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사나에 (高市早苗) 일본 총리의 지난 7일 '대만 무력 개입 발언'으로 중국과 일본의 관계가 위태롭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23일 다카이치의 일본 총리의 발언이 "레드라인(red line)을 넘은 것"이라고 규정했다.
사태 발생 16일 만에 중국의 외교사령탑이 밝힌 권위있고 강경한 대응이다. 발언을 철회하지 않으면 보복의 수위를 더 높이겠다는 말이다.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인 왕이 부장은 외사판공실 주임으로서 시진핑 국가 주석의 외교를 총괄, 집행하는 인물이다.
앞서 지난 9일 '다카이치 총리의 목을 잘라야 한다'는 오사카 주재 중국 총영사 쉐젠(薛劍)의 극언은 강경 대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후 약 2주 동안 중국 정부는 일본에 대한 단계적 보복 조치를 쏟아냈다. 중국인의 일본 관광을 끊고, 수산물 수입도 중단했다.
중국은 지난 16일 동중국해의 중일 영유권 분쟁지역인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 해경 경비함 1307을 접근시켰다.
이어 17일부터 중국 인민해방군이 산둥반도 주변 해역에서 실탄 사격 훈련을 매일 실시하고 있다. 일본 총리의 대만 발언에 대한 불만 표시로 보인다.
중국 해사국 발표에 따르면, 이 지역에서의 군사 훈련은 12월 7일까지 3주 동안 계속된다.
중국의 격렬한 반응은 충분히 예상된 일이다. 대만 문제는 중국이 소위 핵심이익으로 분류한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중의원 10선의 노련한 정치인인 다카이치 총리는, 중국이 거칠게 나올수록 일본 보수층의 반중 여론을 자극한다는 것도 예상했을 것이다.
총리의 대만 발언 8일 뒤인 지난 15일~16일 교도통신의 여론조사에서 다카이치 내각에 대한 지지율은 69.9%로 비교적 높았다.
다카이치의 대만 개입 발언에는 찬성 48.8%, 반대 44.2%로 나타났고, 국방비 증액 2년 단축에는 60.4%가 지지를 표시했다.
이후에 실시된 다른 여론 조사에서도 다카이치 내각에 대한 지지는 유지되고 있다.
가까스로 총리에 당선돼 10월 21일 취임한 다카이치는 한 달도 안돼 안정적 국정 운영의 기반 마련에 성공한 셈이다.
다카이치 총리가 취임 연설에서 천명한 'GDP 대비 방위비 2% 인상 계획의 2년 단축' 공약도 탄력을 받게 됐다.
원래 2028년 3월까지였던 방위비 증액 5개년 계획을 2026년 3월로 2년이나 앞당기겠다는 것이다. 시한은 불과 4개월 정도 남았다.
이것은 신무기의 개발과 도입에 10조 원 이상의 예산을 긴급 투입하겠다는 뜻이다. 현재 일본의 안보 상황을 국가 위기로 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다카이치의 대만 발언은 단지 국내용에 그치지 않는다. 중국과 대립각을 세우면 지역내 반중 국가들을 규합할 수 있다는 점도 염두에 뒀을 것이다.
자민당 총재 선거 출마를 앞둔 지난 4월, 다카이치는 의원 자격으로 대만을 방문해서 일본과 대만, 미국 등이 '준동맹'을 체결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다카이치는 필리핀, 호주 등도 준동맹 참가국으로 나열했다. 일본과 차세대 전투기를 공동개발 중인 유럽의 영국과 이탈리아도 거론했다.
대만해협과 남중국해에서 벌어지는 중국의 현상 타파 시도에 맞서, 일본이 주도적 역할에 나서겠다는 의미다.
일본은 이미 호주, 영국뿐만 아니라 필리핀과도 '상호접근협정'(RAA, Reciprocal Access Agreement)을 체결한 상태다.
RAA는 상대국에 군사 기지 접근권을 허용하는 협정으로, 준동맹 관계의 기반이 된다.
일본과 필리핀의 RAA는 지난 9월 발효됐다. 일본 군함은 이제 미국 군함처럼 필리핀에 자유롭게 드나들고 있다.
지난 4월 로메로 브라우너 필리핀군 참모총장은 대만이 공격을 받으면 필리핀도 참전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카이치의 시각에서 보면, 대만만 참가시키면 이른바 '준동맹 구축 구상'은 사실상 일단락된다.
하지만 다카이치의 중국에 대한 초강수와 비교할 때 미국은 반응은 조심스럽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카이치의 대만 언급에 대한 쉐젠 총영사의 '참수 발언'을 전해듣고 오히려 중국을 두둔하는 반응을 보였다.
지난 10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진행자의 관련 질문에 대해 "중국보다 동맹국들이 미국을 더 이용했다"는 반응을 내놓았다.
트럼프는 지난달 부산 회담에서 시진핑과 일단락지은 무역 합의가 대만문제로 깨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앞서 미국 국무부 대변인과 주일 미국 대사는 일본에 대한 미국의 확고한 지지 입장을 표명했다. 하지만 모두 원론적인 논평 수준이다.
미국이 자세를 낮추는 데는 이유가 있다. 만약 대만해협에서 중국과 군사적 충돌이 촉발될 경우 미국도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여 년 동안 중국의 군사력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특히 군함과 잠수함 등 함정 수는 370척으로 미국보다 더 많은 세계 1위다. (2025년 4월 미국 의회 보고서)
중국은 현재 항공모함도 랴오닝함, 산둥함, 푸젠함 등 3척을 보유하고 있다.
해상호텔로 쓰겠다며 우크라이나에서 사온 항공모함을 개조해, 지난 2012년 첫 항모 랴오닝호를 취역시킨 지 불과 13년 만이다.
최신 구축함 수도 빠르게 늘리고 있다. 중국 해군은 지난 2021년 10월 러시아 함대와 합동으로 일본 열도 주변에서 첫 '포위 항해'를 하며 위협했다.
바로 지난 9월에도 중국의 최신예 구축함 2척이 일본 열도를 시계 방향으로 돌며 무력 시위를 벌였다. (Newsweek, 2025년 10월 10일 보도)
인민해방군 소속 군함들은 이제 북태평양의 알래스카 부근까지 올라가고, 남쪽으로는 호주 부근의 태즈먼 해에서 실탄사격에 나설 정도로 대담해졌다.
중국과 일본의 경제력 격차도 크다. 2024년 중국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18.7조 달러다. 일본의 4조 달러보다 4배 이상 많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공산당의 '일본 때리기'는 어렵지 않은 선택이다. 애국심을 자극해 중국인들을 단결시킬 좋은 기회도 된다.
일본이 주변국에 과거의 침략과 식민지배를 진심으로 사과하지 않은 것은 약점으로 작용한다.
다카이치 총리는 중국의 '대만 발언 철회'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그렇다면 중일 관계는 당분간 악화일로를 피하기 어렵다.
당장 중국이 대만해협 또는 일본 영토 주변 해역에서 무력시위를 감행할 지 여부를 주시해야 한다.
지난 2022년 8월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강행 때와 비슷한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다.
이런 시나리오가 현실이 된다면 한국의 안보와 경제에도 부정적이다. 동북아에 지정학적 불안정이 조성되기 때문이다.
주목할 변수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집권 2기의 트럼프는 대만 문제에서 오히려 중국에 유화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첫 정상회담에서 트럼프의 팔짱을 끼고 친밀감을 보여준 다카이치 총리의 외교력이 대만 문제에서 빛을 발할 지 첫 시험대에 올랐다.
강성웅 국제정치 칼럼니스트
- 전 YTN베이징 특파원, 해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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