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는 '전원+송전망 패키지'로 AI 질주…韓 시사점은?

[AI 시대 오는데 전력 깜깜이②]
"AI 육성한다면서…전력 준비는 돼 있나"
전력 수요 폭증…세계는 원전·재생·가스 전원전략을 다시 짜는 중
미·일은 원전 회귀, 독일은 재생·가스 다변화로 대응
단기 대응은 가스…AI 전력 수요, LNG로 버틴다
한국은 아직 '따로 가는' 전원–송전망…전략 공백 우려
전문가 "전원·송전·보상 체계 묶는 통합 로드맵 시급"

구글 미들로디언 데이터센터. 연합뉴스
▶ 글 싣는 순서
①AI·반도체 '전력 폭탄' 곧 떨어지는데…전기길은 꽉 막혔다
②탈석탄 서두르는데 '대체 전원' 비었다…AI 전기폭탄 어쩌나
  • AI 시대, 해외는 '전원+송전망 패키지'로 질주…韓 시사점은?
③AI 시대, 해외는 '전원+송전망 패키지'로 질주…韓 시사점은?
(계속)

최근, 그리고 향후 몇년은 전 세계 전력 수요가 역사상 가장 가파르게 증가하는 시대로 기록될 것이다. AI·데이터센터·반도체 등 첨단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가 2022년 460TWh에서 2030년 최대 947TWh까지 두 배 이상 늘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는 일본의 연간 전력 소비량을 웃도는 규모로, 전력 공급 안정성이 기업 투자와 국가 경쟁력의 핵심 요건으로 부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같은 '초전력화' 흐름 속에서 해외 주요국은 전원 구성과 송전망을 동시에 재편하며 전력 체계 전반을 빠르게 손보고 있다. 반면 한국은 급증하는 수요에 맞춘 전원·송전망 전략이 충분히 갖춰지지 않아 구조적 과제가 드러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AI 시대 다시 원전 만지작 美·日…탈원전 독일은 '재생+ESS', 천연가스 보완

전력 수요가 치솟자 해외 주요국은 중장기적으로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전원부터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원전 정책 재검토다.
 
글로벌 AI 인프라 1위 미국과 클라우드·데이터센터 수요가 빠르게 증가 중인 일본은 향후 전력 소요 증가를 감당하기 위해 중기적 정책 차원에서 원전 가동정책을 재검토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원전 확대 움직임을 주도하고 있다. 지난 달 29일(현지시간) 미 정부는 웨스팅하우스와 약 800억달러 규모의 AP1000 초대형 원전 8기를 신규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약 8.8GW의 설비용량으로, 한국 전체 연간 전력수요의 10%가량을 단일 프로젝트로 충당할 수 있는 규모다. 1979년 사고 이후 멈춰 있던 스리마일섬 원전까지 재가동 절차에 들어가며, 미국의 원전 회귀 기조는 더욱 뚜렷해지는 분위기다.
 
일본도 후쿠시마 사고 이후 사실상 중단됐던 원전 정책을 되돌리고 있다. 2012년 당시 보유한 54기 원전을 모두 멈춰 세우며 '원전 제로' 상태에 들어갔지만, 전력 수요 급증으로 현재는 안전 심사를 통과한 10기 안팎의 원전이 재가동됐다. 최근에는 세계 최대 규모인 니가타현 가시와자키·가리와 원전의 부분 재가동이 본격 논의되며, 일본 내부에서도 '원전 회귀 움직임'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상황이다.
 
일본 가시와자키·가시와 원자력발전소. 연합뉴스

반면, 원전 대신 '안정성을 갖춘 재생에너지 중심' 전략을 유지하는 국가들도 있다. 독일은 탈원전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전력 수급의 불안정성을 보완하기 위해 풍력·태양광에 천연가스를 결합한 다변화 모델을 채택하고 있다. 변동성이 큰 재생에너지를 안정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남는 전력을 저장해 두었다가 공급하는 ESS(에너지저장장치)와 전력 수요를 실시간으로 조절하는 수요반응(DR) 등을 함께 운용해 계통 안정성을 높이고 있다. 또 독일은 AI 산업 전력 사용까지 법제화해, 2024년부터 데이터센터 전력의 50%, 2027년부터 100%를 재생에너지로 조달하도록 의무화했다.
 
장기적으로는 원전·재생이 대안이지만, 현재 급증하는 전력 수요에 즉각 대응하는 전원은 천연가스다. 풍력·태양광과 달리 출력 변동성이 작고 원하는 시점에 전력을 생산할 수 있으며, 비용도 상대적으로 낮아 AI·데이터센터 전력 수요에 적합하다는 이유에서다.
 
대표적으로 미국에서는 메타가 루이지애나주 데이터센터에 연 2.25GW를 공급하는 가스발전소 3기를 짓겠다고 발표했다. 독일·일본도 전력 수요 증가에 대응해 가스 발전 비중을 키우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송전망 없으면 원전·재생도 소용없다"…주요국은 국가가 직접 나섰다

전력을 확보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이를 산업·도시로 전달하는 송·배전망이다. 발전소는 외곽에 있고 수요는 수도권·대도시에 집중된 구조적 괴리 탓에 송전망 갈등은 해외에서도 흔하다. 이에 주요국들은 송전망을 국가가 직접 책임지는 방식으로 정책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다.
 
송전탑. 연합뉴스

미국 에너지부(DOE)에 따르면 미국 송전선의 70%는 최소 25년 전에 설치됐고 대형 변압기 평균 연령은 40년을 넘는 등 노후화가 심각한 상황이다. 이에 미 정부는 20조원 규모의 재정을 투입해 대규모 전력망 재구축 사업을 추진 중이다. 대용량 송전선 설치·노후 설비 개선 등에만 25억달러(약 4조원)가 투입될 계획이다. 연방정부는 "AI·데이터센터 전력 대응은 국가적 의무"라고 선언하며, AEP의 5천 마일(8천km) 송전선 재구축에 16억달러 보증 지원도 결정했다.
 
해외에서 확보한 대규모 투자금도 전력 인프라 강화에 우선 투입되고 있다. 미·일 조인트 팩트시트에는 일본의 5500억 달러 투자 패키지 중 3320억 달러를 대형 원전, SMR, 송전망 등 핵심 인프라에 집중하기로 한 내용이 명시됐다. 때문에 한국이 참여한 대미 투자 패키지에서도 현금 투자 2천억 달러 중 일부가 에너지 인프라 사업에 투입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독일은 송전망 갈등을 줄이기 위한 제도 설계를 가장 체계적으로 갖춘 사례로 꼽힌다. 독일은 연방정부가 송전망 사업을 직접 책임지고, 주민에게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 갈등이 커지기 전 조정 절차를 일찍 여는 제도를 확립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연방수요계획법으로 송전망을 국가 차원의 필수 인프라로 규정하고 중앙정부가 노선을 지정한다. 또 전력망 확충 가속법을 통해 주민들의 초기 의견수렴을 법적으로 의무화하고, 여러 대안노선을 함께 검토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송전망 전용 공개 플랫폼에서 모든 정보는 투명하게 공개되며, 조정관을 둬 갈등을 실시간으로 중재한다. 주민들이 송전망 운영 수익 일부를 배당받는 방안 등도 함께 추진해 주민 보상안도 대폭 확충했다.

"송전망 없으면 원전·재생도 소용없다…'한 세트 전략' 시급"

이처럼 해외 주요국은 전력 수요 폭증에 대응하기 위해 전원 믹스와 계통 안정성, 송전망 확충을 하나의 패키지로 묶어 추진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원전·재생으로 장기 구조를 세우면서도 단기적으로는 천연가스를 활용해 수요를 메우고, 이를 실어 나를 송전망을 국가 인프라 차원에서 정비하는 방식이다.

반면 한국은 전원 구성과 송전망 확충이 연계되지 않은 채 따로 추진되면서 AI·데이터센터 시대에 필요한 안정적 전력 기반을 갖추는 데 전략적 공백이 드러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급증하는 전력 수요를 감당할 단기 공급 대책과 중장기 전략이 모두 불명확해 '에너지 확충 로드맵'의 빈칸이 더 커지고 있다는 평가다.
 
데이터센터. 연합뉴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미국·일본·독일도 장기적으로는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되, 단기적으로는 늘어나는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천연가스를 활용하고 원전도 다시 들여다본다"며 "한국은 당장 천연가스 신규 추진 계획도 없으면서 석탄 폐지 속도만 빠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AI·데이터센터 산업은 24시간 안정적 전력이 필수이기 때문에, 이에 맞는 전력 수급 로드맵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전망에 대해서도 해외와 같이 국가가 더 큰 틀에서 책임지는 구조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홍종 단국대 교수는 "전세계 대부분 국가에서 송전망 건설에 주민 반대 문제가 있지만 뚜렷한 묘안이 없는 이유엔 법안만으로는 갈등이 해소되지 않기 때문"이라며 "독일처럼 정보를 초기부터 투명하게 공개하고, 주민 보상을 확실히 하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도 특별법으로 보상 체계를 개선했지만, 실행 주체가 결국 공기업인 한전이어서 주민 동의를 이끌어낼 만큼의 충분한 보상과 조정 능력을 확보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추천기사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