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개관을 앞둔 군산선교역사관을 들어서니, 새롭게 단장한 전시실을 가득 메운 낡은 사진들과 문서·유물들이 한눈에 시선을 사로잡는다. 전킨기념사업회 추진위원장인 서종표 목사는 20년 전 군산중동교회에 부임한 후, 어느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군산 선교 역사의 발굴자가 되었다.
"나는 군산 사람도 아니고…" 서 목사의 첫 마디는 겸손했지만, 그의 눈빛은 확신에 차 있었다. 그가 발견한 것은 일반적인 지역사가 아니었다. 호남 최초로 복음이 전해진 땅, 교회와 학교와 병원이 동시에 세워진 곳이 바로 군산이었던 것이다.
혼자서 세 차례 미국을 오가며 선교사 후손들을 찾아다닌 그의 여정은 외로웠다. 장로교도 아닌 성결교 목사가 남장로교 선교사들의 역사를 파헤치는 일에 처음엔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선교사님들의 정신은 희생하라, 포기하라, 그 땅에 묻혀라." 서 목사의 말에는 130년 전 이 땅을 밟았던 이들에 대한 깊은 존경이 배어 있었다. 전킨 선교사는 27세에 조선에 와서 43세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아들 셋도 이 땅에 묻혔다.
역사관 건립 과정에서 만난 기적 같은 이야기도 있었다. 30여 년 전부터 조성된 군산기독센터에서 1억 원이 출연된 것이다. 이 외에도 수많은 이들이 마음을 모으며 역사관 건립 기반이 다져졌다. 전체 총 사업비 62억 가운데 자부담 12억을 마련하는 과정은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그러나 어려움 속에서도 교회와 성도, 지역사회의 연대가 모아지면서 결국 역사관 건립은 결실을 보게 됐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드류 선교사의 유해 이야기였다. 호남 최초의 의료 선교사였던 그는 과로로 1901년 미국으로 넘어가 치료받다 1926년 세상을 떠나면서 "화장해서 먼지가 되어서라도 다시 군산에 가야겠다"는 유언을 남겼다. 올해 97세 손녀 엘리자벳을 찾아낸 서 목사는 마침내 그 유언을 실현할 길을 열었다.
"250년 된 싱킹스프링교회에서는 130년 전 당회록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더라." 미국에서 목격한 역사 의식에 대한 그의 탄식은 깊었다. 우리가 휴지처럼 버려버린 것들이 모두 귀중한 역사 자료였다는 깨달음이었다.
12월 2일 개관을 앞둔 군산선교역사관에는 고종황제 하사품, 드류 선교사의 의료기구, 최초로 들어온 램블러 자전거의 복원품, 130년 전 찬송가 '금주가' 등 희귀한 유물들이 전시된다. 수장고에 들어가지 못한 유물들이 더 많을 정도다.
"전국 1200만 기독교인이 한 번쯤은 다 여기를 다녀가서 감동 받기를 바란다." 서 목사의 바람은 소박하면서도 웅대했다. 감동 시대가 아닌 기절하는 시대에, 이곳에서 선교사들의 희생 정신을 보고 느끼고 체험하며 결단할 수 있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그는 선교사 후손들을 만나고 현지를 찾아다니며 "먼저 은혜가 되고 많이 울었다"고 고백했다. "나는 그렇게 왜 못 살까, 흉내라도 내야 되겠다"는 마음으로 이 일을 진행했다는 그의 말에서, 진정한 역사가의 자세를 엿볼 수 있었다.
군산의 일제강점기 수탈 현장들 사이에서, 이제 하나의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130년 전 이 땅에 복음과 함께 희망을 가져온 이들의 이야기가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