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이번 여행은 함께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배우 이서진이 영면에 든 고(故) 이순재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서진은 28일 방송된 MBC 추모 특집 다큐멘터리 '배우 이순재, 신세 많이 졌습니다'에서 "우리에게 웃음과 감동 위로와 용기를 주셨던 선생님"이라며 "당신이 있어 따뜻하고 행복했습니다. 선생님 그동안 신세 많이 졌습니다. 고맙습니다"고 고인을 기렸다.
이날 방송에서 내레이션을 맡은 그는 드라마 '이산(2007)', 예능 '꽃보다 할배(2013~2018)' 등에서 고인과 깊은 인연을 이어왔으며, 생전 "다시 태어나면 선생님의 아들로 태어나고 싶다"고 말한 만큼 각별한 존경을 드러낸 바 있다.
방송에서는 병상에 누워 있으면서도 "작품을 하고 싶다"며 의지를 놓지 않았던 고인의 모습이 공개됐다. 이에 이서진이 "다시 작품을 하겠다는 선생님의 소원은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전했다.
이어 드라마 '개소리(2024)' 촬영 당시 알려지지 않았던 비화도 전해졌다.
소속사 이승희 대표는 "이건 아시는 분들이 별로 없을 거다. 선생님의 왼쪽 눈이 안 보이셨다. 오른쪽 눈도 100% 다 보이는 게 아니셨다"며 "그런데도 선생님은 그전이랑 똑같이 연기 훈련을 하시고 안 보이니까 더 해야 한다고 하셨다"고 떠올렸다.
이어 "눈이 보이지 않으니 저나 매니저에게 대본을 읽어달라고 부탁했다"며 "읽어주는 걸 외우겠다고 하셨다. 그때 참 가슴 아팠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배우 송옥순도 "눈은 잘 안 보이시지만 부족한 부분은 노력으로 채우셨던 것"이라며 "저한테도 예전에 했던 말씀이 노력과 도전이 없는 배우는 배우가 아니라고 하셨다. 선생님은 하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으셨고 잘 하셨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부터 건강이 악화된 고인은 "촬영하고 올라오니까 (눈이) 안 보여. 병원 갔더니 (왼쪽) 눈이 안 보인다 이거야"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 대표는 "마지막에 KBS 연기대상을 주셔서 선생님 소원을 풀어주신 것 같아 너무 감사드린다"며 "그때 상태가 선생님 건강이 좋지 않아 지는 상태였다. 그 상을 받고 오셔서 '야, 무겁다'며 자랑하신 게 생각난다. 그 한마디에 선생님의 70년의 연기와 세월이 녹아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1934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난 고인은 연극 '지평선 너머(1956)'로 데뷔해 지난 70여 년간 쉼 없이 연기 활동을 이어왔다. 그가 남긴 작품만 해도 드라마 175편, 영화 150편, 연극 100여 편에 달한다.
2000년대에는 MBC 시트콤 '하이킥' 시리즈로 친근한 국민 배우 이미지를 쌓았고, tvN 예능 '꽃보다 할배'를 통해 끊임없이 배우고 공부하는 어른의 표본을 보여줬다.
삶의 마지막까지 도전을 멈추지 않은 고인은 연기 인생 출발점인 연극 무대로 돌아와 '장수상회'(2016), '앙리할아버지와 나'(2017), '세일즈맨의 죽음'(2017), '리어왕'(2021)에서 열연을 펼쳤으며, 지난해에는 역대 최고령으로 KBS 연기대상을 수상했다.
당시 그는 "시청자 여러분께 평생 신세 많이 지고 도움 많이 받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정부는 고인이 별세한 지난 25일 문화적 공헌을 기리며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한편, 이번 다큐멘터리는 올해 초 고인의 허락을 받아 그의 연기 인생을 정리하는 내용으로 준비됐으나, 고인의 병세가 악화하면서 제작이 중단됐다. 이 다큐멘터리는 결국 고인의 영면 후 3일 만에 헌정 의미를 담은 추모 작품으로 시청자들을 찾아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