자신의 목돈도 모두 털어냈다. 그러자 성도들이 하나둘 동참하기 시작했다.
구 예배당을 매각해 확보한 6억 원, 은행 대출 12억. 부족한 2억 5천만 원은 안수집사와 장로 5명이 각각 5천만 원씩 담보대출을 받아 메웠다. 한국 기독교 140년 역사에서 유례없는 재정 13만 원으로 시작한 20억 건축.
건축 중 위기가 찾아왔다. 서신동 교회를 매각할 때였는데 폭설로 건축이 3개월 지연됐다. 그러자 서신동 교회 매수자는 한 달에 천만 원씩 임대료를 요구했다. 장로들은 반대했다.
홍 목사는 당시 서리집사였던 박시용(현 장로)을 불렀다. 도장을 건네며 한마디만 했다. "계약해라. 소탐대실 하지 마라." 3개월간 3천만 원을 임대료로 지불했다.
홍 목사의 목소리에 20년 전 긴박함이 되살아났다. "그때 안 했으면 교회는 부도 났을 겁니다. 장로들 등살에 그렇게 할 서리집사가 어디 있겠어요. 그게 우리 교회를 살린 겁니다."
또 다른 기억이 있다. 한 집사의 장남이 교회 봉고차 전복 사고로 얼굴과 목이 심하게 찢어졌다. 예수병원 병실. 홍 목사는 그날 처음으로 졸도할 뻔했다. "목회 끝났구나" 싶었다.
그런데 그 집사는 토를 달지 않았다. 조건도 걸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교회를 떠나지 않았다. "그분 생각하면 지금도 목이 멥니다. 성형수술비를 늦게나마 드렸는데, 섭섭하다는 말이 없었어요."
일본 불교 한 종파의 전주 우두머리였던 한 성도도 있다. 예수를 믿고 완전히 바뀐 그는 지금도 "홍 목사님 잘 만났다"고 말하며 권사로 임직을 받고 예수병원에서 자원봉사를 한다.
홍 목사의 목회 인생을 이끌어 온 성경 구절이 있다. 22살 전도사 시절, 어느 날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너 정말 천국 갈 수 있냐?" 평소라면 "갈 수 있지"로 끝났을 질문이, 그날은 달랐다. "정말이냐?" 1년간 혼돈이 왔다. 68kg이던 몸무게는 56kg로 줄었다.
어느 날, 방에 있는데 요한복음 15장 16절이 들어왔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눈이 떠졌다. 모든 게 풀렸다. 요한1서 4장 10-11절도 떠올랐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관악산을 보며 그는 고함을 질렀다. "내가 구원받았다! 영생 얻었다!" 인생의 큰 반전이었다. "그게 나로 하여금 목회하게 한 겁니다."
30년 전주새중앙교회 목회를 돌아보며, 홍 목사는 말했다. "내가 참 부족한데, 나는 진짜 조금 일했는데 하나님은 산더미처럼 많이 주셨어요." 그의 목소리는 떨렸다. "나는 시늉만 냈는데, 하나님이 정말 엄청난 역사를 이루신 거죠. 우리는 거의 불가능했어요."
아쉬움도 있다. "10대부터 50대까지 산 걸로 나머지를 사는 것 같아요. 조금 더 열심히, 더 잘 살고, 성경을 더 잘 알았으면 우리 교인들이 더 살찌지 않았을까요? 그게 좀 죄송하고 아쉬워요."
2025년 12월 은퇴를 앞둔 홍 목사는 "너무 기쁘다"고 했다. "후임이 있다는 게 너무 좋아요. 올해 많이 아팠거든요. 내가 또 아파버리면 안 되잖아요. 근데 후임이 생기니까 춤을 추듯이 기뻤어요. 이제 아파도 되고, 쓰러져도 되고, 죽어도 되겠다 싶었죠."
은퇴 후 계획을 묻자, 그는 단순하게 답했다. "조용히 경건하게 살 겁니다.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예배하고, 기도하고, 성경 읽고, 경건의 시간 갖고. 그렇게 하나님 만날 준비를 하려고요."
마지막으로 그는 전북 교계와 성도들에게 말했다. "이 세상의 소망은 교회입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입니다. 빛 없으면 살 수 없고, 소금 없으면 음식을 먹을 수 없듯, 교회가 없으면 안 됩니다."
30년을 지켜온 전주새중앙교회 십자가 아래서, 한 목회자의 증언은 계속됐다. 그것은 한 사람의 회고가 아니라, 하나님이 어떻게 한 교회를 세우셨는지에 대한 생생한 기록이었다.
무덤 옆 작은 교회에서 시작된 믿음의 여정 그 1막이 이제 내려진다. 하지만 그가 뿌린 씨앗들은 여전히 자라고 있다. 제자훈련과 전도폭발로 길러진 성도들이, 그가 떠난 자리를 든든히 지켜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