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코파이'로 유명한 제과업체 오리온에서 노조활동과 관련한 부정 행위 정황이 또다시 드러났다. 2년 전 부장급 관리자가 직원들에게 특정 노동조합(노조) 가입을 강요한 혐의로 검찰에 송치까지 됐던 오리온에서 올해 대표교섭 노조 선정을 앞두고 조합원 숫자가 조작됐을 정황이 나온 것이다.
오리온 대표교섭권 노조, 한국→민주 바뀐 까닭
오리온은 2년마다 한 번씩 영업부문 대표교섭권(회사와 임금·근로조건 협상을 진행할 수 있는 노조 권리)을 가질 노조를 선정하는데, 선정 기준은 교섭 요구 기간 회사에 통보된 조합원 수다. 쉽게 말해, 조합원이 더 많은 노조가 대표교섭권을 갖게 된다. 오리온 사업장에는 현재 민주노총(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과 한국노총(한국노동조합총연맹) 등 두 노총 소속 노조가 경쟁 관계다.24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오리온은 지난달 1일에서 10일까지 교섭 요구 기간을 공지했다. 두 노조가 각자의 조합원 수를 회사에 전달하란 뜻이다. 이에 한국노총은 1일 기준 조합원 206명을, 민주노총은 10일 기준 226명을 사측에 신고했다. 한국노총은 교섭 요구 기간 첫날에, 민주노총은 마지막날에 신고한 것이다. 이런 신고 결과는 교섭 요구 기간 바로 다음날인 11일 그대로 공지됐다.
그러나 같은달 31일 회사에서 최종 발표된 대표교섭 단체는 한국노총이었다. 한국노총의 조합원 수가 246명으로 집계돼, 민주노총의 조합원 수(226명)보다 많았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갑자기 조합원 숫자가 바뀐 것일까.
두 노조 측 등에 따르면, 한국노총이 회사에 조합원 수(206명)를 최초 신고한(1일) 직후 교섭 요구 기간이 만료되는 10일 전까지 40명이 추가로 조합에 가입했다는 것이다. 교섭 요구 기간 안에 추가로 조합원 가입이 됐기 때문에 최종 조합원 수가 많은 한국노총이 대표교섭권을 갖게 된 상황이다.
그러나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오리온지회는 이같은 조합원 추가 가입이 불가능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해당 기간에는 개천절과 추석 연휴, 한글날 등이 연달아 붙어 이른바 황금연휴(10월 3~9일) 기간이었다. 민주노총 오리온지회 측은 "10월 1~10일 추석 연휴 기간에 40명이나 늘었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허위 명단 작성 없이는 설명되지 않는 숫자"라고 지적했다. 민주노총 측은 실제 적지 않은 직원들에게 한국노총 소속 영업노조 가입 탈퇴서를 확보했다고 한다. 한국노총 측이 주장하는 조합원 246명이 현실적으로 맞지 않다는 것을 방증하기 위한 차원이었다.
민주노총 오리온지회는 지난 13일 한국노총 소속 오리온 영업노조가 대표교섭노조 지위를 따내기 위해 조합원 수를 허위로 부풀려 기재했다며 서울지방노동위원회(노동위)에 이의신청을 냈고, 노동위는 지난 21일 해당 이의신청을 받아들였다. 즉, 민주노총 측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이에 따라 대표교섭권은 민주노총이 획득하게 됐다.
관리자가 한국노총 가입 압박, 거부자에 인사 불이익도
민주노총 측은 이번 사안에 대해 사측의 개입을 의심하고 있다. 이들은 "직원 개인정보를 가진 회사 인사팀이 한국노총에 명단을 제공해 숫자를 늘렸을 것"이라며 "사측 개입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오리온에서 불거진 노조 관련 문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23년에는 사측 인사인 부장급 관리자들이 직원들에게 "한국노총 쪽에 가입하라"고 압박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당시 관리자들은 진급 불이익까지 언급하며 직원들을 압박했다고 한다. 이때 대표교섭권은 한국노총에서 획득하게 됐다.
이 사건과 관련해 고용노동부는 올해 6월 부장급 관리자 3명을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서울서부지검에 송치했다. 당시 문제가 된 관리자들은 현재도 근무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부는 오리온 대표에 대해서는 혐의없음으로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앞서 오리온은 2018년에도 직원에게 민주노총 소속 노조 탈퇴를 강요하고 이를 거부하자 인사상 불이익을 준 혐의로 울산지법에서 벌금 500만 원을 선고받았다.
민주노총 오리온지회 측은 "2년마다 교섭창구 단일화 시기만 되면 사측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한국노총 측이 대표교섭권을 획득하도록 물밑작업을 벌인다"고 주장했다. 몇십 명에 불과했던 한국노총 노조 조합원이 이 시기마다 몇백 명으로 늘어나는 게 반복된다는 게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또 민주노총 측은 사측이 올해도 직원들에게 한국노총 노조에 가입을 종용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오리온지회 관계자는 "2년 전 부장급들이 문제가 되니 이번엔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 과장급 관리자들을 앞세워 직원들에게 전화를 돌렸다"고 말했다.
한국노총 영업노조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노조원 숫자 허위 작성 의혹에 대해 "드릴 말씀이 없다"며 "40명이 실제로 늘었으니 그렇게 적은 것"이라고 말했다. 사측과의 결탁 의혹에 대해서는 "회사 측과 협의한 적 없다"고 선을 그었다.
오리온 측은 "회사는 노조법에 따라 절차를 진행하며, 노조 활동에는 관여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준수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민주노총 오리온지회는 오는 26일 고용노동부 앞에서 '사측의 지배·개입과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특별근로감독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부에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회사에 대한 고소장을 제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