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에도 포기 못하는 석화산업…여수산단 딜레마 심화

전남 여수국가산업단지 여천NCC 3공장 일대. 유대용 기자

정부의 석유화학산업 재편 구조에 발맞춰 일선 기업들이 연말까지 자구책을 내놓아야 하지만 어려움은 여전한 모습이다.
 
일부에서는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산업 재편 논의가 첫 결실을 앞두고 있지만 국내 최대 석유화학산단인 여수국가산업단지의 딜레마는 날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25일 국가데이터처의 산업별 무역액 자료에 따르면 석유화학산업의 지난해 수출액은 480억 달러 가량으로 반도체·자동차·일반기계에 이어 네 번째다.
 
후방 산업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할 때 석유화학산업이 포기할 수 없는 소재산업임을 분명히 하는 수치다.
 
하지만 중국 등 해외의 대규모 에틸렌 공급확대와 국내 과잉생산으로 수년째 적자와 구조적 불황이 지속되고 있으며 국내 기업들은 감산과 생산설비 감축이라는 숙제에 직면했다.
 
'선 자구 노력 후 정부 지원' 기조에 맞춰 여수산단에서는 여천NCC, 롯데케미칼, LG화학, GS칼텍스 등 4곳이 연말까지 정부에 경쟁력 강화와 나프타 분해시설(NCC) 감축을 포함한 사업 재편 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국내 3대 석유화학산단 중 가장 큰 규모의 여수산단은 전체 NCC 감축물량 370만t(국내 전체 생산능력의 18~25%) 중 100만t 이상을 줄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공급과잉과 구조적 불황은 물론 이를 타개하기 위한 감산 자체가 쉽지 않는 점이다.
 
특히 감산 주체와 규모를 둘러싼 이견이 커 기업 간 합의가 좀처럼 쉽지 않은 모양새다.
 
여수산단에 있는 여천NCC의 경우 지난 8월 부도위기에 휘말린 이후 올해 3공장 가동을 일시 중단하는 초강수를 내놓은 데 이어 이번 산업 재편 과정에서 해당 공장을 폐쇄하는 방안까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존폐가 걸린 상황이지만 여천NCC 지분을 절반씩 갖고 있는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 간 미묘한 온도차가 감지되면서 의사 결정이 늦어지고 있다.
 
특수고무 등 스페셜티 제품 비중이 높은 DL케미칼과 달리 한화솔루션은 범용제품 생산 비중이 높아 여천NCC에 수직계열화된 에틸렌 공급망이 상대적으로 더 아쉬울 수밖에 없다.
 
이같이 양 기업 간 다른 에틸렌 공정 기술력과 사용용도를 포함해 그룹사 차원의 판단이 갈리면서 의사 결정이 늦어지는 것으로 분석된다.
 
기업을 비롯, 정부 입장에서도 장치산업인 석유화학산업 자체를 아예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20년 이상 사용할 목적으로 투자한 거대 설비를 함부로 포기할 수 없는데다 요소 산업 포기에서 비롯된 2021년 요소수 사태를 생각할 때 중국의 값싼 석유화학제품에 대한 기대는 자칫 국가 전체의 위험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과거와 같은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은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전남연구원 오병기 경제산업연구실장은 "1997년 IMF 사태와 같이 국가가 전체적으로 위기 국면에 있을 때는 정부가 기업 간 인수합병이나 구조조정에 개입했던 사례가 있지만 상황이 다른 만큼 지금은 섣불리 나서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며 "구조조정 이후에는 고용불안 등과 관련한 정부의 핀셋 지원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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