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북부의 고층 아파트 단지에서 발생한 화재로 인한 사망자가 94명으로 늘어났다. 부상자와 실종자도 3백여명에 달해 사상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홍콩 소방당국은 지난 26일 오후 2시 52분쯤 북부 타이포 구역 주거용 고층 아파트 단지인 '웡 푹 코트(Wang Fuk Court)'에서 발생한 화재로 28일 오전 6시 기준 모두 94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부상자는 소방관 11명을 포함해 76명이다. 이 가운데 12명이 생명이 위독하고 28명은 중상을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소방당국은 실정자 수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전날 오전 실종자가 279명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화재가 발생한 아파트 단지는 8개 동으로 구성됐으며 2천가구, 약 4600여명의 입주민이 거주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화재로 7개동이 불에 탔다.
소방당국은 이날 오전 1시 20분쯤 기자회견을 열고 화재 진압이 대부분 완료됐다고 밝혔다. 이에따라 화재가 발생한 7개동 전체에 대해 수색활동이 진행되고 있으며, 이날 중으로 실종자 수색은 완료될 예정이다.
실종자 수색이 진행될수록 사망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관측된다. 외신들은 이번 화재가 1948년 176명의 사망자를 낸 홍콩 창고 화재 이후 77년 만에 가장 큰 인명피해를 낸 참사로 기록될 것이라고 전하고 있다.
해당 아파트는 지난 1983년 입주를 시작해 주민들이 거주한 지 최소 42년이 된 노후한 공공 아파트 단지로 지난해 7월부터 보수 공사에 들어갔다.
공사를 위해 아파트 외벽에 설치한 대나무 비계와 공사용 안전망, 비닐막, 스티로폼 판 등 가연성 물질에 불이 옮겨붙으며 순식간에 아파트 단지 전체로 화염이 퍼진 것이 인명피해가 컸던 1차 원인으로 지적됐다.
노후 공공 아파트 단지인 만큼 거동이 불편한 노령층이 다수 거주해 화재 발생 뒤 제때 대피하지 못한 것도 피해를 키운 것으로 보인다. 2021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이 아파트 거주민의 37%가 65세 이상 노령층이었다.
여기다 이 아파트는 전형적인 '탄성 십자형 건축물'(Flexi Block)로 가운데 통로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날개 모양으로 세대가 배치된 구조여서 화재 발생 등 비상시에 탈출이 어려운 구조이다.
홍콩 경찰은 전날 과실치사 혐의로 해당 아파트 보수 공사 업체 이사 2명과 엔지니어링 컨설턴트 1명 등 책임자 3명을 체포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또, 홍콩 부패방지위원회(ICAC)는 해당 아파트 보수 공사에 연루된 잠재적 부패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를 실시하기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고 발표했다.
해당 아파트 외에도 화재 위험에 노출된 노후 아파트가 많은 만큼 홍콩 행정수반인 존 리 행정장관은 "홍콩 전역에서 대규모 보수공사 중인 아파트단지를 전수조사해 안전 상태를 점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서민들이 주로 거주하는 공공 아파트단지에서 화재가 발생한 만큼 삶의 터전을 잃고 당장 갈곳이 없는 주민들을 위해 홍콩은 물론 중국 본토에서도 구호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홍콩정부는 각 피해가정에 1만 홍콩달러(약 188만원)의 긴급 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했으며,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의 재단이 6천만 홍콩달러(약 113억원)를, 스포츠웨어 기업 안타그룹이 3천만 홍콩달러(56억원) 상당의 현금과 장비를 기부하기로 했다.
동시에 화재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해 진화작업을 벌이다 순직한 소방관 호와이호우(37)에 대한 추모 열기가 이어지고 있다. 홍콩 소방국 홈페이지에는 "당신의 영웅적인 행동일 잊지 않겠다"는 내용의 추모글이 계속 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