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군인들이"…선관위 침탈 그날의 재구성

[12·3내란 1년]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달 1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내란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증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무슨 범죄수사 개념이 아니라 선관위 전산시스템에 어떤 것이 있고 어떻게 가동되고 있나 스크린하라고…"(지난 2월 5일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 5차 변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법적 검토를 하고, 일단 출동하자고 한 것 아니냐"(지난달 10일 서울중앙지법 내란 우두머리 혐의 공판)

지난 1년 윤석열 전 대통령의 인식은 한결 같았다. 12·3 불법 계엄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에 계엄군을 투입한 건 '단순 점검' 차원이었다는 주장. 그리고 계엄이 신속하게 해제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결과론적인 변명. 분노를 넘어 허탈감마저 부르는 속 빈 메아리이지만, 경고성 계엄이라는 반복된 논리는 지금도 여전하다.

과연 그럴까. 윤 전 대통령의 말대로 선관위에 들이닥친 계엄군의 임무는 '단순 점검'에 불과했을까. 계엄이 신속하게 해제됐으니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걸까. 그렇다면 사전에 야구방망이와 케이블타이를 준비하고, 허리춤에는 권총까지 찬 계엄군의 풍경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단순 점검이었다는 되풀이 주장. 심지어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출동했을 뿐이라는 당당한 진술. 1년 전 그날 밤, 군사작전을 방불케 한 급박했던 장면들을 되짚어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아무 일도 없었다더니…계엄군·경찰 500여명 선관위 통제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직후 선관위에 배치된 계엄군. 선관위 제공

12·3 불법 계엄 당시 선관위를 둘러싼 계엄군과 경찰의 일사불란한 움직임은 '단순 점검'이었다는 윤 전 대통령의 주장을 무색하게 만든다. 오히려 선관위 침탈 과정은 '부정선거 수사'를 명분으로 한 '헌법기관 장악 시도'였다는 점이 분명해진다.

선관위 폐쇄회로(CC)TV 분석 자료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선관위 군 투입 사이 간격은 10분도 채 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3일 밤 10시 24분 비상계엄이 선포된 직후 불과 9분 만에 정보사 소속 계엄군 10여명이 선관위 과천청사로 투입된 것이다.

이어 밤 11시에 계엄사령관 명의의 비상계엄 포고문이 발령됐는데, 그로부터 25분 만에 경찰 4명이 선관위에 도착해 정문 장악까지 마쳤다. 조금 뒤인 밤 11시 58분에는 경찰 90여명이 추가로 현장에 배치됐다.

자정을 넘겨서는 계엄군이 본격적으로 움직였다. 12월 4일 오전 0시 34분부터 청사로 투입된 계엄군만 110여명. 국회가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가결했지만, 오전 1시 32분까지 30분 넘도록 병력은 멈추지 않고 선관위 청사로 들이닥쳤다.

투입 규모를 보면 윤 전 대통령의 주장과 간극은 더 뚜렷해진다. 선관위 과천청사에는 계엄군 120명, 경찰 94명이 들어갔다. 선관위 관악청사에는 계엄군 50명이, 수원 선거연수원에는 군 130명과 경찰 100명이 각각 투입됐다.

세 곳을 합치면 군인만 300명 안팎. 경찰까지 포함하면 500명에 육박하는 인원이 선관위 관련 시설에 전개(展開)된 셈이다. 요원 몇명을 보내 "어떤 시스템이 있는지 보라"고 지시한 선에서 그쳤다는 윤 전 대통령의 해명이 납득되지 않는 이유다.

석연치 않은 정황도 적잖다. 선관위 연수원은 숙박동임에도 200명 넘는 계엄군과 경찰이 맞은편 국립농업박물관 주차장에서 약 1시간 동안 대기했던 사실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 직후 경기 수원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연수원에 투입된 계엄군과 경찰들은 맞은편 국립농업박물관 주차장에서 1시간 가까이 대기했다. 응급차도 함께 대기했다. 국립농업박물관 제공

새벽 2시쯤에는 응급차도 현장에 도착했다. 정치인 체포·구금 시도와 유혈 사태 대비 아니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관련기사 : [단독]'정치인 구금 의심처' 선관위 연수원 CCTV 확보…응급차도 대기

이렇듯 비상계엄 선포 10분도 안 돼 정보사 요원들이 청사로 직행했고,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 결의 후에도 군·경이 선관위를 점거한 양상. 여기에 투입 규모와 배치 장소를 놓고 보면 결코 '경고성 계엄'의 증거는 쉽게 찾기 힘들다.

"서버실 장악 완료"…계엄군, 휴대전화 압수·행동 감시

CCTV에 기록된 계엄군의 선관위 시스템서버 촬영 모습. 연합뉴스

이 뿐만이 아니다. 계엄군이 선관위에 들어가 무엇을 했는지 들여다보면, '단순 점검'과 전혀 다른 광경들이 속속 드러난다.

12·3 불법 계엄 당시 선관위 과천청사 통합관제실에서 야간 당직을 서던 보안 용역업체 직원 이모씨는 계엄군이 들이닥친 순간을 이렇게 회상했다.

"계엄군 5~6명이 '여기가 서버실이냐'며 '계엄령이 선포됐으니 서버실로 안내하라'고 말했다. 허리에는 권총을 소지하고 있었다. 총기를 소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위협적이었다. 서버실 문을 열어주자 소령 한분이 무전기로 '장악 완료'라고 보고했다. 그후 중령 한분이 제 핸드폰을 가져갔다".

선관위에 따르면 계엄군은 야간 당직자 등 5명의 휴대전화를 압수해 외부 연락을 차단했다. 또 청사 출입을 통제하면서 당직자들의 행동을 감시했다. 청사 내 유선전화나 컴퓨터 사용도 통제했다. 화장실이나 흡연장을 갈 때도 군인들이 동행했다.

이씨는 상부에 상황을 보고하려고 하자 계엄군이 제지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메신저로 보고하려는 순간 핸드폰을 압수당했다"며 "계엄군에게 돌려달라고 했지만 '불필요한 질문은 하지 않는다'면서 거절했다"고 말했다.

당시 함께 당직 근무를 서던 용역업체 직원 박모씨도 법정에서 "통제가 계속되는 상태였다. 좀 놀랐다"고 밝혔다.

체포조는 야구방망이·케이블타이까지 준비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 제공

계엄군의 작전이 사실상 침탈이었던 정황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과 현역 정보사 간부들이 계엄 이전부터 준비한 '체포조' 계획에서도 드러난다.

관련기사 : [단독]정보사 선관위 체포조, 야구방망이·망치 준비…"노상원 지시"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 수사 결과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정보사 요원들로 구성된 선관위 직원 체포조에 야구방망이·망치·안대·케이블타이·수갑 100개 등 물품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애초에 이런 도구들을 준비했다는 것 자체가 폭력적인 체포와 감금 시나리오를 전제하고 있었다는 방증이다.

이른바 '롯데리아 회동'으로 알려진 사전 모의 역시 같은 그림을 그린다. 지난해 11월 17일 경기도 안산의 한 롯데리아에서 노 전 사령관은 문상호 당시 정보사령관과 정성욱 대령 등에게 "부정선거와 관련된 놈들은 잡아서 족치면 부정선거 했던 거 다 나온다"며 선관위 전산 서버실 진입과 직원 체포·이송 계획을 점검했다.

이어 "야구방망이와 니퍼·케이블타이를 준비하라"는 등 구체적인 주문까지 했다고 한다. 

관련기사 : [단독]'롯데리아 회동' 11월이 처음이었다…노상원 "선관위 족쳐라"

이 과정에서 작성된 A4 용지 10장 분량의 문건에는 선관위 관계자 20여명의 명단과 이들을 버스에 태워 수도방위사령부 등으로 이송하는 계획이 담겨 있었다고 전해진다. 선관위 장악과 직원 체포 계획이 최소 계엄 수주 전부터 치밀하게 준비됐다는 의미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검토하고, 전산을 '단순 점검'하려고 계엄군을 투입했다는 윤 전 대통령의 주장. 허리춤에 권총을 차고 선관위 직원들을 가두고, 야구방망이와 케이블타이까지 사전에 준비한 부분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1년이 지난 지금도 "아무 일도 없지 않았냐"는 그 인식에, 과연 변함이 없는지 물음표가 따라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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