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직해병 특검이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호주대사 임명과 관련해 범인도피 혐의 등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을 기소했다.
해병특검은 수사 외압 의혹에 이어 윤 전 대통령을 두 번째 기소했다. 조태용 전 국가안보실장,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심우정 전 법무부 차관, 장호진 전 외교부 1차관, 이시원 전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도 함께 재판에 넘겨졌다.
尹, 범인도피·직권남용·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 적용…수사 우려돼 대사 임명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해병특검은 전날 윤 전 대통령을 비롯해 전직 대통령실과 법무부 관계자들을 범인도피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윤 전 대통령에 대해선 범인도피·직권남용·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가 적용됐다.범인도피 의혹은 지난해 3월 채상병 순직 수사외압 사건의 핵심 피의자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수사를 받던 이 전 장관이 호주대사로 임명돼 출국한 사건을 말한다.
당시 출국금지 상태였던 이 전 장관은 대사 임명 나흘 만에 출금 조치가 해제됐다. 이후 출국해 대사로 부임하다가 국내 여론이 악화하자 11일 만에 귀국했다.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이 2023년 11월부터 공수처 수사를 받고 있던 이 전 장관을 도피시킬 목적으로 대사직에 내정하고 이를 외교부에 전달해 공관장 자격 심사를 졸속으로 처리하도록 지시했다고 판단했다.
이 전 장관에 대한 수사 외압 사건 수사가 진전될 경우 자신도 수사대상이 되는 것을 우려해 호주대사로 임명하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실제 이 전 장관을 호주대사로 임명하는 절차는 통상의 경우와 굉장히 다른 양상으로 진행됐고 절차를 무력화하거나 무의미하게 만드는 일이 여러 차례 벌어진 것으로 특검 수사 결과 드러났다. 특검은 이 전 장관이 대사로 임명돼 해외로 나가게 될 경우 관련 수사 진행이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보고 있다.
특검에 따르면 공관장자격심사를 주관하는 외교부는 사전에 '적격'으로 결정한 상태에서 형식적으로 공관장자격심사를 진행했다. 인사 검증을 맡은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과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은 허위 기재된 자기 검증 질문서를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고 검증 통과를 결정했다. 아울러 법무부는 이 전 장관에 대해 출국금지 조처한 공수처의 반대에도 출금을 해제해 결과적으로 이 전 장관의 해외 도피를 도왔다.
조태열·이원모 …이재유 전 본부장 기소유예
특검은 범인 도피 의혹과 관련해 여러 차례 수사를 받은 조태열 전 외교부 장관과 이원모 전 대통령실 인사비서관 등은 불기소, 이재유 전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 본부장은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이와 관련해 정민영 특검보는 "관여 정도나 당시 진행되고 있던 상황에 대해 얼마나 구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었는지 등을 고려해 기소 대상자를 선별했다"며 "지시받은 내용을 전달하는데 그치지 않고 적극적인 역할을 했을 경우 기소할 수 있지만 수사팀은 적극적으로 관여했다고 판단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범인도피 의혹과 관련해 실무를 담당했던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거나 직접 지시를 받지 않는 이들까지 기소하는 것은 무리라고 특검은 판단했다.
이 전 장관이 호주로 출국한 이후에도 도피 의혹이 잦아들지 않자 국가안보실은 방산협력 공관장 회의를 급조해 이 전 장관을 불러들였다. 다만 특검은 이례적인 귀국 경위가 있었던 것은 맞지만 범죄로는 판단하지 않았다.
특검팀은 지난 10일 특별법 수사 대상 1호인 채상병 사망 사건과 관련해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등 5명을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기소했다. 21일에는 수사 대상 2호인 '수사외압' 의혹과 관련해 윤 전 대통령과 이 전 장관 등 12명을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26일에는 수사 대상 3호인 공수처 수사외압 의혹과 관련해 오동운 공수처장과 송창진 전 공수처 부장검사 등 5명 재판에 넘겼다. 4호 수사 대상인 이 전 장관 호주대사 임명·출국·귀국·사임 과정의 불법행위 관련 윤 전 대통령 및 대통령실, 외교부, 법무부 등 직무유기 및 직권남용과 이에 관련된 불법행위 관련자들의 처분을 내렸다.
이와 함께 특검팀은 박정훈 대령(전 해병대 수사단장)을 수사·기소한 염보현 군검사와 김민정 전 국방부 검찰단 보통검찰부장도 불구속 기소했다.
염 군검사와 김 전 부장은 2023년 8월 30일 박 대령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서에 허위 내용을 기재한 혐의를 받는다. 당시 김동혁 전 국방부 검찰단장은 박 대령에 대한 체포영장이 두 차례 기각되자 이들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팀은 박 대령이 구속 전 피의자 심문 이후 법원의 기각 결정으로 석방될 때까지 약 6시간을 이들이 권한을 남용해 박 대령을 감금했다고 판단했다.
한편 특검팀은 150일간의 수사 기간이 종료되는 28일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날 수사 결과 종합 발표는 이명현 특검이 직접 브리핑에 나설 것으로 보이며 이전 4차례 중간 브리핑을 통해 공개하지 않은 여타 사건에 대한 처분 결과도 밝힐 계획이다. 특검 수사 대상 사건은 아니지만 수사 과정에서 규명한 내용도 일부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