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천문연구원 우주위험감시센터장을 맡고 있는 우주과학자 최은정이 신간 '모두를 위한 우주는 없다'를 통해 '뉴 스페이스 시대'의 화려한 겉면 뒤에 가려진 우주 불평등과 패권 경쟁의 실체를 짚는다.
저자는 "21세기는 우주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말이 더 이상 과장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스페이스X, 버진 갤럭틱 등 민간기업과 미국·중국·러시아 등 우주 선진국이 궤도와 주파수, 자원과 군사 인프라를 선점하는 사이, 기술과 자본이 부족한 후발국은 구조적으로 종속되는 현실을 '우주 불평등'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낸다.
책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드러난 위성 해킹과 통신망 마비 사례, 미국의 '골든돔' 구상과 중국의 대응 시스템처럼 이미 진행 중인 우주 군비 경쟁을 짚으며 "우주전은 스타워즈식 레이저 전쟁이 아니라, 위성과 데이터·인프라를 둘러싼 보이지 않는 공격에서 시작된다"고 경고한다.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의 주파수·궤도 등록 체계, 자국 발사체와 GPS를 가진 소수 국가에 대한 기술 의존, 민군 겸용(dual-use) 기술이 만든 법·제도 공백 등도 핵심 쟁점으로 다뤄진다. '우주를 인류 공동유산으로 한다'는 조약 이상과 달리, 실제 궤도와 위성의 90% 이상이 소수 강대국에 집중된 현실을 수치와 사례로 보여준다.
누리호 발사, 북한 만리경 발사 당시 한국천문연의 우주위험 감시 현장, 유엔 '외기권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위원회'와 국제 우주상황조치 연합연습 등에 참여해온 저자의 경험도 강점이다. 책은 지구·달·화성으로 이어지는 '우주 다중 거점' 시대를 전제하면서도 "속도보다 방향을, 소유보다 상호운용을, 독점보다 신뢰를 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은정은 전작 '우주 쓰레기가 온다'에서 '우주 물체 추락' 문제를 알린 데 이어, 이번 책에서는 우주를 "약탈의 신대륙이 아닌 공존의 인프라"로 만들기 위한 조건을 묻는다. 저자는 "우주는 더 이상 먼 미래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열리고 있는 공간"이라며, 우주를 향한 한국 사회의 상상력과 정책·기술 전략이 근본적으로 재설계되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최은정 지음 | 갈매나무 | 31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