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반빈곤센터 임기헌 활동가, 공영장례 조례 시행 3년의 명과 암 진단
가족이나 지인 없이 홀로 생을 마감하는, 이른바 '무연고 사망자'가 해마다 늘고 있다. 초고령 사회로 진입한 부산은 그 증가세가 더욱 가파르다. 과거에는 연고가 없는 이들이 사망할 경우 별도의 장례 절차 없이 시신을 바로 화장하는 '무빈소 직장(直葬)'이 관행이었다. 한 인간의 삶이 마무리되는 과정이라기엔 삭막하고 쓸쓸하기 그지없다.
이에 부산시는 가난하거나 연고가 없어도 누구나 존엄하게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공영장례 조례'를 제정했다. 조례 시행 3년 차, 과연 현장에서는 이 제도가 제대로 뿌리내리고 있을까. CBS라디오 <부울경 투데이>에 출연한 부산반빈곤센터 임기헌 활동가는 그간의 성과를 긍정하면서도, 예산 부족과 행정 편의주의적인 운영 실태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장례도 없이 화장, 무책임…누군가는 배웅해야
임기헌 활동가는 공영장례의 핵심 취지를 '존엄성 회복'과 '애도할 시간의 보장'으로 꼽았다. 그는 "과거 무빈소 직장은 사회 구성원의 삶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무책임한 방식이었다"며 "법적인 가족이 없더라도 생전에 관계를 맺었던 사회적 가족과 이웃들이 고인을 애도할 수 있는 시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공영장례의 출발점"이라고 설명했다.부산반빈곤센터는 제도가 시행된 2022년, 현장의 실태를 보고 경악했다. 조례와 예산이 마련되었음에도 일선 지자체와 장례 업체들이 공영장례의 기본개념조차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시민들이 직접 나섰다. 2023년 5월 출범한 '부산시민 공영장례 조문단'은 현재 5기까지 이어지며 무연고 사망자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키고 있다.
임 활동가는 "초기에는 부고 게시판조차 없었지만, 조문단의 활동 덕분에 16개 구·군 홈페이지에 게시판이 생겼고, 장례 업체들의 인식도 많이 개선됐다"라고 자평했다. 특히 뒤늦게 소식을 듣고 장례식장을 찾아온 유가족들에게 공영장례의 의미와 시민의 권리를 설명해 줄 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10월이면 멈추는 공영장례…예산 동결은 직무유기"
그러나 임 활동가는 부산시의 예산 편성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입장이다. 무연고 사망자 수는 2023년 619명, 2024년 674명으로 매년 급증하고 있다. 당연히 관련 예산이 늘어나야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그는 "해마다 10월 말쯤 되면 각 지자체의 공영장례 예산이 바닥을 드러낸다"며 "예산이 소진되면 공영장례는 중단되고, 다시 과거의 '무빈소 직장'으로 돌아가 시신을 처리해버리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더 큰 문제는 내년도 예산안이다. 임 활동가는 "올해 부산시가 시의회에 제출한 사업비를 확인해 보니 작년과 동일한 4억 2천만 원으로 동결됐다"며 "사망자 증가가 뻔히 예상됨에도 예산을 동결한 것은 공영장례를 확산시키려는 의지가 없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전국에서 장사 업무를 잘한다고 상까지 받은 부산시가 정작 가장 중요한 예산 문제에는 소홀하다"라며 조속한 시정을 촉구했다.
"6시간짜리 장례식이 말이 되나…'시늉'만 하는 행정"
장례의 '질'에 대한 문제 제기도 이어졌다. 현재 부산시 공영장례의 빈소 운영 시간은 고작 '6시간'에 불과하다. 임 활동가는 "처음엔 4시간이었다가 항의 끝에 겨우 2시간 늘린 것"이라며 "6시간 동안 무슨 애도를 하라는 것이냐. 이는 장례를 치러주는 척하면서 사실상 차별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현실을 들여다보면 더욱 안타깝다. 오전 8시에 빈소를 차리면 오후 2시에는 상을 치워버린다(철상). 다음 날 아침 발인임에도 불구하고 오후에는 빈소가 텅 비게 되는 것이다. 임 활동가는 "직장인이나 시민들이 조문을 오고 싶어도 퇴근 후에는 빈소가 사라져 갈 수가 없다"며 "24시간 빈소 운영 보장은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강조했다.
정보 접근성 확대 또한 과제로 꼽았다. 시민들이 공영장례에 참여하려면 16개 구·군 홈페이지를 일일이 뒤져야 한다. 이에 부산반빈곤센터는 자체적으로 실시간 부고 알림 시스템을 개발해 운영 중이다. 임 활동가는 "민간에서도 큰돈 들이지 않고 시스템을 만들었는데, 부산시는 재난 문자 시스템처럼 원하는 시민들에게 부고를 알릴 수 있는 행정 서비스를 왜 도입하지 않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자선의 대상'에서 '당연한 권리'로…죽음에 대한 인식과 문화 바꿔야
임 활동가는 인터뷰 말미에 공영장례가 단순한 '자선의 차원'을 넘어 '권리'로 나아가야 함을 강조했다. 그는 "처음에는 자선이나 봉사의 마음으로 참여했던 시민들도 활동을 거듭하며 '존엄한 죽음은 인간의 기본권'이라는 인식을 갖게 된다"며 "이것이 '자선형 봉사'에서 '권리형 실천'으로 변화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최근에는 이러한 인식을 확산하기 위해 영화 제작 등 문화 운동으로도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다. 조문단 시민들이 직접 참여해 만든 단편영화 3편(<그 늦은 밤에>, <만남>, <시간이 없다>)이 오는 12월 4일 부산 민주공원 소극장에서 개봉을 앞두고 있다.
그의 말처럼, 공영장례는 단순히 무연고자의 시신을 처리하는 행정 절차가 아니다. 우리 모두가 언젠가 맞이할 죽음 앞에서, 최후의 존엄을 보장하기 위한 사회적 약속이다. 예산 부족을 핑계로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누구나 맞이할 마지막 순간이 외롭지 않도록, 부산시가 이제는 '무늬만 공영'이 아닌 실질적인 예산과 제도로 응답해야 할 때다.
섭외, 구성 : 설유정 PD
녹취, 정리 : 김강민 PD
영상편집 : 국재일 아나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