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전산망 마비를 불러온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는 작업자들이 기본적인 안전조치를 지키지 않아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국정자원 원장을 포함한 10명을 업무상 실화 혐의로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
25일 대전경찰청 수사전담팀은 "관련자 진술과 압수물 분석,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의 감정 결과를 종합하면, 이번 화재는 작업자들이 전원을 차단하지 않고, 절연 작업을 하지 않은 채 작업을 진행한 과실로 발생했다"고 밝혔다.
무정전 전원장치(UPS) 시스템에 연결된 배터리를 이전하기 위해서는 UPS 본체 전원을 차단한 뒤 연결된 각 배터리 랙(1~8번) 상단의 콘트롤 박스(BPU) 전원까지 모두 차단해야 한다.
하지만 화재 당시 작업자들은 UPS 본체 전원과 1번 랙 전원만 차단한 상태에서 작업을 시작했다. 또 콘트롤 박스에 연결된 전선을 분리해 절연 작업을 해야 했지만,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국과수 역시 감정서를 통해 "BPU의 차단기를 끄지 않고, 작업자들의 작업과 관련된 인적 행위에 의해 발화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번 화재는 4번 랙 이설 작업을 마친 뒤 5번 랙의 작업을 하는 도중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따라 발화 지점은 4번과 5번 랙 사이로 추정된다.
다만 화재 현장 CCTV 영상과 재연실험을 비교해본 결과, 섬광과 융용물 비산 유무, 연기의 색깔 등을 감안할 때 갑자기 온도가 치솟는 이른바 배터리 '열폭주'에 의한 화재 가능성은 없다고 봤다.
그간 주요 화재 원인으로 높은 배터리 충전율이 지목돼왔지만, 충전율은 화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감정 결과도 나왔다.
경찰 관계자는 "이미 배터리 전원이 통하는 상태였기 때문에 충전율이 몇 퍼센트인지 화재 원인과는 관련이 없다"며 "다만 국과수는 화재 발생 이후에 연소가 더 확대됐을 가능성은 있다고 봤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와 관련해 업무상 실화 혐의로 관계자 10명을 입건했다고도 밝혔다. 국정자원 원장을 포함한 현장 작업자, 감리 관계자 등이다.
국정자원은 원장과 과장, 팀장, 담당자 등 4명이 입건됐다. 시공업체에서는 현장소장 1명과 작업자 2명 등 3명이 '산업안전 보건 기준에 관한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은 혐의가 있다고 봤다.
이밖에 감리업체 소속 책임감리와 보조감리 등 2명이 감리원의 근무 수칙을 준수하지 않은 혐의로 입건됐다. 재하도급을 받은 현장 작업자 1명은 배터리 랙 전원을 차단하지 않고 작업한 혐의가 적용됐다.
경찰은 불법 하도급 정황도 함께 확인했다. 사고 당시 작업에 참여한 업체는 조달청 계약업체가 아닌 하도급을 받은 다른 업체 소속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5개 업체 총 10명이 전기공사업법위반 혐의로 추가 입건됐다.
전기공사업법상 하도급은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고, 예외적인 경우에도 미리 발주처에 알려야하지만 이를 지키지 않은 것이다. 불법 하도급은 2중 다단계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조달청으로부터 공동으로 공사를 수주한 A·B 업체가 30억원 상당의 공사를 낙찰받은 뒤, 이를 C 업체에 일괄 하도급했다. 이후 C 업체는 직원 2명을 형식적으로 퇴사시킨 뒤 A 업체에 입사한 것처럼 서류를 꾸민 뒤 공사의 대부분을 직접 수행하기로 했다. 이후 일부 공정을 다시 D, E 업체에 재하도급한 사실도 드러났다. 특히 D 업체 대표는 무등록 전기공사업 수행 혐의와 함께 업무상 실화 혐의도 받고 있다.
국정자원 측은 불법 하도급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자원 측은 최초로 공사를 수주한 A, B업체가 공사를 맡아 진행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경찰에 진술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입건한 피의자들의 조사가 마무리 되는 대로 사건을 송치할 예정이다.
수사 과정에서 경찰은 불합리한 행정처분을 발견하고 이를 개선하도록 권고할 예정이라고도 밝혔다.
지난 9월 26일 대전 유성구 국정자원 전산실에서 리튬이온 배터리 교체 작업 도중 불이 나 21시간 넘게 이어졌으며, 정부 온라인 시스템 상당수가 마비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