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챈 독자들도 있겠지만 열거한 세대들 사이에 공백이 있다. 386세대와 MZ세대 사이, 1970년대생이다. 이들은 20대부터 쩡쩡한 스피커를 통해 세상을 호령하던 386세대와도 다르고, 역시 20대에 세상의 주목을 받던 MZ세대들과도 차이가 있다. 한때 X세대로 불렸지만 별다른 존재감이 없던 이들이 언젠가 호명될까 기다려온 지 오래다. 2015년 트렌드 분석가 김용섭은 젊게 살고자 하는 40대를 '영포티'로 별칭했지만,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다. 그러다 최근 들어 별안간 이들이 크게 회자되기 시작했다. '젊은 꼰대, 영포티'로서 그리고 장안의 화제인 드라마 속 주인공 '김낙수'의 이미지로서 말이다.
처음 창안 때의 의미는 퇴색한 채 현재 떠오르는 '영포티'의 캐릭터는 과도한 소비로 젊은 척하려는 40~50대다. 젊은 감각을 상실했으나 자기객관화에 실패한 줄도 모르는 중년의 모습이다. JTBC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속 주인공 김낙수 부장은 1972년생이다. 대기업 부장으로 서울에 번듯한 아파트에 살면서 자식 교육에도 충실했지만 이제는 그의 자랑거리들이 저물고 있다. 현실에 뒤처진 능력을 자존심으로 감춰보려 하지만 이미 부하 직원과 주변인들은 그의 헛똑똑이 기질을 놀림의 대상으로 삼는다. 사회 현상에 버금 갈 정도로 드라마의 인기가 높은 건 곳곳에서 김낙수의 이미지를 찾아볼 수 있다는 뜻이다. 존재감 없던 70년대생은 그저 조롱과 연민의 대상으로, 뒤늦게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됐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이들이 갖는 세대적 특징은 깊고 넓다. 70년대생은 우선 민주주의를 처음으로 향유해본 세대다. 민주주의를 쟁취의 대상으로 삼았던 386세대와 다르다. 확보된 정치적 자유의 토양에서는 다양한 문화의 싹이 자라났다. 특히 70년대생들이 문화의 창작과 소비 주체로 등장한 90년대엔, 우리의 정서가 담긴 영화와 가요가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지금 전세계를 석권하는 K컬처의 원류다. 또한 그 무렵 인터넷이 대중화하면서 전에 없던 문화 아이템들이 생겨났는데 당시 PC통신, PC게임, 싸이월드 등은 현재 인터넷 커뮤니티나 e스포츠, SNS의 초기 모델(Prototype)에 다름없다.
70년대생들을 코호트(cohort; 사회문화적 경험을 깊이 공유한 집단)에 가깝게 만든 건 긍정적 요인만은 아니다. 1994년 성수대교가 무너져 내리면서 동년배 학생들의 황망한 죽음을 목도해야 했고, 그 이듬해엔 5백여 명의 생명을 앗아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를 속수무책 지켜보았다. '사회적 참사'라는 개념도 없던 시절, 이전 세대가 남긴 사회 시스템의 허술함에 몸서리쳤던 70년대생들이다. 결국 1997년 말이 되어서는 IMF 외환위기가 터졌고, 이들은 사회에 발을 들이기도 전에 국가도 사회도 조직도 개인을 지켜줄 수 없다는 교훈을 얻어야 했다.
말하자면 이들은 공적 책임 및 개인 자유의 중요성과 가치를 동시에 품고 있다. 아울러 선배 세대로부터 물려받은 아날로그 조직 문화와 후배 세대로부터 접한 디지털 소통 문화를 함께 섭렵해 왔다. 모두가 '낀 세대'라 말들 하지만, 세대간 다른 특질을 이 정도로 융합하여 품고 있는 세대도 드물다. 하기에 따라서는 70년대생들이 서로 다른 세대와 가치를 이어주는 가교가 될 수 있고, 극단의 세계관에 놓인 우리 사회가 한쪽으로 쏠리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주는 무게추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70년대생에게 붙었던 별칭 X세대는 캐나다 작가 더글러스 커플랜드의 소설 'X세대'에서 따왔다. '정체성이 불분명하다,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의미가 녹아 있다. 실체 없는 성급한 작명인 이유는 위에서 짚은 70년대생들의 특징을 보면 안다. 이도 저도 아니라는 X가 아니라, 서로 다른 가치가 마주치는 ┼(cross)가 이들과 더 어울린다. 이에, 70년대생은 X세대가 아니라 '크로스 제너레이션'이다. 스스로가 이를 인식하고 가교와 무게추 역할에 충실할 때, 크로스 제너레이션은 조롱과 연민의 대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 크로스 제너레이션이 올바로 자리매김한다면 다양한 가치의 조화로운 병존 가능성도 높일 수 있다. 어느덧 중년의 위기에 접어들어 곳곳에서 숨죽인 '김낙수'들의 도전은 이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