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혁 대표 취임 100일과 '12·3 불법 비상계엄' 1년이 공교롭게 맞물리면서, 국민의힘이 메시지 방향과 수위를 놓고 고심 중이다.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계엄 사태에 대한 사과와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 없이 중도층 공략이 어렵다는 당내 문제의식이 확산하고 있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성 지지층의 반발을 무릅쓰고 '급선회'를 단행할 가능성은 낮다는 전망이 많다.
당내서도 '계엄 사과' 필요성 제기되지만…
최근 국민의힘 내부에선 더 늦기 전에 '중도 확장' 쪽으로 전략 수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폭넓게 제기되고 있다.경북 지역 한 의원은 23일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장 대표가 '찐 보수' 지지층을 달래고 신뢰를 구축하는데 100일을 쓴 것 같다"면서 "내년 지방선거를 준비하려면 이제는 중도 확장을 위해 당 혁신으로 치고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계엄은 분명한 잘못이었다는 식의 메시지로 이 강을 건너야 하지 않겠느냐"면서다.
서울 서초을이 지역구인 신동욱 수석최고위원은 최근 YTN 라디오에서 "12월 3일에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질 수 있는 계엄에 대한 입장 표현이 나올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신 최고위원은 진행자가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에 대해 묻자 "대체로 그런 취지의 방향으로 가는 게 맞는다"고 했다.
장 대표가 지난 19~20일 의원들과 연쇄 회동을 가졌을 때도 선수·지역을 막론하고 '당 지지 기반을 중도층으로 넓혀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재선 권영진 의원은 "계엄 1년과 장 대표 취임 100일을 계기로 (과거) 집권여당 일원으로서 국민께 잘못했던 부분을 다시 돌아보고 반성하고 그 토대 위에서 더 많은 국민께 신뢰받는 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한 고민을 (장 대표에게) 말했다"고 전했다.
한 중진 의원도 장 대표와의 오찬에서 "지역 돌며 전통 지지층을 향해 호소하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일반 국민과 소통하고 공감대를 넓혀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했다고 CBS노컷뉴스에 밝혔다.
'강성' 끌어안고 당권 잡은 터라…
당의 한 핵심 관계자는 "사과보다 더 중요한 건 향후 어떻게 할 건지 당의 미래에 대한 모습"이라며 "재창당 수준의 당의 변화를 가져갈 것이라는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하지만 장 대표가 실제로 계엄 사과나 윤 전 대통령과의 관계 정리 같은 '결정적 메시지'를 내놓을지는 미지수다.
당내에선 장 대표가 전당대회 때 강성 지지층을 업고 당선됐다는 점을 주목한다. 불법 비상계엄을 옹호하고 부정선거 음모론을 주장하는 이른바 '윤 어게인' 강성 지지층이 전당대회 당시 지지 기반이 미약했던 장 대표의 당권 기반 확보에 핵심적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실제 장 대표는 지난 8월 말 당대표 당선 일성으로 '우파 시민 연대론'을 띄웠다. 이후에도 장 대표는 대여(對與) 전선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중도층과 상충하는 행보를 이어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12일 규탄대회에서 외친 "우리가 황교안이다"라는 구호다. 황 전 총리는 대표적 부정선거 음모론자다.
당권 지탱을 위해 '강성 우클릭'해온 장 대표가 불법 비상계엄 1년과 취임 100일을 함께 맞는 시점에서 '중도 확장'을 위한 메시지를 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당의 한 의원은 "장 대표가 강성 지지층을 업고 당선됐기 때문에 당 방향 관련 고민이 많은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장 대표 측 실무 관계자는 "장 대표가 여러 의견을 들으며 고심 중"이라며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고 말을 아꼈다.