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학은 정치의 절반이다." 민주주의의 요람, 고대 그리스에서 내려오는 말이다. 말 한마디로 정치의 절반을 이룰 수 있다면, 말을 잘하는 이가 큰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현대 민주주의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 대표적 증거가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다. 그는 연설의 달인이었다. 대통령 시절 그의 연설은 미국을 넘어 세계 곳곳에서 울림을 주었다.
초강대국 미국 대통령의 연설은 그 자체로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다른 나라의 정치·외교 담론에 영향을 미친다. 여기서 말하는 연설은 즉흥적 멘트가 아니라 유엔 총회, 해외 의회 연설, 정상회담 등에서 치밀하게 준비해 발표하는 '공식 스피치'를 뜻한다.
국가 지도자의 해외 연설은 섬세한 작업이다. 일단 청중이 둘이기 때문이다. 연설은 현지인에게 향하지만, 동시에 본국의 여론도 의식해야 한다. 방문국의 문화·종교·역사에 대한 감수성이 필요하고, 주변국과 동맹국이 그 메시지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계산해야 한다. 그리고 어떤 장소를 선택하느냐 역시 전략적 판단을 요구한다.
그런 점에서 지난 20일, 중동·아프리카 순방 중인 이재명 대통령이 이집트 카이로대학에서 한 연설은 주목할 만하다. 세계 10위권 경제 규모를 갖춘 중견국 대한민국이 이제 국제무대에서 어떤 목소리를 낼 수 있는지, 그 전략성과 존재감을 선명하게 증명한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먼저 장소를 보자. 이재명 대통령은 한국의 대(對)중동 외교 청사진인 '샤인(SHINE) 이니셔티브'를 발표할 장소로 이집트 카이로대학을 선택했다. 샤인 이니셔티브는 한국과 중동 국가 간 협력을 안정·조화·혁신·네트워크·교육으로 확대하겠다는 포괄적 구상이다. 흥미롭게도 이 무대는 2009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의 신(新)중동 전략을 담은 연설 '새로운 시작(A New Beginning)'을 발표했던 바로 그곳이기도 하다.
왜 이집트였을까? 이집트는 결코 간단한 나라가 아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경계에 서 있고, 중동·북아프리카·지중해를 동시에 잇는 지정학의 교차점이다. 세계 해상 물류의 동맥 수에즈 운하를 관리하며, 22개 회원국이 속한 아랍연맹 본부가 여기 있다. 미국이 중동에서 큰 판을 벌일 때마다 이집트를 찾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아랍 국가와 이스라엘 사이 최초의 평화조약을 이끌어낸 1978년 캠프 데이비드 협정에서도,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한 '가자 평화구상'에서도 이집트는 늘 협상 테이블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
한국에도 이집트는 실리와 명분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전략 지역이다. 이집트는 가자지구 휴전 중재의 핵심국으로, 향후 재건 과정에 한국의 참여를 요청했다. 한국산 FA-50과 '천검' 대전차 미사일 등 방산 협력은 중동에서 한국 방산의 위상을 높이는 교두보가 될 수 있다. 이집트의 국가개발 전략 '비전 2030'에는 한국 제조업·혁신 기술이 기여할 공간이 많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와의 연계성 또한 한국의 '글로벌 사우스' 외교 지평을 확대하는 데 유용한 자산이다. 기존 국제질서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글로벌 사우스와의 연대는 한국이 전략적 균형과 외교적 자율성을 확보하는 핵심 수단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이번 카이로 연설의 의미가 더욱 선명해진다.이재명 대통령의 연설에는 국제무대에서 소구력 있는 '한국의 스토리'가 잘 녹아 있었다. "열강의 각축이 벌어지던 전략적 요충지"이지만, "지정학적 운명에 순응하며 주어진 평화를 누리는 데"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평화의 새 역사"를 써 내가려는 나라, 그러면서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초고속 압축 성장"을 이룩한 나라, "여러 문화의 강점을 어우르며 새로운 장르로 탄생한 K-컬처"를 창조한 나라! 한국만이 말할 수 있는 고유한 서사다.
2009년 같은 무대에서 오바마가 들려준 서사와 나란히 놓아보면, '한국의 서사'가 가진 힘이 더 또렷해진다. 오바마는 이곳에서 무슬림 세계를 향해 "의혹과 불화의 악순환을 끝내자"며 '화해'를 요청해야 했다. 미국이 이 지역에 남긴 상처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국은 이 지역과 과거 제국주의·식민주의 문제가 없고, 패권 경쟁을 벌이는 강대국도 아니다. 미국처럼 풀어야 할 과거가 없고, 중국처럼 의도가 의심받지도 않는다.
그래서였을까. 2009년 오바마의 연설이 비장했다면, 이번 이재명 대통령의 연설은 경쾌했다. 미국은 "차이를 넘어서자"고 말해야 했지만, 한국은 "연결과 공감"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미국 대통령은 미래를 말하면서도 '과거'를 봉합하는 데 시간을 써야 했다면, 한국 대통령은 당당하게 "함께 여는 빛나는 미래"를 말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 '미래'가 공허한 수사로 들리지 않을 만큼, 오늘의 한국은 강력한 국가 역량과 성숙한 소프트파워를 갖춘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전임 대통령은 한국이 축적한 이런 역량을 외교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데 주저했던 것 같다. 내란 혐의 피고인 윤석열은 최근 법정에서 이런 말을 했다. "계엄 직전에 남미 페루와 브라질에서 열린 다자회의를 갔는데 조금 사는 나라는 원조해달라는 둥 이런 얘기(가 있었다), 소위 포퓰리즘적인 좌파 정부 정상들을 대거 초청해놨다. 원래 멤버도 아닌데"라며 "제가 요 다음 해에는 힘드시더라도 (한덕수) 총리님보고 이런 데 가시라. 나는 중요한 외교에 집중하겠다…"
'정치의 절반이 수사학'이라는 고대 그리스의 지혜가 다시 떠오른다. 그의 주장대로 "중요한 외교"를 더는 그가 담당하지 않아 천만다행이다. 중요한 외교도 "바이든 날리면" 하지 않았던가. 바이든을 '날린' 직후, 그의 홍보수석이 남긴 그 유명한 멘트를 빌려 글을 맺고자 한다. "국민 여러분, 다시 한번 들어봐주십시오" 이재명 대통령의 카이로 연설을!
박형주 칼럼니스트
- 전 VOA 기자, 『트럼프 청구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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